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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10-26 22:22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요한 밥티스트 메츠(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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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정건석
    조회 : 4,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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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요한 밥티스트 메츠(중)

인간, 하느님과 관계와 기억의 힘으로 주체적 존재 돼

주체의 신학


 메츠는 자신의 초기 저작 「세상의 신학을 향하여」(1968)에서 표방한 정치신학의 탈사사화(脫私事化)를 「역사와 사회 속의 신앙」(1977)에서 재차 강조하면서 주체와 역사성이 담보되지 않은 다양한 형태의 신학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한다. 아우슈비츠 이후 진리와 의미개념은 사사화하거나 개인주의화한 사유방식, 동일성의 사유체계로부터 모색될 수 없고 구체적 역사에 대한 주체적, 실천적 관계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주체의 정치신학은 역사적 의식이 주체와 실천과 관계된 기억의 이성에서 방향을 잡고, 이렇게 주체와 결합된 기억을 공적 차원의 의식으로 나아가도록 한다. 또 모든 인간은 하느님 앞에서 주체적 존재로 서고, 타자에 대한 무조건적 책임을 통해 보편적 연대를 추구한다. 이런 의미에서 메츠의 주체의 신학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역사적 사회적 함의를 고려한 가운데 인간학적 전환을 신학적으로 완수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 주체의 신학은 인간을 주체적 존재의 사회적 본질과 역동적인 역사적 과정에서 이해하고, 인간의 주체적인 동일성은 역사적 사회적 매개를 통해 입증할 수 있는 것으로 본다. 

 이러한 관점에서 메츠는 특히 라너의 초월론적 신학을 비판한다. 주체의 구체적 역사적 체험은 사회적 모순과 적대적인 것들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데, 라너의 초월적 경험의 주체는 이를 간과해 인간의 역사적 고통에 직면한 주체의 동일성을 과도하게 정당화했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메츠는 성경에 근거한 주체 형성의 사유 전통을 수용하고 이를 통해서 라너의 초월적 주체신학을 극복하고자 시도하는데, 그에 따르면 주체는 실천과 그의 인식론적인 범주에 해당되는 '기억'과 '서사'를 통해서 본질적으로 성취된다. 기억과 서사는 역사적 투쟁과 위협 속에서 정체성의 확증과 구원을 위한 근본적인 범주며, 이 기억과 서사 안에서 인간은 자신을 주체로 체험하고 주체로 형성된다. 이런 의미에서 기억과 서사는 인간 주체성을 구원하는 실천이성의 범주이며, 모든 인식의 가능조건이 된다. 

 기억에 기초한 주체의 신학은 아우슈비츠의 상황에서 재차 강조된다. 아우슈비츠 이후 그리스도인은 역사의 희생자와 아우슈비츠의 유다인에게 의존해 있기에 주체의 역사 의식은 고통당하는 이와의 관계 속에서 보증될 수 있다. 주체는 고통 당하는 타자를 위한 책임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고, 타자와 더불어 사는 존재를 주체됨의 본질로 간주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주체는 타자를 향해, 타자와 더불어(살아 있는 자, 죽은 자, 희생자를 모두 포함한 타자) 타자를 위해 존재함으로써 자신을 체험하고 보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으로써 자신의 심층에 이르고 '나를 나로서 말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치적 자아로서 주체는 자신의 정체성을 타자와 무관한 방식으로 구축하려는 관념적인 신학이나 심층심리학의 자아 규정과 구별된다. 이와 더불어 메츠는 근대화 과정과 근대화 이후의 과정에서 시장제일주의 사고와 교환주의적 사고가 지배하면서 인간이 무력화되고 있는 현실을 감안, 주체의 해방 가능성을 모색한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하느님과의 관계와 하느님에 대한 기억의 힘으로 참으로 주체적인 존재가 될 수 있고 역사의 주체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추종의 그리스도론

 메츠는 아우슈비츠 이후의 그리스도론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진리를 위해서 유다-성서적 전승의 뿌리와 연결돼야 한다고 말하는데, 이 전승에는 종말론적 시간 의식과 추종의 실천을 통한 그의 기억이 핵심을 이루기 때문이다. 이런 전망에서 메츠는 아우슈비츠 이후의 그리스도론으로서 '추종의 그리스도론'(Nachfolgechristologie)과 '성토요일 그리스도론'(Karsamstagschristologie)을 전개한다. 

 메츠 신학에서 중심을 이루는 실천은 이제 추종 형태로 구체화되는데, 이는 그리스도교 정체성을 증언하는 근본적 범주며 동시에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의 본질이다. 추종은 '정체성 실현을 위한 기준'이다. 따라서 주체가 된다는 것은 추종의 실천에서 이뤄지며, 이 실천을 통해 주체됨의 유효성과 의미를 얻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추종은 주체가 되기 위한 결정적인 가능조건으로, 그리스도인 실존은 바로 추종의 실존이다. 이로써 주체와 관계된 추종의 실천은 그의 그리스도론에서 본질적인 것으로 자리매김한다.

