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말씀 묵상

희망의 시작 - 현실에서 하느님의 나라를 살아가는 삶( 마태 4,12-17.23-25) - 1503

Author
kchung6767
Date
2019-01-06 13:18
Views
1018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1503

2019년 1월 7일 월요일

현실에서 하느님의 나라를 살아가는 삶( 마태 4,12-17.23-25)

그분의 계명은 이렇습니다. 그분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대로, 그분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요한 1서 3, 23)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마태 4, 17)

정신없이 달려왔던 시간들을 뒤로하고 잠시 다가올 시간들을 바라봅니다. 불안과 두려움에서 맞이해야 했던 다가올 시간에 대해서 지금은 희망과 기대로 기다립니다. 하느님의 창조의 시간에 그만큼 동참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불안과 두려움의 시간에서 희망과 기대의 시간으로의 전환의 바닥에 믿음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돌아 오기만 하면 받아 주시는 하느님의 뜨거운 사랑에 대한 확신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을 바라봅니다. 당신께서는 돌아다니시면서 회당에서 가르치십니다. 그리고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십니다. 그리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고쳐주십니다. 가르침과 선포와 치유하심이 예수님의 삶의 핵심임을 깨닫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세가지의 동사입니다.

겉으로 드러난 동사의 의미가 아닌 우리가 묵상을 통해서 하느님 안에서 찾아내야하는 동사의 의미입니다.  우리의 삶을 통해서 가르치고 선포하고 고쳐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죽은 활자로서의 의미가 아닌 생명력을 갖고 살아 움직이는 의미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계명을 지키고 예수님의 마음에 드는 일을 하면, 우리가 청하는 것은 다 받게된다고 사도 요한은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그 계명은 바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에수님을 믿고 사랑한다는 것은 떨어진 말이 아닌 함께가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바로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고 사랑을 실천한다는 것이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있지만 사랑을 실천하지 않는 것은 참 믿음이 아니며 사랑은 실천하지만 믿음이 없다면 그 사랑은 완전하지 못한 사랑일 것입니다.

믿음과 사랑의 삶을 들여다 보면서 회개와 하늘나라를 생각하게 됩니다. 믿음과 사랑은 하느님과의 완전한 일치를 이루게 합니다. 회개는 우리가 하늘나라에서 살기 위한 조건입니다. 내가 믿음과 사랑의 삶에서 유리되어 있었다면 다시 그 믿음과 사랑의 삶에로 돌아오는 것이 회개임을 깨닫게 됩니다.

교회의 일을 하면서  동료 신자들이 자신처럼 일을 하지 않는다고 힘들어 하는 많은 분들을 보게 됩니다. 남을 판단하고 비판하는 분들을 보게 됩니다. 인간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열심히 일하는 분들이 자기 만큼 열심히 교회의 일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고 단죄하는 것은 이해가 되기도 하지만 신앙인의 관점에서 본다면 옳은 일이 아닐 것입니다.

내가 하는 교회의 일은 하느님과 나와의 관계 안에서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믿음과 사랑의 표현인 것입니다. 따라서 타인의 행위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아야 합니다. 나를 드러내기 위해서 교회의 일을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오로지 하느님의 영광만이 드러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나를 위한 일이면, 나를 드러내기 위한 일이면, 남이 알아주지 않는 것에 대해서 실망하기도 좌절하기도 할 것입니다. 짜증이 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피곤하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유혹을 이겨내어야 합니다. 인간의 눈이 아닌 하느님의 눈을 의식하면서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늘나라는 내가 주인이 되는 나라가 아닌 하느님께서 주인이 되시고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나라입니다. 내가 딛고 있는 이 땅에서 하느님의 나라를 살아 간다고 하는 것은 바로 나의 삶의 주인이 나에서 하느님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유한한 인간이기에 여전히 완전을 향해서 나아가는 우리들입니다. 순간 순간 자신이 주인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이러한 불완전함을 아시는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우리가 돌아오기 만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회개’입니다. ‘회개’의 지향은 하늘나라입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현재를 허락하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다가오는 미래의 시간을 불안과 두려움이 아닌 기대와 희망으로 기다릴 수 있게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부족함으로 쓰러지더라고 다시 일어나 당신께로 나아가면 받아주시는 당신의 사랑에 감사를 드립니다. 당신의 나라를 이 땅에서 체험하며 살아갈 수 있게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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