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말씀 묵상

희망의 시작 - 주님 수난 성 금요일(요한 18, 1-19, 42) - 1588

Author
kchung6767
Date
2019-04-18 13:27
Views
1028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1588

2019년 4월 19일

주님 수난 성 금요일(요한 18, 1-19, 42)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인류의 모든 죄가 블랙홀에 빠지는 것처럼 이 십자가로 빨려 들어갑니다. 아무런 죄도 없이 오히려 죄가 없는 것이 죄가 되어 십자가에 달리시는 예수님이십니다. 피 눈물이 범벅이된 예수님의 얼굴을 바라봅니다. 그런데 극도의 고통 속에 있는 예수님의 모습 안에서 사랑을 봅니다.

매년 오늘 강론을 준비할 때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돌아가시면서 하신 일곱가지의 말씀을 읽고 묵상해 봅니다.  극도의 고통 속에서 죽음을 목전에 두고  십자가 상에서 하셨던 한 말씀 한 말씀이 가슴에 저려옵니다.  매년 말씀을 묵상할때마다 느낌은 다르지만 오늘도 예수님의 말씀을 다시 한번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루카 23:34).

용서만큼 어려운 일이 없다고 합니다. 인간의 모든 죄를 당신의 잔에 담고서 그 잔을 치워달라고 청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봅니다.  당신의 죽음을 두려워하시는 예수님이 아니라 바로 인간의 죄로인한 심판을 당신께서 지셔야 하는 그 잔인 것입니다. 그 잔을 당신의 십자가 상에서의 죽음에 담으시는 것입니다. 용서의 전형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을 잡아서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을 위해서 하시는 기도입니다.  자신의 논리에 갇혀있는 우매한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자비를 청하는 큰 사랑입니다.

2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루카 23, 43)

예수님께서 당신과 함께 십자가 형에 처해지는 죄수를 위해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합니다. 나도 마음대로 살다가 마지막 순간에 죄수처럼 회개하면 하늘 나라에 들어갈 것인데 하면서 지금의 자신을 합리화 합니다. 하지만 우리 인간의 우매함은 자신이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그 죄수는 마지막 순간에 예수님께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루카 23, 42) 하고 청했던 죄수입니다.  하지민 우리는 죄수의 마지막 순간을 현재의 우리로 생각해야 합니다.  지금 즉시 회개의 필요성을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3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요한 19, 26-27)

십자가 상에서 죽어가는 아들이 어머니에게 하는 마지막 말씀입니다. 그리고 가장 사랑했던 제자에게 어머니를 맡기시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 모두가 성모님의 아들이 됩니다. 그리고 성모님은 우리 모두의 어머니가 되십니다. 십자가 상에서의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우리에 대한 사랑을 다시 오실 그날까지 연장시켜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4“엘리 엘리 레마 사박타니?” (마태 27, 46)

이 말씀은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의 이 부르짖음을 들으면서 이 분의 부르짖음이 갖는 아픔과 고통을 바라봅니다.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우리의 죄 때문에 받아야 할 우리의 모든 고통의 댓가를 당신께서 혼자 감당하시는 모습입니다. 이 외침이, 이 부르짖음이 바로 하느님과 우리를 화해하게 하고 우리 또한 이웃을 위해서 십자가를 져주시는 삶을 살아가도록 초대하는 말씀으로 다가옵니다.

5 “목마르다.” (요한 19, 28)

이 목마름은 강열한 열망의 표시이기도 합니다. 여전히 뭔가 남아 있는 것에 대한 아쉬움의 표현일 수도 있습니다. 당시의 자신들이 하는 무슨 일을 하고 있는 지에 대해서 모르는 불쌍한 영혼들에 대한 아쉬움의 표현일 수도 있고 영원 안에서 현재의 우리의 모습에 대한 아쉬움과 구원하시고자 하는 사랑의 열망을 담고 있는 말씀입니다.

6 “다 이루어졌다.”(요한 19, 30)

이 땅에서 예수님께서 당신의 뜻이 아닌 하느님의 뜻으로 당신의 사명이 다 이루어졌슴을 말씀하십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당신의 뜻이 아닌 아버지의 뜻에 순명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7 “아버지,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루카 23, 46)

아버지의 손에 당신의 영을 맡기십니다. 우리의 삶의 마지막 순간에 우리가 어떠한 모습으로 주님의 품에 안겨야 하는 가를 보여주시는 것 같습니다. 결국 우리는 주님의 사랑으로 이 세상에 왔고 다시 주님의 사랑의 품안으로 살아가는 삶을 살아야 함을 알려주십니다.

사랑에는 당연히 고통이 따릅니다. 하지만 그 사랑이 고통을 압도하기에 고통이 고통이 아닌 것으로 다가옵니다. 또 사랑 때문에 받게 되는 고통마저도 사랑으로 생각하기에 고통은 사라지고 사랑 만이 남습니다. 그 사랑이 영광으로 드러납니다. 드러나는 영광이고 바쳐지는 영광입니다. 너무나 인간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셨던 그분이 십자가 상에서 당신의 인간에 대한 사랑의 미션이 다 이루어졌다고 선언하시면서 아버지의 품에 안기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셨던 십자가의 길 마지막에 있는 이 말씀들을 통해서 예수님의 큰 사랑을 체험합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예수님의 이 땅에 오신 그 사명이 나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하루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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