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시작 - 하느님의 능력에 의탁하는 지혜(마르 6,53 - 56) - 1531

Author
kchung6767
Date
2019-02-10 13:12
Vi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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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1531
2019년 2월 11일 월요일
하느님의 능력에 의탁하는 지혜(마르 6,53 - 56)

그것에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마르 6, 56)
믿음은 희망이 없는 사람에게 희망을 줍니다.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인간의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자신을 창조하신 분의 능력을 넘어설 수 없습니다. 하지만 작금의 과학기술의 급격한 발전은 인간이 스스로 창조주를 넘어 설 수 있다는 착각을 할 정도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러한 착각에서 벗어나 자신을 정확하게 아는 것이 지혜입니다.

우리 인간은 그리스도의 사랑에 의틱하지 않고 세상의 추세를 거슬러 산다는 것이 참으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의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갈라 2, 20)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나를 십자가에 못 박고 이제는 그리스도가 나의 삶의 주인이 되는 살아가는 삶을 살아갈 때 가능한 것입니다.

오늘 제1 독서는 . 창세기 1장에 나오는 하느님의 창조이야기 힙니다.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 생겨라 하시자 그대로 되었다. … 보시니 좋았다.” 하는 말이 반복됩니다. 하느님의 말씀대로 하기만 하면 모든 것이 하느님 보시기에 좋게 된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그대로 실천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삶은 바로 말씀을 제대로 듣는데에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제대로 듣지 않은 하와는 사탄에게 유혹할 빌미를 제공합니다. 결국에는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는 첫 인간의 모습입니다. 자신의 아내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아담 역시 사탄의 유혹에 넘어갑니다. 아담이 하느님의 말씀을 제대로 들었는지 아닌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단지 하와와 뱀의 대화를 갖고서 추측할 따름입니다.

하느님께서 한 처음에 세상을 창조하실 때 그 창조의 순서는 시간과 공간과 생명의 순이었습니다. 생명체가 잘 존재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시고 난 이후에 생명체를 창조하시고 그 중에서도 인간을 가장 늦게 창조하십니다. 인간을 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시고 난 이후에는 “하느님께서 보시니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이 참 좋았다.”(창세 1, 31) 하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통해서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를 알 수가 있습니다. 말씀을 잘듣는 삶, 바로 그 삶이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삶입니다.

“빛이 생겨라”하는 말씀이 머리 속을 맴돕니다.  어둠이 심연을 덮고 있는데 빛을 만드시어 빛과 어둠을 갈라 놓으셨습니다. 그 빛을 낮이라고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어둠이 깊은 심연처럼 덮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빛이 생겨라’하고 말씀하십니다.

죽음을 향하던 우리의 삶이 생명으로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절망을 향하던 눈빛이 이제는 희망을 바라봅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한 처음의 말씀이 지금 나에게 이렇게 충격적으로 다가옵니다.  나의 삶에 빛이 생깁니다. 희망과 긍정이 생각을 지배합니다. 죽음의 언어에서 생명의 언어로 말을 합니다. 미움과 저주와 증오가 이제는 사랑이 되는 삶입니다.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삶을 살아갈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창조가 일어납니다. 이제 새 하늘과 새 땅이 나의 삶의 터전이 되었습니다.

야이로의 딸을 살리시고 하혈병을 앓던 여인이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어서 치유를 받았던 것, 오천 명을 먹이시는 기적을 행하시고 배를 타고  폭풍우에 시달리고 있던 제자들이 물 위를 걸어 오시는 예수님을 통해서 자연도 예수님께 순명하는 것을 보고서 참으로 이 분이 주님이시라는 것을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마다 환자들을 데리고 옵니다. 이들이 예수님께 당신의 옷자락 술에 손이라도 대게 해 달라고 청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아픔을 보십니다. 그들의 아픔이 당신의 아픔으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에게 당신 옷의 술에다 손을 대는 것을 허락하십니다. 바로 이들이 구원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구원은 이들의 병이 나았슴을 의미합니다. 이들의 삶에 빛이 생겼습니다.

스스로 병자임을 깨닫는 사람들은 에수님의 옷자락 술에 손이라도 대어 보기 위해서 찾아옵니다. 비록 육체적인 아픔이 없다고 하더라도 매일 매일 영적인 병을 짓고 살아가면서도 이 병이 악화됨을 모르는 중환자인 저를 바라봅니다. 이제 에수님께로 가야 합니다. 당신의 옷자락에 손을 대기 위해서 가야 합니다. 바로 오늘 예수님께로 가야하는 날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의 시작입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다시금 나를 십자가에 못 박고 이제는 그리스도가 나의 삶의 주인이 되시는 삶, 즉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갈라 2, 20) 삶을 살고자 다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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