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시작 - 인간의 언어와 하느님의 언어(마태 9, 18 - 26) - 1654

Author
kchung6767
Date
2019-07-07 11:49
Views
305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1654


2019년 7월 8일 월요일


인간의 언어와 하느님의 언어(마태 9, 18 - 26)



 “딸아, 용기를 내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마태 9, 22)



새로운 주간을 맞이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께서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고 말씀하시는 것을 듣습니다. 믿음이 바로 구원의 전제임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르코 복음에서는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그리고 병에서 벗어나 건강해져라.”( 마르 5, 34)하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참조하면 이 구원은 평화와 깊은 관계가 있슴을 알려주십니다. 그래서 ‘믿음과 구원 그리고 평화’ 이 세 단어가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병에서 벗어나 건강해져라.” 하고 말씀하시는 것을 듣습니다. 당시의 사람들은 병이 죄의 결과라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병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바로 죄에서 벗어남을 말합니다.  새로운 삶으로의 초대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딸아”하고 부르시는 그 말씀이 너무나 다정하게 들려옵니다. 그 순간 동심으로 돌아가 어리광을 부리고 싶어집니다. 저 부르심이 바로 저를 부르시는 것 같습니다. 


믿음은 마음을 여는 것입니다. 오늘 이 복음에 나오는 여인에 대해서 마태오 복음 사가는 ‘열 두해 동안 혈루증을 앓는 여자’라고 간단하게 보도하고 있지만 마르코 복음에 의하면 이 여인은 자신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많은 의사를 찾아 다녔고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이 치료를 위해서 다 쏟아 부었지만 효험은 없이 상태만 나빠졌다(마르 5, 26 - 27) 라고 자세하게 설명합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이러한 체험을 많이 합니다. 결국은 인간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이 여인은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빛을 봅니다.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찾아갔을 때 예수님은 수 많은 군중에 둘러싸여 계십니다. 이 여인의 예수님에 대한 믿음과 신뢰는 대단합니다. 앞으로 다가갈 수가 없으니까 예수님 뒤로 가서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댑니다.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 하는 굳은 믿음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이 여인이 생각하는 구원은 뒤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구원과는 의미적으로 차이가 있습니다. 


마르꼬 복음에 의하면 당신에게서 힘이 빠져나간 것을 깨달은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하고 물으십니다. 이 부인은 두려워 떨면서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사실대로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녀의 믿음을 보십니다. 그래서 구원을 주십니다. 구원은 바로 평화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평화의 조건은 바로 그 여인에게 있어서는 병에서 벗어나서 건강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녀에게  병에서 벗어나 건강해져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냥  “너의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는 말씀으로도 충분한데 이렇게 길게 말씀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를 묵상해 보면, 평화와 육체적인 치유입니다.  즉 그녀는 몸과 마음이 모두가 치유가 되었습니다. 바로 전인적인 구원을 말합니다. 앞에서 여인이 기대한 구원이 육체적인 치유였다면 예수님의 구원은 몸과 마음의 치유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회당장의 집에 오셔서 피리 부는 사람들과 소란을 피우고 있는 군중을 보시고 “물러들 가거러 저 소녀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의 눈에는 죽음이지만 하느님의 눈에는 자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언어와 하느님의 언어는 다릅니다. 죽은 것이 자는 것이고 어쩌면 자는 것이 죽음이기도 할 것입니다. 어쨌던 예수님께서는 이 아이의 손을 잡으시자  소녀가 일어납니다. 마르코 복음의 말씀을 빌리면 예수님께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서 “탈리타 쿰!”하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은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는 뜻입니다. 그러자 소녀는 죽음을 틀고 즉시 일어나 걸어다닙니다. 죽음마저도 예수님의 말씀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앞에서의 ‘구원’과 ‘죽음에서의 일어남’은 같은 말입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탈리타 쿰’ 입니다. 무엇으로부터 일어납니까? 우리를 죽음에로 이끄는 모든 자기 중심적인 삶으로부터 하느님이 중심이 되는 삶으로 입니다. 구원은 우리를 제약하는 모든 자기 중심적인 요소들로부터 하느님께로 나아감을 말합니다. 세상에서 하느님의 나라를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이 순간 일어나라고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오늘 하루도 그냥 흘러가는 시간 속에 자신을 맡기며 세상과 타협하며 살아가는 저에게 이제는 모든 것을 벗고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는 것을 깨우쳐 주시는 주님의 말씀,  “탈리타 쿰”에 응답하는  하루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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