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말씀 묵상

희망의 시작 -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 (루카 1,39-56) - 2549

Author
신부님
Date
2022-05-29 23:01
Views
1247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2549

2022년 5월 31일 화요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 (루카 1,39-56)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루카 1, 45)

오늘은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입니다.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은 성모 마리아께서 예수님을 잉태하시고, 친척이며 세례자 요한의 어머니인 엘리사벳을 방문하신 것(루카 1,39-56 참조)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이 축일을 지내면서 찾아가는 삶과 찾아 오기를 기다리는 삶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우리의 삶은 찾아 가기도 하고 찾아오기를 기다리기도 합니다. 언제 찿아 가고 언제 오기를 기다릴 것인지에 대한 분별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분별의 기준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마음입니다. 내가 중심이 되는 결정이 아닌 하느님이 중심이 되는 결정이 중요합니다.

가끔 환자들을 방문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항상 기쁜 마음으로 가지는 않습니다. 귀찮은 마음이 들때도 있습니다. 그 때마다 스스로 마음을 다잡습니다. 성모님의 마음을 달라고 주님께 청합니다. 나의 입장이 아닌 환자의 입장을, 나의 마음이 아닌 하느님의 마음을 주시도록 청합니다.  나를 통해서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청합니다.

성모님의 삶의 전형은 겸손과 기다림의 삶입니다. 믿음과 확신의 삶입니다. 이러한 단어들은 바로 미래의 불확실함과 인간의 유한함을 넘어가게 합니다. 인간적인 삶의 논리를 하느님의 삶의 논리로 바꾸어 줍니다.

성모님은   ‘찾아가시는 분’이십니다. 교만한 사람은 찾아 오기를 원하지만 겸손한 사람은 찾아가는 사람입니다. 상황에 따라서 다를 수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찾아 간다는 것은 자신을 포기하는 삶이지만 찾아 오기를 기다리는 사람은 자신을 내세우는 사람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찾아 오십니다.  성모님께서도 오늘 엘리사벳을 찾아가십니다.  위로부터 거듭남은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삶에서 찾아 가는 삶으로의 전환인가 봅니다.

성모님께서 예수님을 잉태하시던 그 순간을 기억합니다. 죄에 물든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시는 그 사건이 바로 찾아 오는 삶의 최고의 절정입니다. 오신 그분을 찾아가는 사람들이 줄을 잇습니다. 경배하는 그 마음에 이제 파견을 느낍니다. 오신 그분을 바라보면서 우리도 찾아가는 삶을 배우는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하느님의 것과 개인적인 일의 순서를 바꾸는 삶을 살아가도록 부추깁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마태 6, 33) 하고 말씀하십니다. 

하늘나라와 하느님의 뜻을 찾는다는 것은 내가 주인이 아닌 하느님이 주인이 되는 삶입니다. 곁들여 받게될 것을 추구함으로 본질적인 것을 놓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만은 죽음을 낳고 순명은 생명을 얻게 할 것임을 깨우쳐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찾아  가는 삶과  찾아 오는 사람을 맞이하는 삶은 기적을 만들어갑니다. 이러한 삶은 바로 하느님의 말씀이 이루어진다는 믿음에서 출발합니다. 이러한 믿음은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하게 합니다. 태 안에 있는 아이까지 기뻐서 뛰어 놀게 합니다. 그리고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하고 외치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께 오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하는 가에 대해서 가르쳐 주십니다. 우리에게 찾아 오는 사람들 대부분은 우리에게 도움을 청하기 위해서 오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에게는 따뜻한 마음으로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야 함을 가르쳐 주십니다.

믿음을 갖고 오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합니다.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들에게 하느님의 참 구원의 메시지를 확인시켜 주십니다. 믿음 만이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깨우쳐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사랑과 선물이 축복이라면 이 축복에 응답하는 것이 봉헌이며 감사일 것입니다. 교만의 절정이 죽음이라면 겸손의 절정은 생명일 것입니다. 교만이 소유를 의미한다면 겸손은 봉헌과 감사를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축복이라면 성모님의 비움과 순명은 바로 봉헌인 것입니다.

축복과 응답은 모두가  사랑에서 출발하고 하느님의 사랑을 통해서 그 응답으로 감사와 찬미가 나오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이 노래(루카 1, 46- 55)를 통해서 하느님의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사랑과 관심을 보게 됩니다. 겸손함이 드러나는 사건입니다. 우리의 삶이 이러해야 함을 성모님께서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성모님께서 엘리사벳을 방문하심을 기념하는 축일을 지내면서   삶의 매 순간마다 내가 중심이 되는 결정이 아닌 하느님의 뜻에 기초한 결정을 내릴 수 있기를, 하느님의 축복에 응답하는 성모님의 겸손과 순명의 정신이 나의 삶이 되는 삶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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