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말씀 묵상

희망의 시작- 믿는 이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마르 9, 14-29)- 1542

Author
kchung6767
Date
2019-02-24 12:13
Views
1100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1542

2019년 2월 25일 월요일

믿는 이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마르 9, 14-29)

  “‘하실 수 있으면’이 무슨 말이냐? 믿는 이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마르 9,23)

살면서 조건문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특히 신앙을 갖고 살아오면서 이러한 조건문을 부지불식 간에 수없이 사용해 왔슴을 반성합니다. 믿음의 부족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갈라티아서 2장 20절에서.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고 말합니다. 그의 삶이 아닌 그리스도의 삶이 그의 삶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소금이고 빛이다.’ 말씀하셨습니다 처음에는 이 말씀을 깨닫기가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압니다. 내가 빛이고 소금인 이유는 바로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사시기 때문입니다. 나를 통해서 그리스도가 드러나는 삶, 그 삶이 바로 빛의 삶이고 소금의 삶입니다. 이 사실을 내가 믿고 실천하는 그 순간 빛이고 소금이 되는 것입니다.

탈출기 15장 1절에서 20절을 보면, 홍해 바다를 건너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느님께 바치는 찬미와 찬양을 드립니다. 아론의 누이인 미르얌은 손북을 들자 여자들이 손북을 들고 춤을 추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하느님께 드리는 이 찬미와 찬양도 오래가지 못합니다. 광야에서 사흘 동안을 걸으면서 물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겨우 마라라는 곳에서 물을 발견하고 마셨는데 그 물은 말 그래도 쓴 물이었습니다. 마침내 백성들은 모세에게 불평을 하기 시작합니다.  모세가 주님께 기도를 하자 주님께서 나무 하나를 보여주십니다. 모세가 그것을 물에 던지자 그 물이 단 물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깨닫는 것은 인간의 하느님께 대한 찬미와 찬양은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쉽게 뜨거워졌다가 쉽게 식어버리는 신앙입니다.  기도는 우리에게 해결책을 제시해 줍니다. 모세가 기도를 통해서 나무를 발견합니다.  이 나무가 바로 쓴물을 단물로 만들어 줍니다. 그곳에서 주님께서는 백성을 위한 규정과 법규를 세우시고 백성을 시험하십니다. 그러시면서

“너희가 주 너희 하느님의 말을 잘 듣고, 주님의 눈에 드는 옳은 일을 하며, 그 계명에 귀를 기울이고 그 모든 규정을 지키면, 이집트인들에게 내린 어떤 질병도 너희에게는 내리지 않을 것이다. 나는 너희를 낫게 하는 주님이다.”(탈출 15, 26) 하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축복을 받는 것, 주님의 기적을 체험하는 것은 바로 하느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주님의 눈에 옳은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계명에 귀 기울이고 규정을 지키는 일임을 강조하십니다.

15장 27절을 보면, 그들이 엘림에 도착합니다. 그곳에는 샘이 열두개, 야자나무가 일흔 그루가 있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은 엘림이라는 도시는 마라에서 11킬로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도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조금만 더 참고 나아갔더라면 이 엄청난 오아시스의 도시를 발견했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보지 못하는 이 엘림이라는 도시를 이미 준비하고 기다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바로 믿음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고통 중에 있을 때 그 고통의 저 너머에 하느님께서는 엘림을 준비하고 계시다는 확신을 갖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확실하지 않은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신앙이란 바로 이러한 믿음의 생활입니다. 눈으로 보지 못하고 감각으로 느끼지 못하는 것을 우리는 믿음으로 보고 느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믿음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일상을 살아가면서 인간이 인간에게 갖는 믿음과 신뢰의 부족에서 생기는 여러가지 가슴 아픈 사건들을 체험하기도 하고 목격을 하기도 합니다. 인격적인 관계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인간이 인간을 도구적으로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은 타인으로부터 인격적인 대우를 원하면서도 자신은 타인을 대할 때 이기적인 목적의 달성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소금이고 빛이다.’ 말씀하셨습니다 처음에는 이 말씀을 깨닫기가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압니다. 내가 빛이고 소금인 이유는 바로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사시기 때문입니다. 나를 통해서 그리스도가 드러나는 삶, 그 삶이 바로 빛의 삶이고 소금의 삶입니다. 이 사실을 내가 믿고 실천하는 그 순간 빛이고 소금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미 자신들이 목격했던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 사건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확인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들은 주변의 사람들이 예수님께 대해서 갖고 있는 의구심 때문에 이를 확인하고  “율법 학자들은 어찌하여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말합니까?” (마태 10, 10) 하고 예수님께 질문을 합니다.

