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말씀 묵상

희망의 시작 -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가게 하는 믿음(요한 5, 17-30)- 1574

Author
kchung6767
Date
2019-04-02 09:40
Views
999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1574

2019년 4월 3일 수요일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가게 하는 믿음(요한 5, 17-30)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이는 영생을 얻고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는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갔다.”(요한 5, 24)

 

사랑은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갖게 합니다. 어둠 속에서도 빛을 발견합니다.  한 목사님의 아름다운 은퇴소식을 접하면서  그분의 하느님을 사랑하시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교회를 떠나시면서 교인들에게 “자신은 완전히 잊어달라”고 부탁하시는 그 말씀이 마음 속 깊이 다가옵니다. 너무나 교회를 사랑하기에 하시는 말씀입니다.

오늘을 완전히 버리지 못하면 새로운 내일을 기대할 수 없듯이 지금을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의 나를 버리지 못하면 새로운 나를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거듭남은 발전이나 진보의 개념이 아닙니다. 완전히 새로워 지는 것입니다. “육에서 난 것은 육이고 영에서 난 것은 영이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위로부터 태어난다.”고 하는 것은 바로 육의 사람이 영의 사람이 되는 것과 같은 새로운 창조의 모습입니다.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우리는 위로부터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세상적인 것을 추구하며 살아오던 우리가 이제는 살아 계시는 하느님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말씀을 죽은 활자로 읽던 사람들이 이제는 이 말씀을 통해서 자신의 삶의 변화되는 것입니다. 육으로는 죽고 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적인 눈으로 살아가던 사람들이 이제는 영적인 통찰력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살아 계시는 하느님과 친교를 맺고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당시의 바리사이들이나 율법학자들은 살아 있는 하느님을 보지 못하고 하느님의 자리에 자신들을 두었기에 하느님의 사랑을 잊었습니다. 형식을 중시하고 자신의 업적과 일에 집중하고 이웃을 단죄하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믿음’의 중요성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이 믿음은 바로 나와 함께하시는 하느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형식이 아닌 하느님과의 친교와 하나 됨의 믿음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와 자신의 관계를 말씀해 주십니다. 유다인들은 예수님께서 자신을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믿지 못하고 오히려 예수님께서 당신을 하느님과 대등하게 하셨다고 해서 예수님을 죽일려고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이는 영생을 얻고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는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갔다(요한 5, 24). 하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영원을 살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십니다. 당신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 그리고 당신을 보내신 분을 믿는 것을 통해서 우리는 심판도 받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존재에 대해서 의심하던 사람이 하느님이 계시면 기적을 보여주십시오 하고 청합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기적을 체험합니다. 하느님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기적으로 시작하는 믿음은 그렇게 오래가지 못합니다. 불완전합니다. 더 큰 것을 요구하게 됩니다. 기적을 체험하면 지금보다는 믿음이 깊어질 수는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홍해바다를  건너는 엄청난 기적을 체험한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느님을 찬앙하고 기뻐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믿음은 3일 만에 불신으로 바뀝니다. 민수기 20장 2-5절을 보면,  그들이 광야에 이르렀을 때 마실 물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모세에게 시비를 걸면서 불평을 합니다. 하느님을 원망합니다.  표징을 보고 믿는 믿음은 이렇게 쉽게 약해지고 의심하게 되고 더 큰 기적을 보여주지 않는다고 불평하고 쉽게 돌아서는 것입니다. 보고 믿는다는 것이 확실한 믿음 같아도 이것이 바로 함정입니다. 뭔가 하느님께서 보여주면 잘 믿을텐데 합니다. 이런 믿음은 마귀에게 엄청 휘둘립니다. 마귀는 이런 장난의 선수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하느님의 일때문에 믿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먼저 알고 믿음으로 살아감으로 체험으로 알게 됩니다. 희브 11, 3을 보면, “믿음으로써, 우리는 세상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마련되었음을, 따라서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에서 나왔음을 깨닫습니다.이 모든 세계가 하느님에 의해서 창조되었다는 것을 믿음으로 알게 됩니다.” 하고 말합니다. 믿음으로 나아가는 사람에게는 하느님께서 체험을 주십니다.

 “나의 형제 여러분, 갖가지 시련에 빠지게 되면 그것을 다시없는 기쁨으로 여기십시오.” (야고 1, 2)하고 말합니다.

 체험에 의존하는 믿음을 갖는 사람들에게는 이말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야고버 사도는 어려움을 당하면 기뻐합니다. 인내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환란이 오면 사도에게 기쁨이 일어난답니다. 야고버 1장 5절을 보면, “여러분 가운데에 누구든지 지혜가 모자라면 하느님께 청하십시오. 하느님은 모든 사람에게 너그럽게 베푸시고 나무라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면 받을 것입니다.”

