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인 공동체로서,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이 교회의 본질적 요소다. 교회 기초를 이루는 것은 고유한 예식이나 제도, 특정한 직무를 포함한 고유한 조직이 아니라 오로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고백이다.
예수의 핵심 관심사는 하느님 나라였다. 따라서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신자 공동체인 교회는 당연히 하느님 나라의 선포를 이어가야 한다. 교회는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전령(傳令)으로서, 하느님 나라에 철저히 봉사해야 한다. 교회는 자신이 아니라 종말에 최종적으로 완성되는 하느님 나라를 선포해야 하고, 강제와 무력을 배제한 헌신적 봉사를 수행하며, 죄를 멀리하더라도 결코 죄인을 내치지 않는 자비의 공동체가 돼야 하고, 자신의 업적에 의존하지 말고 철저히 하느님을 신뢰하고 순종하는 공동체가 돼야 한다.
큉은 교회가 신앙인 공동체임을 강조함으로써 교회를 교계제도와 동일시했던 공의회 이전 시각을 극복하고자 했다. 그는 이런 맥락에서 과거에 소홀히 다뤄졌던 모든 신자의 보편 사제직을 부각시킨다. 또한 교계 직무는 성령의 다양한 카리스마 중 하나로서 교회 공동체 전체를 위한 봉사 직무로 이해한다. 교황직에 관해서는 교회론 마지막 부분에서 다루면서 그것은 교회 일치를 위한 봉사로서, 교황 수위권은 법적 권력이나 지배가 아니라 '봉사 수위권''사목 수위권'이 돼야 한다고 역설한다.
20세기 교회론의 대가 콩가르(Y.Congar, 1904~1995) 추기경은 큉의 교회론이 이룩한 가장 큰 공헌은 바오로 신학에 근거해 교회의 카리스마적 차원을 부각시킨 것이라고 평가한다. 또한 과거의 교회론이 교회를 가시적인 머리인 교황으로부터 연역해서 생각했지만, 큉이 교회 발달에 대해 먼저 관심을 두고, 교계제도와 교황을 마지막에 다룬 것은 정당하다고 인정한다. 하지만 콩가르는 큉이 교회 전통과 직무에 대해 충분하게 고려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교부들의 교회론이나 교회의 성사적 측면이 거의 언급되지 않았고, 교회 전체의 사도적 계승만을 강조한 나머지 교회 직무자를 통한 사도적 계승의 측면은 소홀했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측면에서 큉의 교회론에 찬성 못지않은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도 컸다. 비판의 목소리에는 교황청 신앙교리성도 포함돼 있었다. 1967년 12월 교황청 신앙교리성은 조사를 위한 '대화'가 있기 전에 이 책의 보급과 번역을 금지한다고 통보했고, 그 다음 해 9월 큉을 소환했다. 하지만 큉은 공정한 '대화'를 위한 조건이 선결돼야 응할 수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의견조율을 위한 양편의 협상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