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말씀 묵상

희망의 시작 - 악마의 본성과 성령의 본성(마르 5,1-20) - 3118

Author
신부님
Date
2024-01-27 20:09
Views
770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3118

2024년 1월 29일 월요일

악마의 본성과 성령의 본성(마르 5,1-20)

“집으로 가족들에게 돌아가, 주님께서 너에게 해 주신 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신 일을 모두 알려라.”(마르 5, 19)

크리스챤의 삶은 하느님 때문에 익숙함을 포기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추세를 거슬러 사는 사람입니다. 사탄은 익숙함을 고집하게 합니다. 왜 그러한 고통을 사서 할려고 하느냐 하면서 그 자리에 머물게 합니다. 다들 그렇게 하는데 하필이면 혼자서 그렇게 고집을 부리는가 하면서 세상과 타협하게 합니다.

말씀을 선포하는 사명을 갖고 살아가는 우리는  이 세상 끝까지 주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 우리는 낯선 곳으로 떠나가야 합니다.  공간적인 떠남도 중요하지만 나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도 떠남이 필요한 것입니다. 습관과 사고방식의 포기입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제자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익숙함과 편안함을 떠나서 하느님에 대한 믿음으로 낯설고 불확실한 삶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심을 느낍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탄 배가 ‘호수 건너편 게라사 인들의 지방에 도착했습니다. 우리는 이 지방이 어떤 지역인지 확실하게는 모릅니다. 루카 복음에서도 이 지방의 이름을 ‘게라사 인들의 지방’으로 말하고 있지만 마태오 복음에는 ‘가다라인들의 지방’ 이라고 말합니다. 이 게라사인들이 사는 지방으로 알려진 이곳은  갈릴레아 호수 남동쪽 10킬로미터 지점, 네카폴리스 지방에 자리잡은 그리스식 고을이었다는 설도 있지만 분명치는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배에서 내리시자 마자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무덤에서 나와 예수님께 마주왔다고 합니다.

당시의 무덤은 자연동굴이나 바위를 파서 무덤을 만들었답니다. 따라서 피신처로도 이용될 수도 있었습니다. 어쨌던 이 무덤은 부정한 곳으로 여겨졌습니다.

마르코 복음 5장 2절과 루카 복음 8장 27절에는 마귀들린 사람 한사람으로 되어있습니다만 마태오 복음은 마귀들린 사람 둘이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의 특징은 너무 사나웠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어쩌면 자신들이 사는 곳에서 이들을 쫓아내어 마을에서 떨어진 무덤에서 살고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그가 예수님께 다가와서 큰 소리로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 당신께서 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하느님의 이름으로 당신께 말합니다. 저를 괴롭히지 말아 주십시오.” 하고 외쳤습니다. 여기서 마귀들린 사람은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지만  마태오 4장 3절에서는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들에게 빵이 되라고 해 보시오.’ 하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분명하게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부르는 것을 봅니다.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악마는 벌써 알고 있었슴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 표현은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이 아니라 자신들이 생존하기 위한 표현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들과 예수님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으니까 자신들의 삶에 간섭을 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덧붙여서 아직까지 자신들이 쫓겨날  때가 되지 않았는데 벌써 저희들을 쫓아 낼려고 하십니까”  하고 말합니다.

악마의 본성은 거짓말로 사람들을 유혹하고 하느님으로부터 사람들을 떨어지게 하는 존재입니다. 이들의 이러한 시도는 창세기 때의 아담과 하와때부터 계속되어 왔습니다.

마귀는 자신들이 머물렀던 곳을 찾아갑니다. 우리가 깨끗하게 청소를 해 놓았어도 이 공간을 성령으로 채우지 못하면 마귀는 무리를 지어서 다시 찾아옵니다. 마귀들은 예수님으로부터 쫓겨날 위기에 처하자 예수님께  그 곳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돼지 떼가 있는 그곳으로 보내 달라고 청합니다. 왜 이들이 돼지 떼 속으로 보내 달라고 했을까요? 교묘한 마귀의 전략입니다. 위기의 순간을 넘기기 위한 작전입니다.

돼지는 부정한 동물이기에 어쩌면 자신들 역시 부정한 존재임의 표현이기도 할 것입니다. 마귀들은 마귀들린 사람으로부터 나와서 돼지 떼속으로 갑니다.  돼지들은 마귀들이 들어오자 공포에 사로잡혀서 호수를 향해서 달려가 물 속에 빠져 죽어버립니다.

돼지들이 왜 집단적으로 물 속으로 뛰어 들어갔는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마귀가 돼지 떼 속으로 들어가게 해 달라고 했고 마귀들린 돼지들이 악령이 거주하는 물 속으로 뛰어들어 간 것은 이러한 연장선 상에서 의미를 파악할 수도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거룩함을 피해서 자신에게 익숙한 곳으로 찾아가는 마귀의 모습을 봅니다. 결국 마귀는 예수님으로부터 벗어나 부정한 돼지에게로 그리고 돼지와 함께한 이들은 악령의 소굴인 물 속으로 뛰어들게 됩니다. 그곳에서의 죽었다는 말은 악의 종말은 죽음임을 우리에게 알려 줍니다. 이러한 일을 체험한 그 마을의 주민들은 예수님께 마을을 떠나가 달라고 청합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이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이 없었던 당시의 사람들은 예수님의 능력을 보기 보다는 물질에 더욱 관심을 둡니다. 현상적으로 일어난 일에 이해득실을 따집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신앙인들에게 영광인 것이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두려움으로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 두려움의 원인이 예수님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을 자신들의 삶의 현장에서 떠나게 합니다.

하루 하루를 불안과 두려움 쌓여 살아갑니까?  아모스 예언자는 ‘우리의 삶이  하느님께 드리는  참된 제물이 되게 하십시오. 이 삶은 바로  악이 아니라 선을 찾는 삶입니다.’ 하고 예언을 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증거인 것입니다. 그 삶의 결과로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사회를 만들어 가기를 원하십니다.

매 순간 거듭나는 삶을 살고자 노력하는 우리는  편함과 익숙함에서 떠나서 주님께서 보여주시는 낯 선 곳에서 불편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주시는 하느님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오로지 주님 만을 의지하며 살아갈 때 우리는 어떠한 악의 유혹도 이겨낼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 땅에 하느님의 나라를 구현하며 살아갈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삶을 살 수 있는 은총을 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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