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시작 - 고백하는 삶과 고발하는 삶(루카 6, 6-11) - 1708

Author
kchung6767
Date
2019-09-08 04:30
Views
370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1708


2019년 9월 9일 월요일


고백하는 삶과 고발하는 삶(루카 6, 6-11)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고발할 구실을 찾으려고, 그분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다.”(루카 6, 7)



생명의 문화와 죽음의 문화에 대해서 묵상하게 하는 시간을 살고 있습니다. 너무나 확연하게 구분되는 이 극단의 문화를 체험하면서 우리 인간이 참으로 무서운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나와 너라는 관계가 너무나  뚜렷하게  구분이 되기에 '우리'라는 개념이 너무나 생소하게 들리기도 합니다. 편의 논리입니다. 다름과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이기적이며 배타적인 공동체 문화를 살고 있기에 그 경계의 벽은 너무나 높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생명을 주는 삶을 살고 있는지 아니면  생명을 죽이는 삶을 살고 있는지를  묵상하도록 초대를 하십니다.  이 삶은 자신이   ‘고백하는 사람과 고발하는 사람 중에서 어떠한 사람에 속하는지를 반성해 보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런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하느님은 참으로 대단하신 분이시구 하는 생각을 새삼 갖게 됩니다. 아무리 일란성 쌍생아 라고 하더라도 차이가 있슴을 발견합니다. 거의 90억에 가까운 인간을 다양하게 창조하신 하느님은 찬미 받으시고 영광을 받으셔야 할 것입니다. 


‘고백하는 사람’과 ‘고발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고발하는데 익숙합니다. 


오늘 복음은 고발하는 사람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고발할 구실을 찾던 사람들입니다. 오랜 시간을 두고서 치밀하게 준비를 하였을 것입니다. 정교한 언어와 설득력이 있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미움과 증오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이와 대조적을 고백하는 사람은 사랑에서 출발합니다. 논리정연하고 교묘한 언어도 사용하지 않습니다. 어눌하고 투박한 언어를 사용합니다. 하지만 그 속에는 이웃을 배려하는 사랑과 자신을 고백하는 겸손함이 있는 것입니다. 오로지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냅니다.


오늘 복음은 한 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과 예수님과의 만남을 우리에게 전해줍니다.  오른 손이 오그라든 사람은 자신이 예수님께 자비를 청하기 위해서 찾아온 것일 수도 있지만  오늘 복음의 7절을 보면, 바리사이들이 예수님을 고발할 구실을 찾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데려왔을 가능성이 더 많아 보입니다.  


이미 이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의 규정을 어기고 밀이삭을 뜯는 것을 보고서 예수님께 왜 당신의 제자들은 안식일의 규졍을 지키지 않습니까? 하고 따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의 비판에 대해서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 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마르 2, 27)  하고 말씀하시면서 이어서 그러므로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루카 6, 5)하고 말씀하십니다. 


원래 안식일의 주인은 하느님이십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권한을 받아서 오신 분이기 때문에 이제는 안식일의 주인은 예수님 당신이심을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오신 분이십니다. 원래의 모습으로 우리를 되돌려 놓기 위해서 오신 분이십니다. 따라서 인간을 인간답지 못하게 구속하고 억압하는 모든 요소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기 위해서 오셨기에 당연히 안식일이 원래의 만들어질 때의 정신이 왜곡되고 원래의 정신에 합당하게 적용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적용이 되지 않는다면 이를 되돌려 놓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누구나 하느님 보시기에 아름다워야 하는 것을 자신의 눈에 보이는 아름다운 것으로 기준을 삼을려고 합니다. 그러기에 이러한 아름다움의 기준도 사람마다 달라질 수 밖에 없습니다.  지금의 세상은, 기득권을 가진 자는 항상 법앞에서도 강자이며 법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가난하고 약한 사람은 언제나 법 앞에서도 약자입니다. 이를 되돌려 놓으려는 예수님의 행동이 당시의 기득권자들에게는 눈의 가시일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어떻게 하면 제거할 것인가를 구실을 찾던 사람들이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회당으로 데려와서 예수님께서 안식일 규정을 어기면 고발하기 위해서 지켜보고있었습니다. 당시의 율법규정 “너희는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 그것은 너희에게 거룩한 날이다.  이날을 더럽히는 자는 사형을 받아야 한다. 이날에 일을 하는 자는 누구나 제 백성 가운데에서 잘려나갈 것이다(탈출 31, 14)에 의하면 안식일 법을 지키지 않으면  사형을 받아야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예수님을 지켜보는 이유는 이 규정을 어기면 죽이겠다는 의도가 있슴을 알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사람들이 잘보이는 가운데로 나와서 서라고 하시면서 그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묻겠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6, 9)  하고 질문을 하십니다. 그들은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반박할 수가 없어서 침묵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시고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의 손을 고쳐주시는 기적으로 당신의 질문에 답을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이 갖고 있었던 안식일에 할 수 있는 일과 해서는 안되는 일에 대한 적용기준을 바꾸시는 것입니다. 어떤 일이 노동에 해당되는가, 아닌가? 가 안식일을 지키는 기준이 아니라, 그 일이 착한 일인가, 아닌가? 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굳은 마음을 갖고 살아가면,  보면서도 보지 못하고 들으면서도 듣지 못합니다 자신이 보고 듣고 싶은 것만을 보고 듣기 때문입니다. 일상을 살아가면서 주변의 사람들을 통해서 혹은 나 자신을 통해서도 이러한 체험을 합니다.  남을 탓하기 이전에 나의 굳은 마음을 봅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우리와 우리 가족들 모두가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 안에서 자신의  굳은 마음때문에 더 이상 예수님께서 슬퍼하시는 일이 생기지 않는 하루, 사람을 죽이는 고발하는 하루가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고백하는 삶을 살아가는  하루가 되시도록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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