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시작 - 성 요한 크리소스 주교 학자 기념일에(루카 6, 27-38) - 1407

Author
kchung6767
Date
2018-09-12 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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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0
희망의 시작 - 1407

2018년 9월 13일 목요일


성 요한 크리소스 주교 학자 기념일에 (루카 6, 27-38)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카 6, 36)


오늘은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 학자 기념일입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축일을 맞으시는 여러분 모두에게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사랑을 한다고 하면서 상대의 입장에서 보다는 나의 입장에서 일방적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기 위주의 사랑입니다. 하지만 이 자기 위주의 사랑이 큰 문제를 일으킵니다.  어쩌면 자기 위주의 사랑을 강요하지 않는 것이 참사랑일 수가 있습니다.


요즈음 과도한 교육열을 보면서 왜 이렇게까지 자식들을 이렇게까지 교육시켜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자식들을 좋은 대학에 보내는 것이 부모의 성공이라고 말하는 시대입니다. 외적인 모습은 화려하지만 속은 참으로 비참하고 어둡습니다. 외적인 성공과 내적인 실패의 병존입니다. 참 사랑이 그리운 시대입니다.


예수님께서 평지에서 행복에 이르는 4가지의 길과 불행에 이르는 4가지의 길을 선포하신 다음 오늘 복음에서는 사랑의 구체적인 실천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위주의 사랑의 실천에 익숙했던 저에게 오늘의 가르침은 참으로 충격적이고 놀랍습니다수도 없이  말씀을 읽었지만 오늘처럼 비수같이 저의 마음에 꽂히기는 처음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랑을 실천할 때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 처럼 너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라’는 가르침을 실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하실 때 사랑은 양의 개념이 아닌 질의 개념입니다. 그런데 얼마만큼 사랑해야 하는가 하고 질문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랑의 기준은 ‘하느님께서 자비하신 것처럼’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은 요한복음 3, 16절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당신의 아들까지 보내시어 십자가에 달려서 죽게까지 하시는 사랑입니다.


그러면 에수님께서는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습니까? 바오로 사도는  필립피서에서 “ 6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7오히려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8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필립2, 6-8)고 예수님의 사랑을 알려 주십니다.


누구나 다하는 사랑은 감동을 주지 못합니다. 하지만 나를 죽여야 하는 사랑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줍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우리를 감동시키는 이유는 자신을 우리를 위해서 내어 놓으셨기때문입니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남겨두고 여분의 것 만을 나누는 것으로 사람들은 감동하지 않습니다.


순교성인들이 마더데레사가  다미안 신부님이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이유는 바로 자신의 것을 아까워하지 않고 내어 놓음에 있는 것입니다. 이들로부터 사랑을 받은 사람들은 자신들도이러한 살을 살아가겠다고 다짐하고 또 이를 실천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사랑은 에로스의 사랑이 아닌 아가페의 사랑인 것입니다.


사랑이 결여된 자신 만을 위한 지식은 남에게 드러내기 위한 것이 되기 쉽습니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은 "단지 알기 위해서 알려고 하는 것은 호기심이고, 알려지기 위해 알려고 하는 것은 허영심이고, 지식을 제 것으로 삼기 위해 알려고 하는 것은 더러운 욕망이다.덕으로 나아가기 위해 알려고 하는 것은 현명함이고, 남의 덕을 세우기 위해 알려고 하는 것이 사랑이다.”라고 말합니다.


남의 덕을 세워주기 위해서 알려고 하는 것을 사랑이라고 말하는 토마스 성인의 말씀은 바로 사랑은 사람을 성장하게 하는 것과 일맥 상통함을 알게 됩니다.


사랑은 사람들을 성장하게 합니다. 닫혀진 마음을 열리게 만듭니다. 내가 아닌 상대방이 우선이 되는 것이 사랑입니다. 나를 죽이고 상대방을 살리는 것이기에 상대방을 감동시킵니다. 첫째가 꼴찌가 되고 꼴찌가 첫째가 되는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하는 사랑, 원수를 사랑하는 사랑이 바로 사람의 마음을 변화하게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느님께서 자비로우신 것처럼,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능력으로는 가능한 일입니다. 갈라티아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바오로 사도는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갈라 2, 19-20) 하고 말합니다. 나를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로께서 내 안에 사시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되는 것입니다.


나를 십자가에 박았다는 사실을 확인할 때마다 인간의 능력으로 불가능한 것이 하느님의 능력으로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내가 사는 하루가 아닌 그리스도가 사는 하루가 되도록 노력하고자 합니다. 나를 위한 사랑이 아닌 하느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사랑을 실천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다시 한번 오늘 축일을 맞으시는 여러분 모두에게 축하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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