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017
인간이 같은 인간에게 자비를 품지 않으면서 자기 죄의 용서를 청할 수 있겠느냐?
집회서 28:4
Can one refuse mercy to a sinner like oneself, yet seek pardon for one’s own sins?
Sirach 28:4
1890년 마리아 테레사 고레티는 이탈리아의 가난한 소작인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가 12살된 어느 날, 이웃인 19살된 알렉산드로는 집안에서 혼자 바느질을 하고 있던 마리아에게 칼을 빼들고 강간을 시도합니다. 그때 그녀는 알렉산드로가 하는 일이 죄임을 경고하며 필사적으로 저항하다 11군데나 칼에 찔려 쓰러지고 맙니다. 그녀는 그녀의 비명소리를 듣고 달려온 가족들에 의해 병원에 실려갔으나 의사가 손을 쓰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다음날, 병자성사를 주기위해 그녀를 찾은 사제는 그녀에게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원수들을 용서하셨듯이 너도 그를 위해 기도하고 용서해 주지 않겠니?"라고 묻습니다. 그녀는 "예, 저도 그 사람을 용서하고 그 사람이 죽은 후에 하늘나라에서 제 옆에 올 수 있게끔 기도하겠어요"라고 말하며 숨을 거두게 됩니다. 알렉산드로는 30년형을 받고 수감생활을 하던 중 마리아가 백합꽃을 모아 자신에게 가져다주며 자신을 위해 기도해주는 꿈을 꾼 후 사제에게 이 사실을 고백하며 눈물을 흘리며 참회합니다. 복역을 마치고 석방된 알렉산드로는 마리아의 어머니를 찾아가 용서를 구했으며 매일 마리아에게 전구를 청하며 기도하며 그녀를 '나의 꼬마 성녀님'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그는 이후 그녀의 가족들과 함께 1950년에 거행된 마리아 고레티의 시성식에 참석하게 됩니다. 알렉산드로는 카푸친 작은 형제회의 재속회원이 되었으며 죽을 때까지 수도원에서 살며 그곳에서 접대원과 정원사로 봉사하며 지냈습니다.
나에게 피해를 준 이웃, 나에 대한 악소문을 퍼뜨리고있는 교우, 내 삶을 바꿔버린 원수,나를 궁지로 몰아낸 친구, 정신적 폭력을 일삼는 가족....우리는 그들을 용서해야 할까요? 학계의 연구에 의하면 용서를 잘하는 사람은 스트레스지수가 낮고 행복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용서의 부정적 측면도 이야기합니다. 빠른 용서는 가해자에게 잘못된 행위를 반복하게 한다고 합니다. 상대방에 대한 용서에도 지혜가 필요한 듯 합니다.
일전에 '아름다운 용서'라는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습니다. 용서하는 사람도 용서받는 사람도 뜨거운 눈물을 흘립니다. 용서가 얼마나 힘들면 이런 프로그램이 있을까하고 생각해 봅니다. 상처와 분노, 원한과 복수심을 품은 사람의 찢겨진 마음을 어떻게 치유해야 할까요? 머리속에 그 사람이 떠오를 때마다 머리털이 치솟고 구역질이 날 것 같은 분노가 생길 때 용서라는 고통스런 방법을 통해 자유를 찾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가슴속 깊이 웅크리고 있던 분노를 캐내면 기적같은 영혼의 자유를 맛볼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도 똑같은 잘못을 지을 수 있는 불완전한 존재라는 것과 나의 원수또한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한 사람이라는 것을 힘들지만 인식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용서하는 사람은 강자입니다. 자신을 다스릴 줄 알고 자비를 품을 줄 아는 강자....어리지만 마리아 고레티성녀는 용서를 선택하여 자신은 성녀가 되고 가해자는 수사가 되었듯이.
원수를 사랑하라하신 주님,말로는 나에게 치명적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하겠다고 말하면서도 찢겨진 가슴에선 아직도 상처자국이 선연합니다. 진정한 용서는 아직도 저에게는 힘듭니다.
원수를 위해서도 십자가 죽음을 택하신 주님, 용서는 단지 눈감아주고 상대방의 잘못을 기억하지 않는 것만이 아니겠지요? 진정한 용서는 당신을 닮은 자비의 마음을 품는 것.....
주님, 힘들지만 잘못을 저지른 그들을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을 품게 해주시고 저도 당신의 용서를 받게 해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