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말씀 묵상

희망의 시작 - 몸과 마음이 일치하는 삶(마태 23, 1-12) -1076

Author
kchung6767
Date
2017-08-25 13:21
Views
1534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1076

2017년 8월 26일 토요일

몸과 마음이 일치하는 삶(마태 23, 1-12)

 “2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다. 3 그러니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라 하지 마라.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마태 23,11-12)

광야의 삶은 우리 인간이 죄를 짓고 난 뒤에 생겨난 삶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광야를 생각하면 하느님의 징벌을 먼저  생각합니다. 동시에 이 광야는 우리가 참 고독을 체험하게 합니다. 세상으로부터 뿐만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도 버림 받았다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하지만 이 광야는 이러한 부정적인 의미 이외에도  우리와 하느님과와의  참 만남을 갖게 하십니다.내가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될 때 더욱 하느님께 가까이 다가도록 합니다. 모든 것이 나로부터 떠나 있다고 생각할 때 하느님은 더욱 나와 가까이 계심을 체험하게 합니다.

i하느님의 말씀으로 시작하는 하루가 이렇게 기쁠 수가 있을까요? 이 기쁨이 순간이 어떠한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인간이 느끼는 이 기쁨이 참으로 깨어있어야 간직할 수 있는 기쁨이라면 깨어 있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적인 많은 유혹들이 다가옵니다. 어떤 때에는 밝음과 어둠의 경계선에 있어서 분별하기가 힘이 들 때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어둠이 밝음으로 위장해서 다가오는 경우도 있슴을 깨닫습니다.

겸손은 이러한 분별의 오류를 막아주는 가장 좋은 방패입니다. 감사는 이러한 어둠을 밝음으로 이끌어 줍니다. 오늘 아침에 저에게 다가오시는 예수님께서는 겸손과 감사의 삶을 살아가라고 저에게 말씀하십니다. 이 겸손과 감사가 세상으로부터 나를 자유하게 한다는 사실을 깨우져 주십니다.

신앙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이 신앙이 나의 삶을 구속하는 족쇄가 된다는 생각을 갖기도 합니다. 그래서 자유를 찾아서 주님을 떠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주님을 떠나 참 자유를 향유하면서 살아야 하는데 세상의 종이 되어 버렸습니다. 주님 안에서는 세상으로부터 자유할 수 있었는데 주님으로부터의  자유 함은 나를  세상의 노예가 되게 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제 다시 주님의 품 안으로 돌아오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온몸과 마음을 당신께로 들어 올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길을 성찰하고 반성하여 주님께 돌아가세, 손과 함께 우리의 마음도 하늘에 계신 하느님께 들어 올리세(애가 3, 40-41)하는 말씀이 생각납니다.

오늘 예수님의 말씀은 바로 정치인들이 명심해서 들어야 하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정작 들어야 하는 사람들은 귀들 닫고 듣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 듣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귀들 닫아도 되는 사람들이 귀를 열고서 듣고 이들에 대한 비판의 잣대를 더욱 키워갑니다.

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마태 23,11-12)는 말씀입니다.

귀를 열고 듣는 사람도 닫는 사람도 이 말씀에서 제외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모두가 명심해야 하는 말씀입니다. 경중의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정치인들에 대한 실망과 배신감을 느끼면서 나를 돌아 봅니다. 우리 사제들을 돌아봅니다. 우리 역시 이들과 다를 바가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학자들이나 바리사이들의 가르침은 다 실행하고 지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이들의 행실은 따라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들은 말만하고 실행하지는 않기 때문이랍니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들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으면서 무거운 짐을 다른 사람들에게 지우고 공개석상에서 인사받기만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당시의 윫법학자들이나 바리사이들은 분리된 계급이 아니라 바리사이파에 속한 율법학자를 말합니다. 따라서 광의적으로는 바리사이라고 하면 율법학자까지 포함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의 삶의 양식을 호되게 비판하시는. 에수님의 이러한 말씀이 무슨 뜻인가를 잘 압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애가서의 말씀을 외워봅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우리의 길을 성찰하고 반성하여 주님께 돌아가세, 손과 함께 우리의 마음도 하늘에 계신 하느님께 들어 올리세(애가 3, 40-41). 하는 이 말씀을 마음에 담고자 합니다. 동시에 겸손과 감사의 삶을 실천하는 하루를 다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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