매일 말씀 묵상

희망의 시작 - 참 사랑 위에 위치한 의로움(마태5,20-26) - 3140

Author
신부님
Date
2024-02-21 17:34
Views
672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3140

2024년 2월 23일 금요일

참 사랑 위에 위치한 의로움(마태5,20-26)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마태 5, 20)

희망이 있는 사회와 희망이 없는 사회의 차이는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자신을 죽이는 삶을 살고 있는 가에 달려 있다고 할 것입니다. 공동체와 자신의 참 행복을 위해서 이기적인 자신을 죽여야 하는 것입니다. 특히 지도자들은 더욱더 엄격하게 자신을 죽이는 삶을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 사회를 둘러보면 누구를 탓하기 이전에 우리 자신들이 이 세상에 어둠에 어둠을 더하는 삶을 살고 있지 않는가 하는 두려움이 생기기도 합니다..

에제키엘 예언자는 하느님 앞에서 우리 인간은 평등하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의인도 불의를 저지르면 죽고, 악인이라도 자신의 죄악을 회개하고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고 살면  죽지 않고 산다는 것을 에제 18장 26에서 27을 통해서 알려 줍니다.

과거의 나의 삶 때문에 미래가 없는 것이 아니라 비록 어두운 과거를 살아왔어도 현재의 삶에 따라서 나의 운명이 바뀌어질 수 있슴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과거에 아무리 의로운 삶을 살아왔다고 하더라도 지금 불의로 돌아서면 그 불의 때문에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임을 알려줍니다. 참으로 위로의 예언이며 희망의 예언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의로움이 율법학자들이나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의로움’은 무엇이고 바리사이들이나 율법학자들이 생각하는 의로움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당시의 유다인들은 그릇된 선민의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자신들만이 하느님으로부터 선택받은 백성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생각을 갖고 살아가던 유다인들이 다른 민족들을 이방인으로 단죄하는 것은 그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당시의 율법학자들이나 바리사이들은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고 경건하게 살아갈려고 열심히 노력했던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열심에 담겨진 그들의 의지가 순수하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의 비판을 받았던 것입니다.

남을 판단하고 과시하는 ‘의로움’은 위선에 불과합니다. 예수님께서 생각하시는 ‘의로움’이란 바로 참 사랑위에 위치한 ‘의로움’인 것입니다.

유다인들은 하느님에 대한 열성은 가지고 있지만 정확한 영적인 지식이나 깨달음에 두지 않은 열성을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열심히 봉사는 하는데 그 봉사에 하느님은 없고 자신 만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우리 주변을 둘러 보면 그러한 사람들이 많음을 보게됩니다. 우리 자신들도 반성해 보아야 합니다. 열심히 봉사를 합니다. 하지만 봉사를 하면서 왜 봉사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확한 이유를 알지 못하고 그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기에 쉽게 남을 판단하기도 하고 스스로 지쳐서 쓰러지기도 합니다. 이 봉사는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닌 참으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봉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당시의 유다인들은 율법을 지키며 나름대로 거룩하게 열심히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그중에서도 율법학자들이나 바리사이들은 더욱 성실하게 살았음은 너무나 당연했을 것입니다. 그러한 열성은 우리도배워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바리사이들이나 율법학자들의 이러한 열성과 열심은 바로 자신들의 의로움으로 사람들을 판단하거나 이들에게 자신을 과시하기위한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자신의 의와 하느님의 의를 구별해야 합니다. 유다인들은 하느님의 율법을 다 지키는 것에 무게의 중심을 두었습니다. 우리 중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자세가 자신의 의를 드러내기 위한 것일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과시하기 위해서 율법을 지키는 것은 하느님이 보이질 않습니다. 율법의 본질을 잊어버리게 되는 우를 범할 수가 있습니다. 율법주의에 빠진 사람들입니다. 이런사람들이  다른 사람들 보면, 먼저 판단하고 단죄하게됩니다. 나는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왜 저 사람은 열심히 하지 않는가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나 이러한 사람들과는 반대로 나는 왜 이렇게 미련하고 부족하게 살아가고 있을까, 다른 사람들은 저렇게 열심히 살아가는데 나는 왜 저러지 못할까 생각을 갖는 사람들 모두 율법주의에 빠진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의에 빠진 사람들인 것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에게서 오는 의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에서 오는 의로움인 것입니다. 사랑에 근거한 의로움인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는 분이 하느님이 바로 의로움의 근거이신 것입니다.

나는 비록 부족하고 죄를 많이 짓고 살아가고 있지만 그래도 하느님께서는 나를 사랑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내가 회개하고 돌아 올 때  돌아오는 나를 보고  정말 기뻐하고 사랑하실 것이다 하고 믿는 사람은 지금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의로움을 아는 사람입니다.  이 의로움의 근거이신 하느님이 어디에 계실까요?

바오로 사도는 로마서 10장 6-7절에서 말합니다.

“6 그러나 믿음에서 오는 의로움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누가 하늘로 올라 가리오?' 하고 마음속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를 모시고 내려 오라는 것입니다. 7 또 말합니다. "'누가 지하로 내려가리오?' 하지 마라." 이 말씀은 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모시고 올라오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모시고 오기 위해서 하늘로 올라가거나 지하로 내려갈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은 이미 우리에게 오셨고 동시에 죽음에서 부활하셔서 우리 가운데 살아 계심을 말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이제 우리 가운데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 안에 예수님이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 예수님께서 우리가 어떠한 일도 두려움이 없이 할 수 있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 예수님이 우리의 마음을 바꾸어주시는 분이신 것입니다.

우리의 의로움의 근거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계시기에 율법학자들이나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충분히 넘어설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우리 안에 계시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삶을 바꿀 수 있게 하십니다.  우리의 인생을 바꿀 수 있도록 해 주십니다. 이 모든 것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남으로서 가능하게 됩니다.

주님의 부활에 참여하기 위해서 준비의 시간을 보내는 우리가 준비해야 하는 것은 바로, 욕망의 노예로 살아온 우리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삶의 주인이 되시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러한 우리의 삶을 통해서 절망에 허덕이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희망을 갖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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