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2016
이교인들 가운데에 살면서 바르게 처신하십시오.
베드로전서 2:12
Maintain good conduct among the soul.
1 Peter 2:12
오늘부터는 유다독립전쟁에 관해 묵상해 보겠습니다
바빌론 유배이후 유다인들은 이스라엘뿐 아니라 디아스포라를 형성하며 각지에 모여살게 됩니다. 시간이 지나자 로마 시대에는 유다인 거주지가 지중해 연안의 모든 지역에 존재하게 됩니다. 가장 많이 살았던 지역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로 유다인 인구는 거의 10-40만이상이라고 추정하며 로마에도 많은 유다인이 거주했다고 전해집니다. 로마는 이전 다른 왕국들에 비해 비교적 이방인들의 종교나 관습에 관대하였으나 항상 평화로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서기 19년엔 티베리우스황제가 상당수의 로마거주 유다인을 추방하였고, 빌라도는 에루살렘 성전에 로마의 방패를 걸어둠으로써 유다인들의 격렬한 저항을 유발했으며 루카복음서 13장에 기록된 것처럼 갈릴래아 사람들을 집단 학살하기도 했습니다. 38년, 알렉산드리아에서는 황제의 상에 절하지 않는 유다인을 고발한 그리스인과 유다인의 싸움으로 시작하여 로마군인과 유다인의 분쟁으로 퍼진 알렉산드리아 폭동이 있었습니다. 이 폭동으로 칼리굴라황제는 그리스인의 주장에 손을 들어주었을 뿐 아니라 성전에 자신의 동상을 세우도록 명령합니다. 하지만 갑작스런 칼리굴라의 사망으로 모든 게 무효화됩니다.
다신교 문화인 지중해 세계안에서 그리스, 에스파니아, 갈리아, 북아프리카와는 달리 유다인은 일신교라는 독특한 종교와 전통을 지닌 관계로 동화되기를 거부합니다. 따라서 로마와 끊임없이 마찰을 일으킵니다.거기에다 민족적 자부심과 선민사상, 경제적 이권, 그리스 로마문화의 거부, 개종한 동족과의 갈등등으로 유다인들은 다른 이방인들과도 불편한 관계에 놓여있기도 했습니다. 로마가 이민족에게 관대한 편이었으나 유다독립전쟁이 일어날 당시 로마 행정장관의 독재 정치로 말미암아 유대인의 불만이 고조되어 있었습니다. 유다교의 과격한 애국자들 및 저항자들인 열혈당원들은 단결하여 외세를 몰아내자고 끊임없이 외치고 다녔으며 그들은 각자 품속에 단도를 품고 다니고 간혈적으로 저항합니다. 팽팽한 긴장감이 유다땅에 퍼져있었습니다
젤롯당이라고도 부르는 열혈당원들은 로마에 반항 운동을 일으킨 급진적이고 호전적인 유다인 과격 단체를 지칭합니다. 열혈 당원은 우상 숭배, 배교, 그리고 기타 하느님의 질투를 불러일으키는 율법적인 죄에 대한 하느님의 의로운 진노와 심판의 대행자로서 하느님께 헌신한 자들이었으며 이들은 안식일 계명을 엄격히 준수하고 정결을 지킴으로써 자신들을 이민족으로부터 구분 시킵니다. 그들은 메시아의 출현과 그의 왕국이 이루어질 것을 희망하며 희생을 각오하고 헌신합니다. 그들의 운동이 시작된 것은 기원후6-7년 인구 조사 때 세금 회피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며 그때는 바리사이파의 과격한 분파였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들은 무력으로 이스라엘의 자주 독립을 꾀하자고 부르짖였으며 실지로 율법을 거슬리는 유다인들이나 로마에 협조적인 제사장계급등을 공격합니다. 따라서 지배계층과는 대립하였으며 핍박받는 민중에게서는 지지를 받습니다. 성경에서는 예수님의 열 두 제자중 ‘시몬’을 열혈당원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배경을 가지고 서기 66년에 시작된 유다독립전쟁(제 1차 유다 로마 전쟁또는 위대한 반란이라고도 부릅니다)이 발발하게 된 원인은 이렇습니다. 네로는 로마대화재이후 황금궁전을 짓기 위해 과도한 세금을 부과했고 이스라엘의 유다인들은 납세를 거부합니다. 이에 분노한 로마제국의 유다총독은 예루살렘성전을 정렴하여 체납된 속주세 대신 예루살렘 신전의 보물창고에서 17탈렌트의 금화를 몰수합니다. 유다인들은 자신들의 가장 성스러운 장소를 더럽힌 것에 격분합니다. 때마침 카이사리아 유다인 회당앞에서 제사를 드리는 그리스인과의 다툼이 일어납니다. 그리스어를 할 줄 하는 로마 주둔군이 중재를 하지 않았고 이에 분노한 한 대제사장의 아들이 성전에서 로마 황제에게 기도하는 것과 희생을 바치는 것을 못하게 하고 이어 예루살렘 주둔 로마군을 급습한 사건이 생깁니다. 로마 수비대가 유다인들에 의해 모두 몰살당했으며 유다인들은 매일 황제에게 올려지던 제물 헌납을 금지합니다. 이것은 로마 제국에 대한 공개적인 선전포고를 의미합니다. 왜소한 예루살렘이 대 로마 제국에 도전한 것입니다. 유다 북부를 다스리고 있던 아그리파 2세의 설득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폭동은 유다 서부와 남부로 펴져 나갑니다. 네로는 6개월후 3만명을 동원하여 갈루스를 총독으로하여 진압군을 투입시켰으나 게릴라전을 펼친 유다 반란군에게 참패하여 후퇴합니다.
유다인들은 하느님만을 섬기며 고유한 관습을 지니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권위주의적 고대사회에서 자신만의 도덕과 가치관, 종교를 가지고 있는 식민지민족을 고운 눈으로 바라볼 수는 없습니다. 유다인에게 로마인이나 그밖의 민족들이 이방인이지만 역으로 그들에게 유다인은 이방인입니다. 유다인이 제대로인 국가를 가지고 있지 않는 한 분쟁과 박해는 불을 보는듯 뻔한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사도는 당시의 시대상황을 고려해 권위에 복종하라고 하며 또한 이렇게 말합니다.”이교인들 가운데에 살면서 바르게 처신하십시오.그래야 악을 저지르는 자들이라고 여러분을 중상하는 그들도 여러분의 착한 행실을 지켜보고, 하느님께서 찾아오시는 날에 그분을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 글로벌시대를 살아가는 저희 주위에는 다양한 인종만큼이나 다양한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그들 모두도 당신의 자녀임을 인정하게 해주시고 사찰에 가서 성가를 부르며 소리높여 기도하는 과격한 종교인이 되기보다는 저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그들이 당신을 찬양할 수 있게 저희가 바르고 착하게 살 수 있는 힘을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