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말씀 묵상

희망의 시작 - 성 보니파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요한 17, 11-19) - 1626

Author
kchung6767
Date
2019-06-04 11:17
Vi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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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1626

2019년 6월 4일 수요일

성 보니파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요한 17, 11-19)

“저는 더 이상 세상에 있지 않지만 이들은 세상에 있습니다. 저는 아버지께 갑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름으로 이들을 지키시어,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요한 17, 11)

오늘은 성 보니파시오 주교님의 기념일 입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오늘 축일을 맞으시는 여러분 모두에게 축하를 드립니다. 

오늘 복음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 즉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시는 모습을 알겨 줍니다.  오늘 복음의 전 부분에서는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위해서 기도를 바치셨습니다. 그런데 그 기도의 내용은 당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회피하게 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지고 가심으로써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십니다. 그 기도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원래 하느님께 속한 제자들을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보내주셨다는 사실입니다. 보통 우리는 ‘제자’라 하면, 흔히 훈련을 시키거나 전문 지식을 전수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 제자는 사랑의 대상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위해서 구체적으로 기도하십니다. 그 기도의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봄으로써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갖고 계시는 기대에 부응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첫 번째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하나 되게 해 달라고 하십니다.

“저는 더 이상 세상에 있지 않지만 이들은 세상에 있습니다. 저는 아버지께 갑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름으로 이들을 지키시어,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요한 17, 11)

사탄은 분열시키는 존재입니다. 아담과 이브의 타락이후에 인간에게는 이러한 분열의 본능이 존재합니다. 자신이 주인이된 인간은 이제 자신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갈등이 생기고 반목이 생깁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도 처음에는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과 평화가 충만한 것 같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인간의 죄성이 드러납니다. 사탄의 본질이 분열이라면,  반면에  성령께서는 하나되게 하십니다. 성령께서 함께하시면 분열에서 일치로 그리고 관계 안에서 입은 상처의 치유가 일어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과 인간의 훼손된 관계를 원래의 관계로 회복시키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화해의 제물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트러블 메이커’(trouble maker)가 아닌 ‘피이스 메이커’(peace maker)가 돼야한다고 말씀 합니다.  

관계회복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의 특징은 한마디로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느님과 인간을 화해시키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화해자로서 치러야 할 대가는 반드시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위한 기도에서 그들을 보호하시고 지켜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11절 말씀에서 “거룩하신 아버지,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름으로 이들을 지키시어”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12절에서도  “저는 이들과 함께 있는 동안,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름으로 이들을 지켰습니다.”라고 기도하십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우리가 주님의 품안에 갈 때까지는 항상 불안하다고 말합니다. 완전한 보호는 인간자신의 노력으로서는 불가능합니다. 오로지 하느님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물의 심판을 경험한 인간은 하느님의 심판으로부터 자유하기 위해서 바벨탑을 쌓았습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이름을 날리기 위해서 이 탑을 쌓습니다.  이렇게  단단한 성을 높이 쌓다 보면, 저절로 타인과 단절 됩니다.

인간이 느끼는 외로움은 스스로 만드는 것입니다. 이 사람, 저 사람과의 관계를  끊고 혼자 골방에 들어갑니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법으로 생각합니다.  하느님께서 지켜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온전히 존재할 수 없습니다. 우리 자신의 노력만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없는 법입니다. 개인적으로 성실하게 처신한다고 모든 문제들이 저절로 해결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거기엔 하느님의 보호하심이 있어야 합니다. 시편 23편 1절에서 4절은 우리에게 하느님의 보호하심에 대해서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1 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 없어라. 2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어 3 내 영혼에 생기를 돋우어 주시고 바른길로 나를 끌어 주시니 당신의 이름 때문이어라. 4 제가 비록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 하여도 재앙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니 당신께서 저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막대와 지팡이가 저에게 위안을 줍니다.”

