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말씀 묵상

희망의 시작 - 하느님 때문에 선택하는 삶(마태 5, 33-37) - 1330

Author
kchung6767
Date
2018-06-15 03:51
Views
1074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1330

2018년 6월 16일 토요일 

하느님 때문에 선택하는 삶(마태 5, 33-37)

“너희는 말할 때에 ‘예.’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여라.그 이상의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마태 5, 37)

주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삶을 산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매 순간 순간 결단을 내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선택을 위해서 우리는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합니다. 보이는 것을 포기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선택하는 결단이 필요한 것입니다.

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 사람들의 부류 가운데 정치하는 사람들이 가장 약속을 자 안지키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국회의원들은 더욱 그러합니다. 국회의원이기 때문에 , 대통령이기 때문에 언제나 이들이 약속을 하면 정말로 지킨다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어릴 때 신문에 나온 기사는 모두가 사실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오보는 없다고 생각했고  언제나 사실과 객관성에 기초해서 보도를 한다고 생각했었던 것입니다.  나이가 들면서 오보도 있고 기자의 양식이나 수준에 따라서 신문사의 성향에 따라서 한 사건을 두고서도 다양한 보도양식이 있슴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의 말을 쉽게 믿지 않는 것’ 이 사회생활을 잘 하기 위한 조건이라고 말합니다. 사실 믿기 어렵고 가슴 아픈 말이지만 이곳에서 살면서 이 말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체험합니다. 이러한 불신의 시대을 살아가면서 자신의 주장이나 말이 거짓이 아님을 강조하기 위해서 하느님을 끌어들이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아마도 예수님 당시에도 지금과 다름이 없었나 봅니다.

우리는 많은 맹세를 하고 살아갑니다.  자신의 주장의 옳음을 강조하기 위해서 ‘하느님을 두고서 맹세하는데 ‘ 등의 말을 자주합니다.

구약을 보면, 두가지 종류의 맹세가 있슴을 알게 됩니다. 하나는 하느님을 자기 주장의 증인으로 내세우고 엄숙하게 말하는 것인데 , 이것을 보통 ‘맹세’라고 하고 다른 하나는, 하느님께 뭔가를 드리겠다고 약속하는 것인데, 이것을 ‘서약, 혹은 서원’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맹세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자기의 주장의 옳음을 강조하기 위해서 하느님을 끌어들이는 맹세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느님을 두고서 맹세를 하고서 지키지 않으면 하느님을 거짓 증인으로 만드는 것이 됩니다. 이런  경우에는 거짓에다가 신성모독까지 더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두고서 맹세하는 대개의 경우는 다급할 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의 주장이 참으로 옳으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아예 맹세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하늘을 두고 땅을 두고도, 예루살렘을 두고도 네 머리를 두고도 맹세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당시의 사람들이 얼마나 맹세를 남발했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러한 것들을 두고서 맹세하지 말하고 하신 이면에는 이러한 모든 것들은 인간에게 속한 것이 아닌 하느님께 속한 것들입니다.

자신의 소유물이 아닌 것을 두고서 즉 자신에게 아무런 권한이 없는 것을 걸고 맹세를 한다는 것은 효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로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은 자신의 머리카락 하나도 희거나 검게 할 수 없다.(마태 5, 35) 고 말씀하십니다. 이말은 사람들은 자신의 시간을 멈추게 할 수도 없고 되돌릴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신의 머리를 두고도 맹세를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에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여라. 그 이상의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마태 5, 37)하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우리의 의사를 표현함에 있어서 필요한 것은 더 이상의 부연설명이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갖고서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우리는 항상 ‘예’라는 답을 하고 살아야 하고 사탄 앞에서 우리는 ‘아니오’라고 하는 답을 단호하게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분명한 태도를 갖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하느님의 뜻에 합당한 것과 합당하지 않는 것에 대한 ‘예’와 ‘아니오’의 분명한 태도 입니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많은 희생과 댓가를 치러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 때문에 오늘 하루도 주님의 뜻에 합당한 선택을  하는 하루를 봉헌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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