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보편성
스힐벡스는 '그리스도교만이 유일한 진리의 종교이며, 가장 우수한 종교인가?'라는 질문은 자신의 종교에서 생각하는 종교개념을 다른 종교와 비교해서 하는 질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질문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그리스도교가 어떻게 하면 자신의 정체성과 유일성을 유지하면서 타종교의 긍정적인 가치를 인정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이에 그리스도교에서는 타종교와 새로운 관계 형성을 위한 근본적 신학 고찰을 필요로 한다. 그리스도교 정체성은 타종교의 긍정적인 가치를 인정함으로써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타종교와 만남을 통해 더욱 두드러지게 인식된다. 그리스도교 정체성은 하느님과 관계를 나자렛 예수의 특수한 역사와 밀접한 관계로 본다.
예수의 하느님은 예수의 특수한 역사를 통해 구원의 보편성을 역사 속에서 구체화한다. 예수의 특수성은 '열림'을 상징하며 이 특수성 안에 '갇힘'을 상징하지 않는다. 바로 이것이 그리스도교가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타종교와 긍정적 관계를 맺도록 해주는 것이다. 예수의 하느님은 모든 인간을 구원하시는 분이고, 모든 인간의 해방이기에 그리스도교 신앙이 보편성을 가지며 이는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항상 열려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스힐벡스는 하느님 구원 행위를 종교 안에 한정시킬 수 없고, 구원 역사를 그리스도교 역사로 축소시킬 수 없다고 했다. 그에게 인간 역사 전체는 이미 하느님의 인도하심에 있고 인류 역사가 바로 구원의 장소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라는 말을 '세상 밖에는 구원이 없다'라는 말로 바꿔서 이야기한다. '세상 밖에 구원이 없다'는 것은 하느님 구원 역사는 교회 역사 안에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 역사 안에서 인간 역사를 통해 이뤄진다는 말이다.
이러한 신학적 견지는 타종교에서 개종을 주목적으로 했던 선교 방향을 하느님 나라의 선포로 바꿔 놓게 하고, 인간 해방을 위해 신앙인과 비신앙인이 충분히 협력할 수 있게 한다. 그리스도교 신앙 자체가 보편성을 지니는 것이 아니라, 이를 각 상황에서 구체화할 때 보편화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이 고통받는 사람들과 연대하며 구체적으로 복음을 살 때 그리스도교가 보편화되는 것이다. 그의 이러한 신학적 논지는 세계화 현상으로 여러 종교가 서로 만나고 섞이는 오늘날에 그리스도교 정체성과 유일성을 상대화하지 않으면서, 타종교와 협력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는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