라고 찬송하고 있습니다. 곧 하느님의 보호하심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항상 우리를 지켜 주시고 우리의 자녀들도 지켜주십니다. 품 안의 자식이지 그들이 성장해 가면 부모는 자식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자녀들을 보호해 주시도록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남편이나 아내도 지켜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세 번째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위한 기도는 그들을 예수님의 기쁨을 충만히 누리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이제 저는 아버지께 갑니다. 제가 세상에 있으면서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이들이 속으로 저의 기쁨을 충만히 누리게 하려는 것입니다.”(요한 17, 3)

그리스도교의 특징은 희망과 긍정적인 사고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감사할 수 있고 기뻐할 수 있습니다.

필리피 서 4장 4~5절에서 사도 바오로는  “4 주님 안에서 늘 기뻐하십시오. 거듭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 5 여러분의 너그러운 마음을 모든 사람이 알 수 있게 하십시오. 주님께서 가까이 오셨습니다.”(필리 4, 4-5)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감옥 안에 갇혀 있는 사람이 감옥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기뻐하라고 권면할 수 있는 것이 그리스도교입니다.

테살로니카 전서 5장 16~18절에서 “16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17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18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테살 전 5, 16-18) 하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기쁨은 세상의 기쁨과 전혀 다른 것입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기쁨은 쾌락, 명예, 물질 등을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기쁨은 천국, 거듭남, 부활 등을 가리킵니다. 외면적인 기쁨이 아니라 내면적인 기쁨을 말합니다. 어느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기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기쁨이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세상의 어떤 불행이나 슬픔도 능히 이겨낼 수 있는 기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네 번째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악에서 지켜 주시도록 기도하십니다.

“14 저는 이들에게 아버지의 말씀을 주었는데, 세상은 이들을 미워하였습니다. 제가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처럼 이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기 때문입니다15 이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라고 비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악에서 지켜 주십사고 빕니다.”(요한 17, 14-15)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주님의 기도’에서도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라고 하셨습니다.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는 내면적인 면을 말하는 것이고, ‘악에서 보호해 달라’는 기도는 외면적인 면을 말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봉사를 하다보면 처음에는 하느님이 보이다가 시간이 갈수록 인간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위로를 찾던 인간이 이제는 인간으로부터 위로를 찾게 됩니다. 그래서 자신을 과시하고 형제자매들을 판단하기 시작합니다. 마귀의 공격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그런 유혹에 빠지기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지금도 사탄은 믿는 자들을 집어삼키려고 울부짖는 사자처럼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깨어있지 않으면 사탄의 유혹에 빠지게 됩니다. 미사 중에 받았던 은총이 순식 간에 사라집니다. 다시 하느님이 아닌 내가 주인이 됩니다.  세상은 사탄의 유혹의 지뢰밭과 같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세상을 사는 동안 절대적으로 주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해 달라’ 고   기도하십니다.

“16 제가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처럼 이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습니다. 17 이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18 아버지께서 저를 세상에 보내신 것처럼 저도 이들을 세상에 보냈습니다. 19 그리고 저는 이들을 위하여 저 자신을 거룩하게 합니다. 이들도 진리로 거룩해지게 하려는 것입니다.”(요한 17, 16-19)

제자들을 위한 예수님의 기도에서의 절정은 바로 “이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입니다.”라는 것입니다. 진리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참 진리는 하느님의 말씀 뿐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절대 진리이며 기준인 것입니다.  그런데 현대에 와서 하느님의 말씀이 우리를 제약하는 것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이것이 바로 포스트모더니즘입니다. 이런 사상에 젖어 있는 사람들은 획일적으로 강요되는 모든 것에서 해방되고자 합니다.  그러나 혼자만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기에 이 세상에서 규범이나 어떠한 기준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특히 절대 기준이 되시는 하느님의 진리 말씀은 영원히 존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제자들을 거룩하게 해 달라고 간구하십니다. 우리가 거룩해진다는 것은 구별 되는 것을 말합니다. 본질적으로 하느님의 말씀으로 거룩해진다는 뜻입니다. 인간은 본질상 죄인이기 때문에 스스로 거룩해질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죄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십자가 상에서 당신 자신을  희생 제물로 바치신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거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같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곧 파견은 거룩함과 관계되는 것입니다. 거룩하지 않은 사람이 파견을 받게 되면 갈등이 많아집니다. 파견 받은 사람이 거룩하면 그 사명도 분명해집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신 다섯 가지가 우리의 삶 안에서 구체화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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