이 질문의 근거는 바로  “보라, 주님의 크고 두려운 날이 오기 전에 내가 너희에게 엘리야 예언자를 보내리라. 그가 부모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리고 자녀의 마음을 부모에게 돌리리라. 그래야 내가 와서 이 땅을 파멸로 내리치지 않으리라.”(말라 3, 23-24) 고 하는 말씀에 근거하고 있었기에 제자들은 확인을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대답도 바로 말라키서의 이 구절에 근거합니다. 엘리야는 이미 왔지만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를 배척하고 죽였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도 박해를 받고 죽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듣고서야 그 엘리야가 바로 얼마 전에 죽었던 세례자 요한 이었슴을 깨닫게 됩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성경의 모든 것을 이해하면서 읽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꼭 말씀을 이해하고서야 다음으로 넘어갈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도 말씀을 읽으면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들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믿음을 방해하지는 않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그렇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는 것이 당연하지 내가 하느님도 아닌데 하면서 위로도 합니다. 동시에 어떤 경우에는 시간이 지나고 난 뒤에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기도와 묵상은 학문적인 이해를 넘어서 하느님의 뜻을 찾고 이해하는데 참으로 도움이 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말씀을 통해서 또는 가르침을 통해서 참으로 많이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머리로가 아닌 마음으로 느껴지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아서 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마음으로 느껴지기 시작하면서 그 다음부터는 삶에 대한 활력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똑 같은 것을 보면서도 보는 관점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삶에 대한 두려움이나 불평이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이렇게 사랑하시는데 무엇이 그렇게 두렵고 초조한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특별한 체험을 통해서 느낄 수도 있겠지만 또 달리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의지적으로 삶에서 이 사랑을 실천하기 시작하면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바로 먼저 믿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기적이 믿음을 만드는 것이 아닐 믿음이 기적을 만들어 간다는 말이 더욱 가깝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이미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확인한 제자들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주변의 상황에 따라서 영향을 받는 나약한 믿음의 모습이 바로 나의 모습이지만 앞으로는 좀 더 확고한 믿음으로 살아가고자 다짐합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알기에 나의 이웃이나 주변의 환경에 따라 영향을 받는 그러한 믿음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혜롭고 총명한 사람은 지혜에서 오는 온유한 마음을 가지고 착하게 살아, 자기의 실천을 보여 주어야 한다.(야고 3,18)고 야고버 사도는 말합니다. 그리고 “위에서 오는 지혜는 먼저 순수하고, 그 다음으로 평화롭고 관대하고 유순하며, 자비와 좋은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위선이 없습니다.” 고 말합니다. 바로 이 지혜가 예수님입니다.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드러나는 삶이 바로 순수한 삶입니다.  평화롭고 관대한 삶이고 유순하며 자비와 좋은 열매가 가득한 삶이고 편견과 위선이 없는 삶입니다. 믿음으로 이러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확신을 주시는 예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면서 조건적인 신앙이 아니라 젖을 뗀 아이가 어머니 품 안에 안겨 있는 것처럼 하느님 안에서 참 평화와 행복을 누리는 삶을 살아 가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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