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기도 - 2019년 6월 12일 수요일
Author
kchung6767
Date
2019-06-10 23:21
Views
806
2019년 6월 12일 수요일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마태 5, 17)
없애는 것과 새로 만드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창조와 파괴의 주제입니다.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것을 창조입니다. 없슴에서 있슴으로 나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창조와 발전은 비슷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새롭게 거듭난다는 것은 발전의 의미가 아닌 창조의 의미입니다. 없슴에서 있슴에로, 새로운 뿌리에서 나옴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위로부터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것은 바로 새로운 창조를 말합니다. 있게하는 것보다는 없애는 것이 더 쉬움을 우리는 압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있슴을 없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있는 것을 새롭게 거듭나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불완전 한 것을 하느님 안에서 완성하러 오셨습니다. 세상적인 것에서 영적인 것에로 나아가게 하기 위함입니다. 세상 안에서 하느님 안으로의 옮김입니다. 세상적인 것은 없어지고 하느님의 것으로 채워짐을 말합니다.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면서 우리와 우리 가족들 모두가 주님의 은총과 사랑 안에서 세상적인 뿌리 위에서의 변화가 아닌 새로운 뿌리에서의 거듭나는 거룩한 하루 되시도록 기도합니다.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마태 5, 17)
없애는 것과 새로 만드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창조와 파괴의 주제입니다.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것을 창조입니다. 없슴에서 있슴으로 나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창조와 발전은 비슷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새롭게 거듭난다는 것은 발전의 의미가 아닌 창조의 의미입니다. 없슴에서 있슴에로, 새로운 뿌리에서 나옴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위로부터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것은 바로 새로운 창조를 말합니다. 있게하는 것보다는 없애는 것이 더 쉬움을 우리는 압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있슴을 없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있는 것을 새롭게 거듭나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불완전 한 것을 하느님 안에서 완성하러 오셨습니다. 세상적인 것에서 영적인 것에로 나아가게 하기 위함입니다. 세상 안에서 하느님 안으로의 옮김입니다. 세상적인 것은 없어지고 하느님의 것으로 채워짐을 말합니다.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면서 우리와 우리 가족들 모두가 주님의 은총과 사랑 안에서 세상적인 뿌리 위에서의 변화가 아닌 새로운 뿌리에서의 거듭나는 거룩한 하루 되시도록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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