 추종은 그리스도론적 진리의 비변증법적인 내면화의 행위도 배타적인 규범적 관념도 아니며, 기억과 서사를 토대로 한 정치성이자 신비성이다. '정치적'이라는 것은 추종의 신비가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이를 위한 하느님의 보편적 정의와 과거의 고통은 물론 현재의 고통을 위한 요청을 수용하는 것이며 종말론적 하느님의 정의에 대한 물음에 기반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차이와 비동일성에 대한 종말론적 의식 없이 진술되는 그리스도론은 비정치적이며, 그의 사회비판적 힘을 제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종말론 없는 그리스도론은 승리의 이데올로기로 타락한다는 것이다. 

 '신비적'이라는 것은 어떤 비의적인 신비나 정치권력의 신비가 아니라 하느님이 세상의 작은 이를 형제로 받아들이기 위해 스스로 낮아진 것처럼 인간을 위한 신적 사랑실천에 투신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 추종의 신비 속에서 그리스도인은 고통당하는 타자와 보편적 연대를 이루고, 부당하게 고통당하는 이들을 죽음에서 구원해 주체적 존재로 불러내는 종말론적 하느님을 증언하게 된다. 이러한 추종의 그리스도론의 신비적 차원은 '위험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정의를 이루는 하느님의 힘에 대한 희망을 토대로 저항과 중단의 신비, 회심과 고통의 신비로 이끌기 때문이다. 하느님을 갈망하는 이러한 신비가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 것은 바로 고통당하는 예수의 신비다.
 
 성 토요일의 그리스도론

 '성토요일' 개념은 90년대 메츠 신학 전면에 등장하는데, 이는 당시에 광범위하게 퍼진 포스트모더니즘 상황과 관련이 있다. 메츠는 부활절 그리스도론이 과도하게 넘쳐나는 반면 성토요일 그리스도론은 너무 빈약하다고 봤다. 부활절의 그리스도론은 우리의 기도를 승리의 언어에 젖어들게 했지만 그만큼 그 언어는 재앙과 고통에 대한 감수성에서 멀어지게 했다는 것이다.

 성토요일 개념이 비록 1990년대에 등장했지만, 메츠의 그리스도론 발전사에 비춰보면 성토요일에 대한 암시는 1960년대 초반의 저작에서 이미 발견할 수 있다. 그의 초기 저작 「영의 가난」(1962)은 메츠 그리스도론의 근본적이고 전체적인 관점을 잘 보여주는데 여기서 메츠는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 형태를 근본적으로 초월적인 하느님의 자기 낮춤, 수난 속에서 자기 낮춤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는 훗날 '고통의 기억'으로 구체화되는데, 특히 고통의 기억은 자유의 종말론적인 사건으로 바로 그런 점에서 구원하고 해방하는 하느님께 대한 희망의 토대로 해석된다. 아울러 메츠에게 성토요일 개념은 그리스도론에서 성금요일과 부활절 사이를 매개하는 개념으로 작용한다. 그에 따르면 만일 누가 그리스도 부활의 복음 속에서 십자가에 달리신 분의 외침을 들을 수 없다면 그는 복음을 들은 것이 아니라 하나의 승리 신화를 들은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성토요일 개념은 그리스도론의 근본문제인 십자가와 부활의 관계 문제를 해소했다기보다는 오히려 차단했다는 점에서 뚜렷한 한계를 지닌다는 점 또한 간과할 수 없다. 

새로운 도전 앞에 선 정치신학- 교회 내 문화적 다원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
 
 메츠의 정치신학의 중심적 틀은 근대와 계몽사상의 지평에서 형성됐다. 그의 신학은 한편으로는 그리스도교 복음을 서구라는 문맥을 통해 정치 해석학의 틀에서 바라보려고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근대의 종교비판을 접하면서 복음을 사회와 실천과 상관성에서 파악하려 했다. 그 때문에 그의 신학은 근대적 사상의 유산(주체, 자유, 역사와 같은 근대사상의 중심개념)과 만나 대화의 지평을 여는 시도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정치신학은 이러한 근대적 사상의 유산을 문제 삼을 뿐 아니라 다양성을 중시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물결로 피할 수 없는 도전과 마주하게 됐다. 

 오늘날 정신사를 풍미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말은 정신적, 사회적 환경 그리고 인간의 경험 세계와 삶의 현실이 근본적으로 변화하는 과정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삶의 방식이나 행동양식 그리고 사고 유형이 다양화돼 가는 변화 과정에 있는 것과는 달리 세계화는 이미 세계경제와 세계정치의 현실 속에 깊이 스며들었다. 그러나 어떻든 이 두 변화 과정은 우리가 그것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는 차원을 넘어설 정도로 내용적으로 모호하고 불투명한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현대의 정신적, 사회적 모호성과 불투명성에 직면한 그리스도교 신학은 이중의 과제 앞에 놓여 있다. 교회 내적으로는 교회가 다양성 안에서 일치를 이뤄 진정한 세계교회로서의 면모를 드러낼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하는 것이고, 교회 외적으로는 이웃종교와 세상의 다른 가치체계와의 관계에서 그리스도교 신앙 진리의 보편성과 절대성 요청을 타당하게 드러내는 가능성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메츠는 이미 1980년대부터 이 문제들에 대해 깊은 관심을 지니고 천착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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