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고통,수난을 중심에 둔 정치신학의 선구자 요한 밥티스트 메츠(Johann Baptist Metz)는 1928년 독일 바이에른 아우어바흐에서 태어났다. 1952년 「하이데거와 형이상학의 문제」라는 논문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고, 1954년 사제품을 받고 다년간 사목생활을 했다. 1962년 칼 라너의 지도로 '그리스도교 인간 중심론, 토마스 아퀴나스의 사유 모형'이라는 주제로 신학박사 학위논문을 작성했다. 1963년부터 1993년까지 뮌스터대에서 기초신학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쳤고, 1965년에 이브 콩가르, 칼 라너, 에드워드 스힐벡스 같은 유수의 신학자와 함께 국제신학잡지인 '콘칠리움'(Concilium)을 창간하는 데 이바지했다.
메츠는 무엇보다도 인간 고통과 수난 역사를 신학적 사유의 중심에 둠으로써 신학의 얼굴을 새롭게 한 정치신학의 선구자이자 우리 시대의 예언자적 신학자다. 메츠가 인간의 고통과 수난의 역사를 끈질기게 붙들고 씨름하게 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동료 소년병들의 참혹한 죽음을 체험한 것이 계기가 됐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고작 열여섯이었던 메츠는 소년병으로 소집돼 수박 겉핥기식 군사훈련을 받고 전선에 배치된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천진난만한 소년의 웃음과 전선의 불안을 함께 나눴던 또래 소년병들이 폭격기와 탱크의 맹폭을 받아 고통에 휩싸인 처참한 얼굴로 죽어있는 것을 목격한다. 이 체험은 메츠의 유년시절 꿈과 희망을 산산이 부숴놨고, 견고했던 신앙적 신뢰에 깊은 균열을 일으켰다. 메츠는 훗날 이 고통스러운 체험과 기억이 자신의 신학 생애와 운명을 결정짓고, 인간의 고통과 수난의 역사에 천착하게 된 근본체험이 됐다고 고백한다.
이 같은 근본체험과 더불어 동시대의 정신사적 흐름에 큰 영향을 미친 이들과의 대화와 만남은 메츠가 정치신학 근간을 세우는 데 큰 자극을 줬다. 특히 1960년대 초반 활발히 이뤄진 그리스도인과 마르크스주의자 사이의 비판적 대화와 희망의 철학자로 잘 알려진 에른스트 블로흐, 그리고 프랑크푸르트 학파에 속했던 이들과 만남은 실존주의 신학과 초월론적 신학에서 벗어나 정치의식을 형성하게 해줬다. 또한 아우슈비츠로 상징되는 재앙의 역사와 제3세계에 속한 사람들의 비참한 실존 상황은 '고통 당하는 이들의 권위'를 줄곧 변호하는 데 근본적 동기가 됐고, 유럽 중심주의 교회에서 문화적 다원주의 세계교회로 변화를 추동했던 제2차 바티칸공의회 역시 메츠의 신학적 전망 변화에 작용했다.
칼 라너의 초월론적 신학에 대한 메츠의 비판
메츠는 한결같이 라너를 스승이자 친구로 생각했다. 심지어 그가 스승 라너의 초월론적 신학을 신랄하게 비판했을 때도 변함없었다. 메츠는 라너의 신학이 인간학적 전환을 이룸으로써 스콜라적 객관주의의 견고한 바위를 깨고 나와 신학의 얼굴을 새롭게 단장했다고 평가한다. 그의 정치신학 역시 라너 신학의 빛으로부터 조명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메츠는 이미 1966년 불트만의 실존주의 신학과 마찬가지로 라너의 신학 역시 역사성이 없는 사사화 경향이 농후하다고 비판하고, 급기야 그의 주요 저작인 「역사와 사회 속의 신앙」(1977)을 통해 라너의 초월론적 신학과 결별한다.
메츠의 라너 비판의 핵심은 무엇보다도 초월론적 신학이 '주체의 범주적-역사적 경험'을 '초월적 경험'으로 환원시켰다고 보는 데 있다. 달리 말하자면 라너의 초월론적 주체신학에서 경험의 개념은 역사적 경험의 구조를 지니고 있지 않으며, 역사적 경험과 역사적 주체의 본질을 구성하고 있는 사회적 모순과 적대를 구체성이 상실된 초월적 경험으로 환원시킴으로써 결국 비변증법적 화해를 이룬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물론 라너는 메츠의 이런 비판과는 달리 주체의 초월적 경험이 역사로부터 분리돼 있지 않으며, 오히려 역사에 정향돼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럼에도 라너의 초월적 경험의 구조가 과연 구체적 역사성을 담보하고 있으며, 또한 그것이 인간으로 하여금 사회적 모순과 적대를 꿰뚫고 자기 정체성 정립을 가능하게 하는가 하는 점에서는 비판의 여지가 충분하다. 메츠 정치신학의 출발점, 아우슈비츠
정치신학의 신학적 장소는 구체적인 역사이며 이는 특히 아우슈비츠로 상징되는 고통의 역사다. 메츠 신학이 시대 상황에 민감하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아우슈비츠가 그의 사유 중심에 놓이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의 신학적 사유에서 핵심을 이루는 '위험한 기억'은 아우슈비츠라는 구체적 역사와 관계함으로써 시대사적으로 규정된다.