 먼저 믿음으로 구하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의심없이 구하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구하면 반드시 주시는 분이십니다. 실제로 말씀입니다. 먼저 의심하지 말고 믿어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렇게 믿음의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체험을 해야 믿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하느님을 알고 하느님을 체험하는 일이 중요한 것입니다.

토마스가 부활하신 예수님 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동료들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보고서야 믿는 믿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요한 20, 27을 보면, “예수님께서 토마스에게 이르셨다.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보지 않고 믿는 것이 복되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는지 체험을 해보고 믿을려고 합니다. 하느님이 정말 사랑하시면 나에게 좋은 일들을 해 주실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잘못된 믿음입니다. 우리는 이미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증거를 갖고 계십니다.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오신 예수님과 돌아가신 십자이가입니다.

 ‘믿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이 믿음은 내 몸과 마음과 목숨을 다하여 믿는 것입니다.  입으로만 고백하는 믿음이 아닙니다. 나의 삶을 변화시는 믿음입니다. 일상을 통해서 드러나는 믿음입니다.

 세상을 믿는 것에서 하느님을 믿는 것으로 넘어감은 한계의 시간에서 영원의 시간으로 넘어가게 합니다. 세상이 갖는 한계를 넘어서 초월의 세상으로 넘어갈 수가 있게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주는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세상 안에서 세상이 주는 두려움과 한계를 넘어서는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믿음을 갖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말씀과 함께하는 삶이 필요합니다. 기도는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을 얼마나 많이 받고 있나를 깨닫게 합니다.  말씀은 이 세상을 통해서 하느님의 현존을 목격할 수 있는 힘을, 하느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를 하느님을 느낄 수 있는 마음을 갖게 합니다. 이 말씀이 바로 세상을 살면서도 세상과 구별되는 삶을 살아가게 하는 힘인 것입니다. 이 말씀이 우리가 하느님께 더욱 가까이 다가가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를 사랑하셨듯이 우리도 동일하게 아버지를 사랑할 수 있게 합니다.

 영원을 살아가는 사람이기에 희망이 있고 감사할 수 있으며 모든 부정적인 생각에서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의 모습이 바로 세상 사람과 구별되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인 것입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이사야 예언자의  “여인이 제 젖먹이를 잊을 수 있느냐? 제 몸에서 난 아기를 가엾이 여기지 않을 수 있느냐?”(이사 49, 15)는 생명을 주시는 사랑의 말씀을 마음에 담고 시작하고자 합니다. 삶의 현장에서 생명을 주시는 말씀에 대한 믿음을 증거하는 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

Total 2,627
Number Title Author Date Votes Views
2537
희망의 시작 -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삶 (마르 1, 7 - 11) - 3099
신부님 | 2024.01.04 | Votes 4 | Views 772
신부님 2024.01.04 4 772
2536
희망의 시작 - 예수님과의 만남의 열매 (요한 1,43 -51) - 3098
신부님 | 2024.01.03 | Votes 4 | Views 717
신부님 2024.01.03 4 717
2535
희망의 시작 - “무엇을 찾느냐?”(요한 1, 35- 42) - 3097
신부님 | 2024.01.02 | Votes 5 | Views 733
신부님 2024.01.02 5 733
2534
희망의 시작 - 요한과 예수님 사이의 차이(요한 1, 29-38) - 3096
신부님 | 2024.01.01 | Votes 3 | Views 738
신부님 2024.01.01 3 738
2533
희망의 시작 - 성 대 바실리오와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 학자 기념일(요한 1, 19-28) - 3095
신부님 | 2023.12.31 | Votes 5 | Views 647
신부님 2023.12.31 5 647
2532
새해 미사 강론 - 하느님의 성모마리아 대축일(루카 2,16-21) - 3094
신부님 | 2023.12.30 | Votes 4 | Views 717
신부님 2023.12.30 4 717
2531
희망의 시작 - 옛날은 가고 새날이 오라 (루카 2,36-40) - 3093
신부님 | 2023.12.28 | Votes 4 | Views 854
신부님 2023.12.28 4 854
2530
희망의 시작 - 예수님을 알아 보는 눈(루카 2,22-35) - 3092
신부님 | 2023.12.27 | Votes 6 | Views 764
신부님 2023.12.27 6 764
2529
희망의 시작 - 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 축일(마태 2장 13-18) - 3091
신부님 | 2023.12.26 | Votes 3 | Views 821
신부님 2023.12.26 3 821
2528
희망의시작 -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요한 20, 1-8) - 3090
신부님 | 2023.12.25 | Votes 5 | Views 781
신부님 2023.12.25 5 781

Enquire now

Give us a call or fill in the form below and we will contact you. We endeavor to answer all inquiries within 24 hours on business day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