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2016
영리한 이는 누구나 지식으로 행동하지만 우둔한 자는 어리석음을 퍼뜨린다.
잠언 13:16
The shrewd always act prudently but the foolish parade folly
Proverbs 13:16
오늘은 베스파니아누스에 관해 묵상해 보겠습니다
네로 황제가 죽자 황제로 추대된 사람은 갈바였습니다. 역사가 타키투스에 의하면 갈바는 "좋은 자질을 타고났다기보다 자질이 전혀 없었던 데 불과한, 요컨대 평범한 인물이었다"고 평가합니다. 그는 민심을 장악하는 것에 실패하여 결국 1년도 버티지 못하고 젊은 유망주인 오토에게 살해되고 맙니다.오토는 아내인 포파이아 사비나를 네로에게 빼앗기고 식민지의 총독으로 파견되면서 중앙의 정치 무대에서 후퇴했지만 군대를 등에 업고 갈바를 살해하고 로마 황제에 오르게 됩니다. 그러나 3개월후 경쟁자였던 비텔리우스가 다시 내란을 일으키자 초기 진압에 실패한 오토는 자결로 일생을 마쳤으며, 비텔리우스가 그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됩니다. 비텔리우스는 군을 끌고 오토를 공격하여 로마를 점령하였으나 실수투성이에 사치와 환락을 일삼은 그는 베스파니아누스를 지지한 군대에 의해 살해됩니다. 베스파니아누스는 네로의 사후 근 1년 6개월동안 네 명의 황제가 즉위하는 군인황제시대를 평정하고 황제에 오르게 됩니다.
베스파시아누스는 세리 집안의 둘째 아들로 태어납니다. 형을 따라 공직에 입문하여 36년 트라키아 지방에서 장교로 군복무를 시작합니다. 타고난 치밀함과 부지런함, 명석한 두뇌로 차근 차근 단계를 밟아 뛰어난 장군이 됩니다.로마 역내의 반란을 진압하는 등 많은 공을 세웠지만, 임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 네로 황제가 베푸는 연회에 참석하였다가 네로 황제의 시를 들으며 졸았다는 이유로 유배되어 양봉을 하며 소일하게 됩니다. 2년여의 세월이 지나자 유다 지역에서 발생한 유다독립전쟁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서 이를 평정할 지휘관으로서 임명을 받고 유다땅으로 파견됩니다. 지략과 용맹성으로 유다 북부 갈릴래아 지역을 점령하게 되고 유다 지도자였던 유명한 역사가인 요세푸스를 포로로 잡게 됩니다. 한편 갈바가 황제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그는 아들 티투스를 축하사절로 보냅니다. 티투스는 로마로 가던 중 갈바가 살해되고 오토가 황제가 되었고 곧이어 비텔리우스가 황제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자 발길을 돌려 아버지에게 가서 소식을 전합니다. 이를 들은 베스파니아누스는 티투스에게 유다 반란의 뒷처리를 맡기고 군대를 함께 로마로 향합니다. 이무렵 비텔리우스는 도나우군단 지휘관에 의해 살해되고 베스파시아누스가 로마로 돌아오기 직전인 69년 원로원은 군웅할거시대의 각종 반란 뿐만 아니라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고 돌아온 베스파시아누스를 새로운 황제로 인정하고 즉위를 공식적으로 승인합니다. 그는 왕족도 아니고 귀족도 아니었던 최초의 서민 로마황제였으며 내란을 종식시키며 흔들리는 로마의 붕괴를 막은 인물로 남게 됩니다
베스파니아누스가 황제에 올랐을 때, 페렌티움 출신의 기사의 딸이었던 도미틸라는 그가 황제가 되기 전에 죽었고 티투스와 도미티아누스라는 아들이 그를 보필합니다. 그는 아내의 사후, 재혼하지 않고 집안의 해방 노예 출신인 카이니스라는 여자를 곁에 두고 안주인처럼 대우합니다.
황제에 오른 베스파시아누스는 가장 먼저 네로가 파탄내버린 로마의 재정과 불 탄 로마를 회복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합니다. 황실의 토지를 투기꾼들에게 팔아 자금을 확보했고, 세금을 네로 시대에 대비해 몇 배나 많이 징수하고, 네로가 속주세를 면제했던 많은 도시들에게 다시금 속주세를 받았으며, 공유지를 무단으로 점유하고 있던 사람들로부터 땅을 회수합니다. 특히 유명한 것은 74년에 유료공중화장실을 설치한 것입니다. 일련의 이런 여러 조치들은 그를 탐욕스런 인물이라는 평판을 얻게 한 반면 재정뿐 아니라 군사적인 면에서도 로마를 에전의 상태로 되살려낸 현명한 군주였다는 평가도 받게 됩니다.
베스파시아누스는 네로에 의해 받았던 불만과 불평, 자신이 펼치는 정책들에 대한 불만과 불평을 다른 것을 통해 해소해주기 위해 시민들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립니다. 네로 황제의 잔재를 완전히 씻어버리고자, 네로가 지었던 황금궁전을 밀어버리고 그 장소에 7만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원형경기장인 콜롯세움을 세웁니다. 서기 75년에 시작된 콜로세움건설은 아들 티투스대에 이르러 완성됩니다. 그는 건설을 시작하면서 많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주기 위해 거중기와 같은 기계를 쓰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는 상당히 서민적이었고 원로원과의 관계도 원만했으며 반대파들을 억누르기 보단 설득하며 국정을 이끌어 갔습니다. 또한 베스파시아누스는 그리스도교인들에게는 많은 관용을 베풀려고 노력했으며 전쟁이후 유다인에게는 학교도 지어줍니다
네로 사후, 수많은 내전과 반란으로 황폐해졌던 로마를 복구해낸 베스파시아누스는 즉위 10년만인 79년에 죽음을 맞게 됩니다. 유머 감각이 뛰어났던 그는 죽으면서도 “아, 내가 신이 되어가는구나”하며 마지막 유머를 하며 죽었다고 합니다(로마 황제는 죽으면 신으로 추앙되기 때문에). 하지만 황제는 서서 죽어야한다며 서서 시종의 품에 안겨 죽었다고 합니다. 그와 티투스, 도미티아누스치세때 다수의 12사도들이 순교하게 됩니다. 아들 티투스가 왕위를 물려받게 됩니다
그는 하느님을 모르던 자였으나 타인의 종교를 인정했으며 자신이 역량을 휘할 수 있게 노력했고 원하는 바를 얻었습니다. 네로로부터 비텔리우스까지 우둔했던 선대의 왕들을 반면교사로 삼아 왕권을 확립해 나갑니다. 그는 세속의 자녀가 빛의 자녀보다 영리함을 보여줍니다.
주님, 세상적으로든지 신앙적으로든지 뱀처럽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하게, 열심히 살고 싶습니다. 제가 가진 지식과 재능이 부족하더라도 부족한 것을 채워가며 또 부족한 것을 채워주시도록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영리하고 지혜롭게 당신의 도구로 잘 쓰일 수 있도록 청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