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말씀 묵상

희망의 시작 - 유스티노 순교자 기념일(요한 16, 23-28) - 1624

Author
kchung6767
Date
2019-05-31 13:14
Views
893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1624
2019년 6월 1일 토요일
성 유스티노 순교자 기념일(요한 16, 23-2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요한 16, 23)

오늘은 성 유스티노 순교자 기념일입니다. 무엇 보다도 먼저 오늘 축일을 맞으시는 여러분 모두에게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오늘 제1독서 사도행전의 이 부분은 제가 이 부분을 읽을 때 마다 감동을 느끼고 이러한 모습을 닮고 싶은 내용입니다.

당시에 성경에 정통하고 달변가로 알려져 있던 아폴로라고 하는 유다인이 회당에서 설교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에 관한 일들을 정확하게 가르치고 있었는데 요한의 세례만 알고 있었습니다. 이 사실은 아폴로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일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때 이러한 사실을 발견했던 프리스킬라와 아퀼라는 그를 조용한 곳으로 데려가서 그에게 하느님의 길을 더욱 정확하게 설명해 주었다고 합니다. 이 두사람의 아폴로를 배려하는 그 모습이 참으로 가슴 깊이 다가옵니다.공개적으로 아폴로의  무지를 드러내면서 자신들의 유식함을 사람들 앞에서 과시할 수도 있었지만 상대방을 배려한 그 모습에서 이 부부의 겸손함을 볼 수가 있습니다.  사랑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당신의 이름으로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느님께서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무엇이든지 주실 것이다.' 라는 약속은 아무것이나 청하기만 하면 다 주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느님과 예수님의 뜻에 맞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주신다는 뜻입니다. 정말로 예수님의 제자라면 하느님과 예수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을 청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인이란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응답을 확신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기도를 하면서도 하느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기도한다고 무엇이 달라질까? 하고 의심을 합니다. 하지만 오늘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다 들어주신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이 지금까지 당신의 이름으로 아무것도 청하지 않았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지금까지’라는 말이 뜻하는 것은 바로 지금까지는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하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청하거나 하느님께 기도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에수님께서 영광스럽게 되신 후에는, 즉 예수님의 부활과 성령강림을 체험 후에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를 할 것이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를 하면 아버지께서 다 들어 주실 것이라는 약속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청하면 받을 것이고  그리하여 기쁨이 충만해질 것이라는 말씀을 마음 속 깊이 간직합니다.참으로 기쁜 소식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많은 청원기도를 하면서 나의 이러한 청원이 하느님의 뜻에 합당한 지에 대해서는 따져 보지 않았습니다. 단지 내가 필요하기 때문에 청했던 기도에 대해서 반성을 해봅니다. 우리의 기도에 주님의 응답이 없었던 것은 바로 하느님의 뜻에 합당하지 않는 부적절한 청을 하였기 때문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소명과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소명은  자신이 주님의 뜻 안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발견한 것이고, 용기는 그 일을 이루는데 있어서 어떠한 대가와 희생이 요구된다 할지라도 담대하게 실천하겠다는  의지일 것입니다. 기도는 그리스도인이 소명과 용기로 이 땅에 하느님의 나라의 복음 전하는 삶을 살아가게 할 것입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보이지 않는 하느님이 바로 내 앞에 계시는 하느님으로, 지금 당장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서두르지 않으며 인내심을 갖고서 하느님의 응답을 신뢰하는 하루가 되도독 다짐합니다. 다시 한번 오늘 축일을 맞으시는 여러분 모두에게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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