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2016
그대는 인정받는 사람으로, 부끄러울 것 없이 진리의 말씀을 올바르게 전하는 일꾼으로 하느님 앞에 설 수 있도록 애쓰십시오
2티모테오 2:15
Be eager to present yourself as acceptable to God, a workman who causes no disgrace, imparting the word of truth without deviation.
2 Timothy 2:15
필리피에는 점을 쳐서 주인들에게 큰 돈벌이를 해주고 있는 점 귀신이 들린 하녀 하나를 만나게 됩니다. 그녀는 바오로를 쫓아다니며 “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종으로서 지금 여러분에게 구원의 기쁨을 선포하고있습니다”하며 여러 날을 두고 소리지르자 바오로가 그 귀신에게 “내가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에게 명령하니 그 여자에게서 나가라”라자 그 순간 귀신이 나가게 됩니다. 그 여자의 주인은 돈벌이할 희망이 사라지지 바오로와 실라스를 붙잡아 광장에 데려다 놓고 부당한 관습을 퍼뜨리며 소동을 벌리고 있다며 말합니다. 군중도 합세하여 바오로와 실라스를 공격하자 행정관들은 두 사람의 옷을 벗기고 매로 친 후에 감옥에 가둡니다. 발에 차꼬를 찬 채 깊은 감방에 갇혔으면서도 그들은 하느님께 찬미가를 부르며 기도합니다. 다른 수인들도 거기에 귀를 기울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감옥의 기초가 흔들리고 문들이 즉시 열리고 사슬이 풀려지자, 수인들이 달아났으려니 생각하고 자결하려던 간수와 함께 간수의 집에 들어가 주님의 말씀을 들려주고 세례를 줍니다. 이튿날 풀려난 바오로는 로마시민권자로서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며 명예회복을 요구하자, 행정관의 사과로 마무리 지으며 두 사람은 다음 행선지로 떠나게 됩니다.
깜깜한 감옥, 창문 하나없는 깊은 감옥에 매를 맞아 아픈 몸에 발에 차꼬까지 찬 두 사람은 아프다고 하느님께 울부짖거나 원망하지않고 찬미가를 부르며 기도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삶을 버린 사람들입니다. 오직 하느님을 위해 일합니다. 철저히 종의 모습을 지닙니다. 감옥에서 죽으라면 죽는 것이고 살아서 돌아간다해도 박해가 예상되는 거룩한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여기서 죽지 않으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을 겁니다. 환시중에 마케도니아에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지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희망을 간직한 채 찬미하며 기도하는 그들에게 또 다른 기적을 보여주십니다. 지진이 일어나고 사슬이 저절로 풀어집니다. 자다가 놀란 간수는 두려움에 자결하려고 합니다. 죄수가 탈출하면 간수가 죄수의 죄를 뒤집어 써야하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죽을 몸이니 자결하려는 간수는 바오로와 바르나바 앞에 엎드려며 “제가 구원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하고 묻자 “ 주 예수님을 믿으시오, 그러면 그대와 그대의 집안인 구원을 받을 것이오”라고 말합니다.. 그리하여 어둡고 두려운 밤에 기적을 보고 바로 그 모든 일을 행한 하느님을 경외한 간수에게 복된 삶을 살게 합니다.
바오로는 종종 자신을 ‘종’으로 표현합니다. 종의 개념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종과는 많은 차이기 있습니다, 종은 주인의 소유물이었고 그들은 자신의 의지가 아닌 주인의 의지대로 살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종의 개념을 알고 있는 바오로가 이러한 표현을 사용하는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종이 되면 세상으로부터 자유하게 됩니다, 하지만 하느님으로부처 자유하면 세상의 노예가 되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됩니다(정신부님의 말씀입니다) 그는 하느님의 인정받는 사람으로 부끄러울 것 없이 진리의 말씀을 올바르게 전하는 종이며 일꾼인 것입니다.
바오로일행은 테살로니카에 이르러 늘 하던 대로 유다인들을 찾아가 세 안식일에 걸쳐 선교하자 유다인들이 거리의 불량배들을 데려다가 군중을 선동하여 그 도시를 혼란에 빠뜨립니다. 베로니아에서도 많은 이가 믿게 되었으나 테살로니카 유다인들이 몰려와 군중을 선동하고 자극하자 바오로는 아테네로 갑니다.
바오로는 아테네가 우상으로 가득 찬 것을 보고 격분합니다. 그래서 회당과 광장에 나가 그곳 사람들과 에피큐로스 학파와 스토아 학파의 몇몇 철학자와도 대담을 나눕니다. 아테네인들과 그곳에 머무르는 외국인들은 모두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이야기하고 듣는 일로 세월을 보내는 사람들이라 바오로를 아레오파스로 데려가 바오로의 새로운 가르침을 들으려 합니다. 바오로는 아테네의 예배소를 살펴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된 제단을 보았는데 그 알지도 못하고 숭배하는 그 신을 선포합니다. 바오로는 그들이 알지못하던 창조주 하느님으로부터 시작하여 예수님의 부활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부활이야기가 나오자 지적 수준이 높은 청중들은 들으려하지않지만 몇몇 사람들은 바오로의 말을 믿게 됩니다.
구약성경에 친숙해 있는사람들에게 설교할 때는 휠씬 쉬웠습니다. 그러나 뿌리깊은 헬레니즘 문화에 익숙한 아테네 사람들을 설득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그의 아레아파고연설은 명설교였으나 그래서 큰 열매를 거두지 못하고 낙담한 채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했습니다. 어디든 타종교를 전하기는 어렵지만 바오로는 타종교를 없애려고 신상을 훼손한다든가 격하게 논쟁하지도 않습니다. 그들의 미신적인 세계관과 잘못된 우상숭배를 지적하고 속으로는 격분하더라도 특정 종교와 인종에 대해 경멸하며 비판하지않고 형제적 사랑으로 그들을 돌보고 설득하려 합니다. 종교적 분열을 야기하는 행동을 하지않으나 토론을 원하는 그들에게 자신의 지식으로 설교를 하여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결과를 빚게 됩니다. 앞으로 그는 자신의 지식으로 설교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주님, 종은 좋은 일을 해도 그의 이름을 남기지 못하고 아무개의 종으로 기록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성당에서 봉사하며 하느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당신의 종으로가 아니라 감독자인양 행동할 때가 있었습니다. 당신의 영광을 위한 종이 되어야하는 데도 말입니다.
주님, 세상에서 인정받는 종이 아니라 당신에게 인정받는 종이 될 수있는 겸손을 허락해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