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말씀 묵상

희망의 시작 - 예수님의 부재와 현존(요한 16, 20-23) - 1625

Author
kchung6767
Date
2019-06-02 01:05
Views
987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1625

2019년 6월 3일 월요일

예수님의 부재와 현존(요한 16, 20-23)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울며 애통해하겠지만 세상은 기뻐할 것이다. 너희가 근심하겠지만, 그러나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요한 16, 20)

바오로 사도가 코린토에서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토론을 하며 유다인들과 그리스인들을 설득하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돌아온 반응은 반대와 자신들에 대한 모독입니다.  그래서 이곳을 떠날려고 할 때 어느 날 밤 주님께서 환시 속에서 바오로에게 “두려워하지 마라. 잠자코 있지 말고 계속 말하여라. 내가 너와 함께 있다. 아무도 너에게 손을 대어 해치지 못할 것이다. 이 도시에는 내 백성이 많기 때문이다.”(사도 18, 9-10) 하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바오로 사도에게 하시는 말씀을 통해서 참 평화는 당신께서 함께하심에 있슴을 깨닫게 됩니다. 당신의 부재는 불안과 두려움이지만 당신의 현존은 참 평화임을 깨닫게 합니다.

 

오늘 복음도 당신의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당신이 떠나면 너희는 울며 애통해 하겠지만 세상은 기뻐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너희는 울며 애통해하겠지만'이라는 말은 '너희는 나의 죽음 을 슬퍼하면서 곡을 하겠지만'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세상은 기뻐할 것이다.' 라는 말은 세상은 예수님의 죽음을 기뻐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기뻐하는 세상은 사탄의 지 배를 받는 세상으로서 이제 자기들이 세상을 완전히 지배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해서 기뻐하는 것입니다. '너희의 근심(슬픔)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라는 말은 예수님의 부활을 암시하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죽음 때문에 슬퍼하던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다시 만나게 됨으로써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당신 안에서 참 평화를 누리며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평화는 당신께서 함께하실 때만이 누릴 수 있는 평화입니다. 그러나 당신께서 함께 하시지 않으시면 불안과 두려움이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우리의 삶은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입니다. 예수님과의 만남과 헤어짐도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길에서 언제나 그 자리에 변함없이 계시는 주님 앞에 우리는 서기도 하고 떠나기도 합니다. 우리가 떠나고 다시 돌아오고 하면서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를 떠나신 것처럼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원히 우리를 혼자 두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당신께서 우리를 떠나시면서 또 다른 존재양식으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 인간은 예수님의 죽음 앞에서 슬퍼하며 두려워 합니다. 죽음 만을 보기 때문입니다. 다시 오실 그분은 이제 우리에게 또 다른 존재 양식으로 오심을 말씀하시지만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비록 떠나지만 만남을 기대하는 떠남과 끝으로서의 떠남과는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열려진 떠남을 의미하는데 우리는 닫혀진 떠남으로 받아들이는데서 “너희는 울며 애통해 하겠지만 세상은 기뻐할 것이다. 너희가 근심하겠지만, 그러나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요한 16, 20)라는 말씀처럼 기뻐해야 하는 순간에 슬퍼하고 슬퍼해야 하는 순간에 기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 함은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을 말합니다. 내 위주로 듣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어떠한 마음으로 이러한 말씀을 하셨을까를 생각하면서 듣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성경말씀을 읽으면서 예수님의 마음을 느껴보는 것은 살아있는 말씀이 나의 삶의 주인이 되는 첫 걸음 임을 깨닫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바로 주님이신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와 우리의 만남은 어떠한 것입니까? 이러한 질문에 답을 성실하게 하게 된다면 어쩌면 우리는 동료들과의 만남도 혹은 헤어짐도 좀 더 깊이 있게 받아들일 수가 있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은 변화를 수반하여야 하며 파견 받음은 그 변화를 대중에게 선포하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가 있겠습니다. 만남의 기쁨이 연속되기 위해서, 파견의 참의미가 이 땅에 구현되도록 해야 합니다. 변화의 가능성에로 개방된 마음가짐 속에 주님의 은총이 작용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변화시킨다는 것은 바로 은총의 공유임과 동시에 하느님의 사랑을 참으로 체험하는 순간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면서  “너희도 지금은 근심에 싸여 있다. 그러나 내가 너희를 다시 보게 되면 너희 마음이 기뻐할 것이고,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요한 16, 22) 는 예수님의 말씀을 마음에 깊이 간직합니다. 예수님의 말씀 안에 담겨진 깊은 의미를 깨닫고자 예수님께 더욱 가까이 다가 가는 하루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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