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말씀 묵상

믿음의 본질이 되는 하느님과의 관계(마르 12, 18-27)- 1007

Author
kchung6767
Date
2017-06-06 10:41
Views
2447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1007

2017년 6월 7일 수요일

믿음의 본질이 되는 하느님과의 관계(마르 12, 18-27)

"그분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마르 12, 27)

적의 적은 친구라는 말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의아하게 생각을 했지만 이 말에 정치적인 함의가 담겨있슴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신의 원수와도 협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예수님을 제거하기 위해서 함께하는 사두가이들과 바리사이들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서 느끼는 것은  "성경을 죽은 이야기로 만들지 말며 살아있는 생명을 주는 말씀으로 만들어야 한다.” 는 것입니다. 이 말은 우리가 성경을 공부할 때 중요한 것은 말씀을 지식을 쌓기 위한 공부가 아닌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삶이 변화되도록 하는 것에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사두가이들이 예수님께 불순한 의도를 갖고서 질문을 합니다. 이들은 모세오경 만을 신봉하고 있었기에 부활이나 천사나 영적인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창세기 38장 8절과 신명기 25장 5절 그리고 룻기 3장-4장에 나오는 율법에 근거하여 일곱형제가 있는데 맏이가 자식이 없이 죽으면 다른 형제가 죽은 이의 아내를 맞아들여서 대를 이어야 하는데 그런데 일곱 모두가 자식을 남기지 못하고 죽으면 그러면 그 여자는 누구의 아내가 되는가에 대한 질문을 합니다. 실제로 이 법은 재산 상속에 관한 율법이고 그리고 한 집에 사는 형제에만 적용되는 법이었습니다.

이들은 만일에 부활이 있다면 이 부활은 현세의 연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두가이들이 형제가 자식을 남기지 못하고 죽으면 다른 형제가 죽은 이의 아내와 결혼해서 형제의 대를 이어야 한다는 이 율법을,  부활이 있다면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서 대를 이으면 될 것이기 때문에 부활이 없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은 이 세상과 저 세상의 다름을 갖고서 설명하십니다. 순수하지 못한 왜곡된 악의적인 질문에 현혹되지 않고  순수한 답변을 보게 됩니다. 말씀을 대한 두 대조적인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사후의 부활문제에 대한 답변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부활 후의 세계는 이승의 연장이 아니고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결혼한다는 것은 이 세상의 필요에 의해서 생겨난 제도입니다. 그런데 저승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누리기 때문에 종족 보존을 위한 자녀생산의 필요가 없게 됩니다. 이 말은 결혼의 중요한 목적중의 하나가 소멸됨을 말합니다.  즉 결혼의 관계가 부활 후에는 새로운 인격적인 관계로 승화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부활한 사람은 천사들과 같아져서 다시 죽지 않고 영원히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살아 있는 사람들의 하느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의인들이 죽은 뒤에도 하느님을 섬기고 있다면 그것은 하느님께서 되살려 주셨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눈에는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하느님 앞에서 영원히 살아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있다.’ 는 말은 사람은 이 세상에서 하느님으로 부터 생명을 받아서 살고, 죽은 다음에는 새로운 생명을 받아서 산다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설명에 율법학자 몇 사람이 ‘스승님, 잘 말씀하셨습니다.’(루카 20, 39)하고 호응을 합니다. 적의 적은 친구라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을 그렇게 박해하던 바리사이들도 자신들과 생각이 다른 사두가이들의 그릇된 생각을 바로 잡아주시는 예수님께 호의적으로 반응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우리의 세상적인 욕구를 채우기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 신앙인들에게 참 성공의 삶이란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가르쳐주십니다. 또한 당신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은혜와 축복도 허락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믿음의 본질이 세상적인 야망이나 목적을 달성하고 명성을 누리기 위한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먼저 하늘나라와 하느님의 뜻을 구해야 하는 것을 강조해 주십니다. 우리의 삶에서 하느님과 세상적인 것의 순서가 바뀌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주객이 전도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과의 관계가 믿음의 본질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하늘나라와 하느님의 뜻을 먼저 구하면 다른 것들은 곁들여서 받게 된다는 예수님의 말씀과 그분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는 말씀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반면교사로 삼고자 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그리스도인이든  비 그리스도인이든 시련과 고통은 접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성공만 하고 돈을 잘 벌고 건강하지 않음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압니다. 오히려 비그리스도인들이 더욱 건강하고 돈도 잘 벌고 성공하는 것을 목격합니다.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의 차이는 고통과 시련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 다른 것입니다. 어려움과 고통에 집착하는 사람과 그 속에서도 하느님을 발견하는 사람의 차이일 것입니다.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면서, 하느님을 필요에 따라서 믿지 않고 언제나 하느님의 안에서 나는 하느님의 종임을 고백하고 일상에서 이를 실천하는 신앙인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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