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2016
보라, 내가 곧 간다. 이 책에 기록된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사람은 행복하다
요한 묵시록 22:7
Behold, I am coming soon. Blessed is the one who keeps the prophetic message of this book.
Revelation 22:7
도미티아누스황제는 인기를 얻고 싶었고 ‘신’과 같은 경배와 복종을 받고 싶어합니다. 그는 고대 그리스 경기를본떠 4년마다 1번씩 개최한 경기를 주재할 때는 그리스풍의 옷과 금관을 착용했으며 동료 심판들은 여러 신들로 둘러싸인 도미티아누스의 초상이 새겨져 있는 관을 써야 했습니다. 도미티아누스는 이렇게 원로원을 비롯한 정치적 반대파들에게 미움을 받고 있으면서도, 자주 ‘주인이자 신인 짐이 하찮은 너희들에게 이렇게 명하노라’와 같은 상당히 오만한 태도를 보입니다. 그는 원로원과 더욱 사이가 나빠졌으며 그에게 밉보인 사람들은 처형되었고 반역죄로 고발당하게 됩니다. 그는 공포정치를 펼치게 됩니다
토미티아누스 황제는 로마제국과 자기에 대한 복종을 이끌어내기 위해 자신을 '주님이자 하느님'이라고 부르게 합니다. 로마는 선정을 베푼 황제들에 대해서는 사후에 신격화하였습니다. 아버지와 형,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 클라우디우스에게만은 이러한 영예가 주어졌습니다. 따라서 충성스런 로마 시민들은 신전을 찾아가 죽은 황제를 위해 향불을 피우며 그들을 기억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관습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살아서 신으로 추앙받고자 했던 그는 비난을 받게 됩니다. 당시 황제의 신격화는 그다지 혐오스러운 것은 아니었지만 유다교와 그리스도교인들에게는 대단한 신성모독으로 여겨졌으며 극심한 반발을 초래합니다.
하느님을 섬기며 우상을 배척하고 엄격한 율법을 가지고 있는 유다교와 그리스도교의 특성상 그들의 반발은 불을 보는듯 뻔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반발에도 도미티아누스도 전혀 물러서지 않습니다. 그는 먼저 반유다교 법령들을 발표합니다. 이 법령들로 인해 로마 시민들이 유다교로 개종하는 것은 금지합니다. 수에토니우스는 특별히 도미티아누스가 유다인들에게 보인 적대적이고 모욕적인 정책을 보고합니다. 황제는 유다인들에게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고 세금 징수 대상자를 가려내기 위하여 할례 검사를 철저히 하는 등 적대적이고 모욕적인 정책을 시행합니다. 이런 조치는 유다인들의 반란을 초래할 수 있으므로 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이스라엘 땅에서는 삼엄한 공포 정치가 행해집니다. 한편 유다교와 그리스도교를 잘 구분하지 못했던 당시 로마인들은 유일신을 섬기는 두 종교집단을 함께 박해합니다. 네로 치하에서의 기독교 박해가 로마 시에만 국한되었던 것과 달리 도미티아누스 치하에서의 박해는 멀리 소아시아 지방에 까지 미칩니다. 유세비우스는 <교회사>를 통해 이 당시 나자렛에 사는 예수님의 친족들이 심문을 받은 사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친족들은 다윗 왕실에 속한 혈통이었기 때문에 자의든 타의든 반란의 선봉에 설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로 고발됩니다. 하지만 도미티아누스는 이들이 세속 권력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소박한 농부들임을 알고 그냥 무죄 방면했다고 합니다.
도미티아누스의 박해로 인해 교회는 최대의 위기를 맞이합니다.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체포, 고문, 사형앞에서 신앙을 굳건히 지키기도하고 배교를 하게 됩니다. 이때 사도 요한은 로마군병들에게 붙잡혀 파트모스섬에 유배됩니다. 요한은 그즈음 요한묵시록을 쓰기 시작하여 도미티아누스가 살해된 이후 요한 복음서와 요한 묵시록을 마무리했다고 추정합니다. 요한은 하느님 백성이 가져야할 자세와 궁극적으로 추구해야할 가치를 상기시켜주고 희망을 간직하기를 요한 묵시록을 통해 일깨워줍니다. 요한은 억압과 박해는 끔찍하지만 박해를 참아낼 이유가 있음을 상기시켜줍니다. 하느님 백성이 받는 억압과 박해속에는 항상 하느님의 구원의 승리가 함께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하느님께서 세상을 통제하고 계시다는 것을 깨우치게 해줍니다. 세상은 선과 로마제국주의로 대표되는 악에 둘러싸여 있고 그리스도인들은 그중에서 선을 택해야 하며 신앙을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를 하라고 말합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인들은 구원을 받고 마침내 사탄을 암시하는 용과 같은 존재들이 영원히 파멸돼 마침내 새 하늘과 새 땅이 드러나 혼인잔치에 초대받은 사람들의 영원한 생명을 노래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현재의 상황은 절망이지만 절망은 아닌것입니다. 죽음 뒤에는 부활이 있고 우리는 부활의 영광에 동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백성들에게 죽음이 한발짝 다가옵니다. 배교도 힘들고 순교도 두려울 수 있습니다. 그 때 그들에게 희망이 되는 건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사람은 행복하다는 하느님 말씀일 것입니다. 죽음으로 생명을 얻고 행복의 길로 들어간 사람들의 무리는 도미티아누스시절에서부터 시작하여 4세기까지 어어집니다.
주님, 박해와 죽음이 기다리는 상황은 아니지만 세상살이는 어렵고 힘듭니다. 조금만 눈감으면 돈을 좀 챙길 수 있고, 동료의 비리를 떠들고 다니면 내가 우위를 점할 수 있기도 합니다. 그러면 세상살이는 쉬워질 수 있겠지만 영적으로는 불행일 뿐일 것입니다. 주님, 영적인 행복을 추구하게 해주시고 당신의 말씀을 소중히 간직하며 세상을 살아가게 해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