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말씀 묵상

희망의 시작 - 하늘나라와 회개와 복음을 믿는것(마르 1, 14-20) - 2430

Author
신부님
Date
2022-01-08 20:21
Views
1176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2430

2022년 1월 10일 월요일

하늘나라와 회개와 복음을 믿는것(마르 1, 14-20)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 15)

은혜를 배신으로 갚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심각한 열등감 때문에 감사하기 보다는 그 열등감을 배신으로 위장하려는 것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다름을 인정하고 같아질려고 노력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언제나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획일적인 같음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참으로 위험한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인간의 존엄성은 바로 획일적인 하나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하느님 앞에서 유일하게 귀한 존재임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함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에 주신 이성과 자유의지는 바로 이러한  존엄성을 추구하는 도구인 것입니다. 

자신과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적대적인 감정을 가져서는 안될 것입니다.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면서 합일점을 찾아가는 노력은 시간이 걸리고 인내심이 필요하지만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일일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란 선택의 연속입니다. 매 순간 순간마다 결단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최근에 이런 말이 유행합니다. ‘선택장애’라는 말입니다. 자신의 선택에 책임지기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늘어난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의지로써가 아니라 타인의 판단을 빌려오는 것입니다. 결국에는 그 선택의 책임은 자기에게 귀속되지만 참고의 대상이 결정해 주고 책임은 자신이 지는 불행한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믿음과 선택을 강조하십니다. 언제나 믿음의 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결정적인 시기만 되면 가장 먼저 포기하는 것이 믿음 생활입니다. 이 말은 겉으로는 신앙생활을 잘 한다고 하지만 세상적인 이해와 신앙생활이 겹치게 되면 먼저 놓는 것이 신앙생활이라는 것입니다.  되돌아 보면, 그래도 많이 고쳐졌슴을 느낍니다. 신부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나이탓일까 생각해 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가시다가, 호수에 그물을 던지고 있는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를 보십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마르 1, 16) 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똑 같은 방식으로 예수님께서는 조금 더 가시다가 그물을 손질하고 있는 야고버와 그의 동생 요한을 보시고 그들도 부르십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은 에수님께서 왜 이들을 뽑으셨을까 하는 것입니다. 당시의 관습으로 보면, 어부는 참으로 천대받는 직업 중의 하나였습니다. 어쩌면 우리의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3D 업종 중의 하나였을 것입니다.

우리의 인간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좀 더 능력이 있는 사람들 찾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게서는 스펙이 화려하고 겉으로 드러난 능력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께서 이들을 뽑으신 이유는 바로 그 다음 문장에서 깨닫을 수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예수님의 부르심에 곧바로 응답합니다. 이 부사 ‘곧바로’는 어떠한 주저함이나 망설임이 없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복음서의 말씀대로 이해한다면 이들이 전에 예수님을 만난 기록이 없습니다. 단지 우리가 기록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 요한이 잡히고 난 뒤에 갈릴래아에 가셔서 복음을 선포하셨는데 이 복음선포의 말을 들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설령 그들이 이러한 예수님의 선포를 들었다 하더라도 어떻게 순간의 망설임이나 주저함도 없이 자신들의 가장 중요한 직업마저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겠습니까.

상황이 어쨌던 부르심은 예수님의 절대권한이고 이에 대한 응답은 부르심을 받은 사람의 자유의지에 달려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들을 보시고 부르실 때 예수님의 마음과 이들이 예수님을 봤을 때 예수님에 대한 신뢰의 마음이 상호작용을 하고 있었디고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열린 마음이 서로가 서로에게 부름과 응답으로 답할 수가 있게 했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 앞부분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요한이 잡힌 뒤에 갈릴래아로 가셔서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였다고 합니다. 그 복음의 말씀이란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는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예수님께서 이들을 부르실 때 이들의 회개하는 마음과 믿음의 마음을 보셨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이들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예수님을 따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예수님에 대한 신뢰와 새로운 삶을 향한 열정의 표현일 것입니다.

이들이 굳이 그물과 아버지를 버려두고 갔다는 것을 강조하는 이유는  바로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포기해야 하나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고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우리는 세상과 가족을 포기해야 함을 깨닫습니다. 하느님을 더 사랑하기 위해서 늫는 것은 하느님의 더 큰 축복의 약속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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