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726
2016년 7월 16일 토요일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사제(마태 12, 14-21)
“보아라, 내가 선택한 나의 종 내가 사랑하는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다. 내가 그에게 내 영을 주리니, 그는 민족들에게 올바름을 선포하리라.”(마태 12, 18).
오늘 예수님께서 “내가 선택한 나의 종 내가 사랑하는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다.” 고 하시는 이 말씀이 저을 두고 하는 말씀이었으면 하는 바램이 듭니다. 예수님의 마음에 드는 사제가 바로 당신의 선택과 당신의 사랑에 응답하는 삶임을 깨닫습니다. 그러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당신께서는 당신의 영을 저에게 부어주십니다.
내가 신부가 되지 않았다면 지금 어떠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하고 가끔 생각을 해 봅니다.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부족한 저를 사제로서 불러주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사제이기에 세상 사람들이 느끼지 못하고 즐기지 못하는 혜택을 받고 살아갑니다. 주어진 의무도 있지만 그 의무를 넘어서 아브라함이 자신의 생명보다도 귀중한 아들을 하느님께 번제물로 바칠려고 했던 그 마음을 간직하고자 합니다.
사제로서 살아오면서 현재의 제가 있기까지 음으로 양으로 도와 주셨던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들 드립니다. 나이가 들면서 이 길이 혼자서는 갈 수 없는 길임을 절감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당겨주시고 여러분들께서는 밀어주시는 그 힘으로 가는 길임을 깨닫습니다. “언제나 기뻐하고 끊임없이 기도하고 모든 것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이다.”(테살(테살 전 5, 16-18)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이 더욱 가슴 깊이 와 닿습니다.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는 일은 바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지상 명령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구제적인 모습이 바로 이 말씀에 담겨있슴을 깨닫습니다.
오늘 복음의 전 부분에서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쳐줍니다.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고발할 구실을 찾기 위해서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어도 됩니까?”하고 질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비유로 "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에게 양한 마리가 있는데, 그 양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다고 하자. 그러면 그것을 잡아 끌어 내지 않겠느냐?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니 안식일에 좋은 일은 해 도 된다.”(마태 12, 11-12) 하고대답을 하십니다.
당시의 사람들은 양이 웅덩이에 빠지면 양이 죽지 않도록 일단은 조치를 하고 양을 그 웅덩이에서 끌어내는 것은 안식일이 지난 다음에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안식일이라 하더라도 양을 웅덩이에서 끌어내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관습을 잘 아시는 예수님께서 양보다도 사람이 훨씬 귀하기 때문에 비록 안식일이라 하더라고 ‘좋은 일(병을 고치는 일”은 해도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를 본 바리사이들은 이제 나가서 예수님을 어떻게 없앨까 모의를 하였습니다(14절).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바리사이들은 군중들이 보는 앞에서 예수님과 논쟁을 하는 것이 자신들에게 불리함을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말로써 되지 않으니까 예수님을 제거하는 방법을 찾기위해서 자신들 만의 모임을 가집니다. 이런 바리사이들의 태도는 우리들의 내면에도 존재하고 있는 감정입니다. 단지 표출하지 않았을 뿐이지요.
바리사이들은 우리의 좋은 반면교사이기도 합니다.예수님께서도 이들의 이러한 의도를 잘 파악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그곳을 떠나십니다. 예수님께서 그 자리를 떠나시는 이유에 대해서는 18-21절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과 다투거나 소리치시지도 않으십니다. 이는 당신께서는 이들의 방식을 따르지 않으심을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세속적인 사람들의 공세에 최선의 대응은 이론적인 논쟁이 아닌 바로 삶을 통해서 이들에게 모범을 보이는 것임을 우리에게 알려주십니다.
‘올바름을 승리로 이끌 때까지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연기 나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니’ (20)라는 표현이 우리의 관심을 끕니다.
여기서 ‘올바름을 승리로 이끌 때까지’라는 말에서 ‘올바름’의 의미는 주석성경의 설명에 의하면, ‘의로움의 하느님께서 사람들과 맺으시는 계약 관계의 바탕으로 삼으시는 법규들을(창세 18, 25; 신명 4, 6-8) 가르킨다고 합니다. 달리 표현하면 ‘하느님의 정의’라고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올바름을 승리로 이끌 때까지’는 하느님의 정의가 완성될 때까지로 받아들이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부러진 갈대’라는 표현은 구원받을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연기나는 심지’는 이미 꺼져버린 심지를 말합니다. 부러진 갈대와 같은 의미로 사용됩니다. 따라서 ‘부러진 갈대를 꺽지 않고 연기나는 심지를 끄지 않는다.’는 말은 예수님의 구원의 대상에는 어떠한 예외도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삶의 여정을 보면서 깨닫습니다. 예수님의 살의 여정에는 언제나 시기와 박해와 음모가 동행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세속적인 박해를 앞에 두시고서도 당신의 구원사업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어떠한 사람도 당신의 구원대상에서 제외되지 않음을 알게 됩니다.
바로 예수님의 이 삶이 우리가 언제나 기쁘고 끊임없이 기도하고 모든 것에 감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내가 싫다고 나를 괴롭힌다고 그들을 소외시키지 않으시는 예수님의 삶이 나의 삶을 통해서 보여지는 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에 드는 사제, 언제나 예수님의 사랑을 이웃에게 전하는 그러한 하루를 살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