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6/2016
세상의 통치자들아, 정의를 사랑하여라. 선량한 마음으로 주님을 생각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그분을 찾아라.
지혜서 1:1
Love righteousness, you who judge the earth, think of the LORD in goodness, and seek him in integrity of heart
Wisdom 1:1
오늘은 클라우디우스에 관해 묵상해 보겠습니다.
로마제국의 4대 황제인 클라우디우스는 아우구스투스의 아내인 리비아의 손자이며 티베리우스의 조카입니다.로마의 장군인 클라우디우스 드루수스의 아들인 그는 태어난지 얼마 안되어 아버지를 잃었고 어릴 적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를 절였으며 병약하고 말을 더듬었습니다. 기록에 보면 뇌성마비였다는 가능성도 제시하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왕실로부터 무시를 당했으나 그의 비상함을 알아본 아우구스투슨느 역사가 리비우스를 스승으로 삼게하여 그가 하고 싶은 역사공부를 하게 합니다. 후에 역사서를 저술하기도 한 그는 온화하고 문약하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칼리굴라가 황제로 즉위한 후 원로원에 의해 칼리굴라와 함께 집정관에 취임하기도 합니다. 41년 예루살렘에서칼리굴라가 암살되자 겁에 질려 벌벌 떨고 있던 그를 근위대장이 연행하다시피 끌고가 황제에 옹립합니다. 클라우디우스는 13년의 통치 기간 동안 친위대나 원로원이 전혀 예상치 못한 훌륭한 정치를 폅니다. 그는 국세조사를 통해 국가 재정을 계획 실행하였고 해방 노예를 등용해 정부를 보좌케 합니다.
그는 자신에 대한 과대한 칭호나 영예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성전과 사제직은 신들에게만 유보된 것이라고 하면서 자신에게 성전을 지어 바치거나 사제직을 맡기는 전통을 완강하게 거부합니다. 그는 자신을 신격화 하는 어떤 것도 단호하게 거부했습니다. 클라우디우스는 자신의 인간적 한계를 똑바로 인식한 동시에 과도한 영예를 요구한 뒤에 닥칠 결과를 올바로 내다보았기 때문입니다. 그의 가장 큰 업적은 제국의 질서와 안정을 되찾은 것이었습니다. 그는 알렉산드리아 폭동을 마무리하면서 오래 전부터 이 도시에 자리잡아온 유다인들의 권리를 인정하고 그들이 고유한 종교 전통을 지키는 것을 허락합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유다인들에게 그들이 이 지역에서 이방인들임을 상기시키면서 그들을 환영하지 않는 다른 민족들의 모임이나 행사에 공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자제하라고 경고하기도 합니다.
49년경, 그는 로마에서 그리스도교 때문에 계속적으로 소요가 일어나자 유다인들을 로마에서 추방합니다. 이 유혈폭동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이는 그리스도교인과 이를 부인하는 유다교인 사이에서 일어난 갈등이었습니다. 당시 로마에는 상당히 큰 규모의 유다인 공동체가 있었고 많은 수의 유다인들이 로마의 일반 시민들에게 악영향을 줄 것을 염려하여 내린 유다인 추방령을 클라우디우스칙령이라고 합니다. 이때 아퀼라와 프리스킬라부부도 로마를 떠나 코린토에 정착하여 바오로를 만나게 됩니다(사도행전 18장). 이때 강제추방된 약 2만 5천명의 유다인들은 코린토로 이주한 것으로 추정합니다. 유다인이 떠난 로마에는 클라우디우스 사후 그의 칙령이 철회될 때까지 이방계 그리스도인이 주도권을 잡게 됩니다
그의 결혼생활은 불행하였습니다. 그는 50세때 16세의 어린 나이로 세번째 아내가 된 메살리나는 아들인 브리타니쿠스를 낳았지만 간통죄와 반역죄로 처형되었고 그의 조카인 네번째 아내 아그리피나는 과도한 정치적 야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브리타니쿠스를 제치고 자신의 핏줄인 네로를 왕제의 자리에 앉히기 위해 차근차근 계획을 샐행에 옮겼으며 마지막으로 남편인 클라우디우스를 독버섯을 먹여 살해합니다. 서기 54년, 클라우디우스는 향년 63세로 사망하고 네로가 16세로 황제에 즉위합니다. 그의 사후, 생전에 자신의 신격화를 단호하게 거절한 클라우디우스의 소신과는 달리 원로원은 그가 죽은 다음 곧바로 그를 신으로 인정합니다.
초라한 외모와는 달리 정의를 실천하려고 애썼던 겸손하고 지혜로왔던 황제. 비록 이교도였지만 좋은 마음으로 신이 되기를 거부하고 인간은 결코 신과 동격일 수 없음을 깨우쳤던 황제. 그의 유다인 추방은 당장은 그들에게 고통이었겠지만 더 큰 반란과 소요가 일어나지 않게 지켜주신 하느님의 깊은 뜻이 숨어있었던 것이 아닐까 합니다. 더구나 흩어진 그들은 여기저기로 뿔뿔히 정착하며 새로운 그리스도교공동체를 형성하며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숨막히게 격동의 세월을 살아갔던 우리 신앙의 선조들이 클라우디우스의 통치기간동안은 어느 정도 신앙의 자유를 누리며 살았던 것도 미래에 다가올 박해를 준비하기 위해 교육을 받고 내적인 힘을 키우기 위한 시간이 아니었을까요?
주님, 선량한 마음으로 당신을 생각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당신을 찾을 수 있는 지혜를 허락하소서.
정의를 갑옷처럼 두르고 세상을 살아가게 해주시고, 세상의 논리보다는 당신의 논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열린 마음또한 허락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