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시작 -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사제 기념일(마태 8, 5-17) - 1476

Author
kchung6767
Date
2018-12-02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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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1476


2018년 12월 3일 월요일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사제 기념일(마태 8, 5-17)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마태 8, 7)


오늘은 예수회원으로서 인도와 일본에서 열정적으로 선교를 하시다가 중국으로 떠나시기 전에 돌아가신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님의 축일입니다. 오늘 축일을 맞으시는 여러분 모두와 예수회원 여러분 모두에게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오늘 복음을 통해서 우리는 일반적인 우리의 통념을 뛰어넘는 한 인간을 보게 됩니다. 바로 백인 대장입니다.  가진 자로서 지배의 논리에 익숙할 수 밖에 없는 사람의 따뜻함과 겸손 그리고 믿음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백인대장과 같은 겸손과 따뜻한 마음과 그리고 믿음의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의 믿음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스라엘의 그 누구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마태 8, 10) 고 말씀하실 정도로 극찬을 하십니다. 


오늘 아침에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한 이방인의 믿음을 보면서 놀라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기적을 보고서도 믿지 않음에 놀라셨던 분이십니다. 그런데 오늘의 예수님은 로마군의 간부인 백인대장의 믿음을 보고서 놀라십니다.  이 백인대장은 예수님께 나아와서 도움을 청합니다. 주변의 사람들이나 에수님의 입장에서는 놀랄 수 밖에 없는 상황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우리를 더욱 놀라게 하는 것은 바로 자신의 노예에 대한 태도입니다. 그는 사랑하는 마음, 따뜻한 마음, 자비의 마음을 가졌습니다. 자신의 문제나 자신의 가족의 문제도 아닌 자신의 종의 병을 갖고서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당시의 종은 인격적인 대우를 받는 존재가 아닌 주인의 소유물에 불과했지만 이 백인대장은 자신의 종을 인격적으로 대움함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의 따뜻한 심성을 통해서 드러나는 그의 믿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 사랑은 그를 겸손하게 합니다. 이 겸손이 당시의 유다의 지배계급들이 배척하는 예수님께로 나아가게 합니다. 어떻게 예수님을 알았는지에 대한 언급은 없어도 그도 예수님에 대한 소식을 듣고 예수님의 그러한 능력을 믿고서 확신을 갖고서 예수님께로 나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믿음과 사랑의 사람들은 남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바라봅니다. 메시아 앞에선 자신을 봅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고백하고 주님의  능력에 의탁 합니다. 자기의 집으로 가시겠다는 에수님을 굳이 못가게 제지 합니다. 지금 이자리에서 한 말씀만 하시면 당연히 나을 것이라는 확신입니다. 당시의 누구도 갖지 못했던 믿음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백인대장의 대답입니다. 자신이 명령을 내리면 자신의 부하들이 순명을 하듯이 예수님께서도 말씀만 하시면 자신의 종이 나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방문없이 말씀 만으로도 치유가 일어날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그러한 믿음과 확신에 감탄을 하십니다. 이스라엘에서 이러한 믿음를 본 일이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믿음은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불가능하게 보이는 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그래서 믿음의 열매는 생명입니다. 죄의 싹은 죽음이라고 말합니다. 구원은 하느님과의 관계의 회복이고 죄는 하느님으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하느님으로부터 떨어져 나감은 바로 죽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불신의 시대입니다. 참으로 믿음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자신의 이기심에 의존하는 믿음이 아닌 하느님이 주인이 되시는 믿음인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의 믿음을 황당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지가 않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일반인들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인간의 능력이 아닌 하느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내 삶의 이유를 과거에서 찾는 사람은 현재의 삶의 이유를 모릅니다. 하지만 자신의 삶의 이유를 미래에서 찾는 사람은 그 이유를 압니다. 과거에는 인간이 있지만 미래에는 하느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이 나의 존재의 이유가 되는 그 순간 새하늘과 새땅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어떠한 표징도 이적도 필요가 없습니다. 표징이나 이적때문에 하느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믿기 때문에 표징이나 이적들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불평과 불만이 없습니다. 오로지 감사와 찬양이 있습니다. 모세가 눈 앞에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두고서 느보산에서 죽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이러한 죽음에 대해서 불평한마디 하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순명하는 모세의 모습을 봅니다. 우리의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을 믿음은 이를 가능케 함을 모세를 통해서 보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명예와 권력과 부는 찰라적인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모세는 하느님께 의탁함으로써 영원히 사는 것을 택한 것입니다. 바로 믿음이 생명 임을 우리에게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대림시기를 시작하면서  예수님 보시기에 좋은 믿음의 삶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내 중심이 아닌 예수님이 중심이 되는 믿음입니다.  백인대장의 신앙을 통해서 나의 신앙을 되돌아 보는 기회를 허락하여 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 믿음이 나의 믿음이 되는 하루를 시작하고자 합니다. 다시 한번 오늘 축일을 맞으시는 여러분 모두에게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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