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말씀 묵상

희망의 시작 - 우리 가운데 있는 하느님의 나라(루카 17,20-25) - 1461

Author
kchung6767
Date
2018-11-14 05:59
Views
1606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1461

2018년 11월 15일 목요일

우리 가운데 있는 하느님의 나라(루카 17,20-25)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또 ‘보라, 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 하고 사람들이 말하지도 않을 것이다.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루카 17, 20-21)

바둑을 두는 사람과 훈수를 하는 사람과의 차이는 엄청 납니다. 삼자적인 관점은 객관적입이지만 당사자는 주관적일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객관성을 유지한다는 것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늘나라를 살면서도 하늘나라를 밖에서 찾는 어리석음을 범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치유사역은 하느님의 나라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이는 이 땅에서 이미 하늘나라가 시작되었슴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의 전 부분에서 예수님께서는 열명의 나병환자를 치유해 주십니다. 이들은 믿음과 순명으로 치유를 받습니다. 그런데 이들 가운데 하느님으로부터받은 은혜에 감사하는 사람은 이방인이었던 사마리아인 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의 믿음을 보시고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며 말씀하십니다.

오늘 아침 예수님의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이 말씀이 떠오릅니다.  완전한 믿음은 찬미와 감사에로 나아가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일어나 가거라.”하고 말씀하실 때 그 말씀이 단지 무릎을 꿇고서 당신께 존경을 표하는 그 사람에게 ‘일어나 가거라’ 하고 말씀하시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여태까지 나병환자로 살아오면서 겪었을 수많은 상처와 아픔이 있었을 것입니다. 언제나 아웃사이더로 살아야 했던 그 사람에게 이제는 그 아픔을 씻어버리고 새로운 삶을 살아 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의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고 덧붙이시는 것 같습니다. 

인간은 과거에 대해서는 너무나 잘 알지만 미래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그래서 다가올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구원을 받은 사람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미래는 불안과 두려움의 시간이 아닌 희망과 새삶의 시간인 것입니다. 과거의 ‘나’가 아닌 이제는 새로운 ‘나’인 것입니다. 자신이 주인이었던 삶에서 이제는 하느님이 주인이 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구원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새롭게 거듭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구원받은 나병환자를 세상으로 파견하십니다. 새롭게 거듭난 그는 하느님의 나라를 체험한 사람입니다. 하느님의 나라가 이 세상에 있슴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바리사이들은 “하느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 하고 예수님께 묻습니다. 이미 구원받은 나병환자를 통해서 하느님의 나라가 와 있슴을 보여주셨지만 이들의 닫힌 마음은 그 나라를 보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루카 17, 21)하고 말씀하십니다. 이미 하늘나라가 와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하늘나라를 어떤 징조를 통해서 알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닫혀진 마음은 어떠한 징조를 보여주어도 보지 못합니다. 그러면서 계속 징조를 보여달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답답함은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믿음은 우리의 눈을 열어 줍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이고 그 결과로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한다.”는 어거스틴 성인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이미 와 있는 하늘나라를 볼 수 있는 것은 바로 우리의 ‘믿음’입니다. 

우리가 성지순례를 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성지는 오로지 단 한 곳 밖에 없다는 어느 성지순례 안내원의 말이 기억납니다. 그렇습니다. 성지는 이스라엘 한 곳 밖에 없답니다. 예수님께서 활동하셨던 그곳 만이 성지라는 말을 들으면서 수긍이 갔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성지순례는 참 성지를 가기위한 준비임을 깨닫습니다. 닫혀진 눈을 열게하는 것입니다.  성모님께서 발현하셨던 여러 곳을 둘러보면서 성모님의 삶의 체취를 우리의 것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 성모님의 성지를 찾는 이유이겠지요. 

본문 23절에서 24절을 보면,   “23 사람들이 너희에게 ‘보라, 저기에 계시다.’, 또는 ‘보라, 여기에 계시다.’ 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나서지도 말고 따라가지도 마라. 24 번개가 치면 하늘 이쪽 끝에서 하늘 저쪽 끝까지 비추는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자기의 날에 그러할 것이다.”(루카 17, 23-24)하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의 의미는 거짓 예언자들이 나타나서 예수님께서 재림하셔서 이곳에 계시다 저곳에 계시다고 말하더라도 현혹되지 말고 따라 나서지도 말라고 합니다. 이유는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면 번개가 치면 하늘 이쪽 끝에서 하늘 저 쪽 끝까지, 즉 누구 다 볼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면 누구나 잘 볼 수 있고 알 수 있기 때문에 어디선가 재림했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찾아 다닐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나라 안에서 살고 있으면서도 하늘나라에서 살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음에서 해방되는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고자 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새로운 하루를 시작합니다. “일어나 가거라” 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마음에 담고 시작하는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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