메츠에게 아우슈비츠는 여태까지 수행해 온 신학을 '중단'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그리스도교 신학이 과연 아우슈비츠 이전과 이후에도 여전히 똑같은 것일 수 있는가'라고 물으면서 아우슈비츠를 그리스도교와 신학 전반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는 신호이자 규범적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신학은 아우슈비츠 앞에서 지금까지의 역사 해석을 중단하고 역사 안에서 하느님 행위에 대한 물음을 새롭게 제기해야 하며, '모든 것은 아우슈비츠에 따라 평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아우슈비츠가 모든 신학적 진술의 출발점이 돼야 하며, 그리스도교 신학은 이른바 '아우슈비츠 이후의 신학'이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메츠에 따르면, 아우슈비츠 이후 신학은 신학적 전통과 진술의 이데올로기 차원을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검증하는 것을 의미한다. 아우슈비츠는 신학적으로 주체도 맥락도 없는 사유체계와 신앙체계로부터 결별해야 한다는 표징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메츠는 시대와 역사와 무관하게 수행해 온 신학은 물론이고 사변적이고 제일철학적인 사유에 근거해 주체성을 정초하려는 신학적 사유방식을 폐기해야 한다고 말하며, 타자의 고통을 기억하는 '기억의 이성'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기억의 이성을 토대로 메츠는 자신의 정치신학 기획을 △신정론으로서 신학 △주체의 신학 △추종의 그리스도론 △성토요일 그리스도론으로 구체화한다. 신정론으로서의 신학
메츠에게 아우슈비츠에 닿아 있지 않은 모든 그리스도교적 신정론과 의미 진술은 일종의 '신성모독'이다. 신정론의 문제는 일차적으로 부당하게 고통당하는 이들의 구원에 관한 물음이며 동시에 하느님에 관한 진술은 우리 역사에서 부당하게 고통받는 이들, 희생자들, 패배자와 같은 타자의 구원 외침과도 같다. 따라서 메츠에게 신정론은 신학의 정수와 같은 문제이다.
이런 관점에서 메츠는 무감정의 신학과 고통의 문제에 민감하지 못한 신학을 비판한다. 신정론의 문제는 신학적으로 축소되거나 과잉응답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신정론의 문제는 모든 것을 화해시키는 응답을 찾는 방식으론 결코 수행될 수 없고 끊임없이 하느님께 물어야 하는 종말론적 물음이기에 그렇다. 이런 맥락에서 메츠는 아우구스티노의 고전적 신정론을 비판적으로 평가한다. 그에 따르면 아우구스티노의 신정론은 하느님의 정의에 대한 종말론적 물음을 인간의 죄에 대한 인간학적 물음으로 대체해, 세계 내 악과 고통의 원인과 책임을 하느님이 아니라 배타적으로 인간에게 떠맡겼고 그럼으로써 하느님을 향한 반문을 무력화시켰다고 본다. 또한 신정론 문제를 '함께 고통당하는 하느님' 관점에서 보는 입장에도 비판적인데, 그 까닭은 하느님이 함께 고통을 당하신다는 입장은 인간의 고통과 사랑을 화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배가시키고, 결국 하느님 사랑의 전능함과 그 사랑의 불패성을 종속시킨 관점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메츠는 삼위일체 신학에 근거한 신학적 응답에도 회의적이다. '하느님과 하느님 사이의 고통'으로 해석하는 이 견해는 하느님 안에서 영속되는 고통으로 안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메츠는 신정론이 하느님을 향한 반문으로 구성돼야 하는데, 그것은 고통의 역사에 직면해 하느님 자신만이 '그의 날'에 정의를 이룰 수 있기에 그렇다고 말한다. 이러한 신정론을 '고통에 민감한 신학' 혹은 '하느님을 향한 고통의 정치적 신비'라 일컫는다.
이 신비는 무엇보다도 시편, 욥기, 탄원의 노래, 그리고 예언서의 여러 대목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이스라엘 기도 전통에서 만날 수 있다. 이 기도의 언어는 그 자체로 고통의 언어이자 위기의 언어이고, 근본적 위험에 처했을 때의 언어요, 탄원과 고발, 외침의 언어다. 말 그대로 이스라엘 자녀들의 투덜거림이다. 이러한 하느님 신비의 언어는 일차적으로 고통에 관한 위로로 가득 찬 응답이 아니라 고통 속에서도 열렬하게 하느님께 반문하는 것이며 긴장감으로 가득 찬 기다림이다. 이는 마치 예수가 하느님마저 떠나버린 십자가 속에서도 하느님을 향한 깊은 신뢰 속에서 드리는 외침의 기도, 곧 무의미한 고통 속에서 하느님을 체험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이 하느님 체험은 오로지 자기 지평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낯선 타자의 고통, 심지어 적대자의 고통까지도 수용하고 기억하는 것이다.
※용어설명
신정론=전지전능하고 자비로운 신과 악의 존재가 서로 공존함으로써 나타나는 문제를 설명하는 데 사용되는 신학적 개념.
정치신학=신앙의 제재(題材)를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신학. 이전의 신학은 모두 사회의 구원을 무시한 개인적 구원, 개인적 문제에만 국한되었다고 비판했다. 해방ㆍ여성신학 등으로 발전했다.
김정용 신부(광주가톨릭대 교수) ▲1993년 수품(광주대교구) ▲독일 프라이부르그대 기초신학 전공(신학박사) ▲주요논문 : 「복음과 세상 없는 복음화 질주?」 외 한국 소공동체 관련 논문 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