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시작 - 하느님께 전적으로 의탁하는 삶(마태 10, 16-23) - 1658

Author
kchung6767
Date
2019-07-11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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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1658


2019년 7월 12일 금요일


하느님께 전적으로 의탁하는 삶(마태 10,  16-23)


 “19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20사실 말하는 이 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마태 10, 19-20)


오늘 복음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심으로 당신을 따르는 삶을 살기를 원한다면 “31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입을까?’ 하며 걱정하지 마라. 32   이런 것들은 모두 다른 민족들이 애써 찾는 것이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  33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마태 6, 31- 33) 는  말씀을 저에게 들려 주십니다. 여기에서 순서가 중요합니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곁들여 받게될 것에 집착하며 추구합니다. 따라서 정작 본질적인 것을 잃어 버립니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마태오 복음 10장에는 예수님께서 열 두 사도를 뽑으시고 그들에게 두려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십니다. 그리고 이들을  선교의 현장에서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 가를 가르치십니다. 오늘 복음의 말씀은 선교의 현장에서 받게 될 박해를 각오하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구체적으로 뱀처럼 슬기롭고 순박한 비둘기처럼 사목의 현장에서 준비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계속해서 사람들을 조심해야 하며 예수님 당신 때문에 사람들이 임금에게 끌고 가서 증언하게 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 가를  그리고 박해를 받을 때 어떻게 해야 하나 늘 알려 주십니다. 이러한 가르침은 2000년이 지난 지금의 선교의 현장에서도 적용이 될 것입니다.


여기서 열 둘은 하느님과 관련된 수로서 완전함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열두 제자는 이스라엘의 열 두지파를 상징함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열 두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있는 동안은 제자들이었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는 ‘사도’가 됩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고 복음을 선포하고 사람들을 가르치고 마귀를 쫓아내기 위해 특별히 선택된 예수님의 열 두 제자들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들 열두 사도의 이름에 대해서 간단하게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들 열두 사도의 이름과 순서는 복음서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특별히 도량이 큰 사람’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타대오’의 경우에는 이름이 다릅니다. 루카복음 6장 16절에는 ‘야고보의 아들 유다’로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순서가 다른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베드로’는 사도단의 대표였기에 항상 처음에 이름이 언급됩니다. 원래의 이름은 ‘시몬’인데 예수님께서  바위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케파’라는 아람어 이름을 지어 주셨습니다. ‘바위’는 그리스어로 ‘페트라’입니다. 그런데 이 말이 여성명사이기에 남성명사인 ‘페트로스’로 바꿔서 불렀고 한국에서는 ‘베드로’라고 합니다. 


‘안드레아’는 ‘남자답다, 용감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은 둘 다 성질이 불같아서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천둥의 아들’ 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셨습니다(마르 3, 17). 


‘필립보’는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뜻이고 ‘바르톨로메오’는 요한복음 1장에 나오는 나타나엘과 같은 인물로 추정됩니다. 이 이름은 ‘탈미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토마스’는 쌍둥이라는 뜻입니다. ‘세리 마태오’는 세리 레위와 같은 사람이고 마태오 복음의 저자라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알패오의 아들 야고버’는 일반적으로 예수님의 형제로 알려져 있고 예루살렘의 첫 주교인 야고보를 말합니다. ‘유다 이스카리옷’이라는  말은 ‘자객, 거짓말쟁이, 배반자’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당신의 양들을 이리떼 가운데로 보내시는 것처럼 보내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자신들의 고정관념에 사로잡혀있는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사고나 관습을 바꾸라고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종교가 다른 곳에서 새로운 종교를 전한다는 것은 자신의 목숨마저도 담보해야 하는 위험이 따릅니다. 그런데 이러한 위험을 무릎쓰고도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들을 선택하시고 난 이후에 이들에게 필요한 능력과  가르침을 주신 후에 이들을 파견하십니다. 부모가 아이들을 객지로 보내는 것과 같은 마음이 느껴집니다. 이들을 ‘이리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이라는 표현은 그 장소가 그만큼 위험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그러한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뱀의 지혜와 비둘기의 순박함이 필요함을 강조하십니다. 


우리가 위험에 직면하게 됨은 어떠한 자세를 가져야 하겠습니까?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말합니다.  이는 인간적인 능력으로 응답할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도와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제자들이 성령으로 가득차서, 또는 성령의 도움을 받아서 예수님을 증언하게 되고 복음을 선포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두번 째로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겠지만 그러나 끝까지 견디면 구원을 받음을 잊지 말야하겠습니다. 여기서 ‘끝까지’라는 말은 종말을 뜻할 수도 있고 ‘순교로 죽기까지’를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구원’은 종말의 구원을 뜻할 수도 있고, 순교한 다음의 영생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세 번째로는 “어떤 고을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다른 고을로 피하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 한다. 너희가 이스라엘의 고을들을 다 돌기 전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마태 10, 23)하고 말씀하십니다. 어떤 고을에서 박해를 하면 다른 고을로 피하라고 하십니다. 이는 순교는 예수님을 증언하는 한 방법인데 무턱대고 죽음을 선택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현명한 분별이 필요한 것입니다. 순교는 우리 신앙의 목적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선교의 현장에서 우리가 해야하는 일은 바로 언제나 성령이 춤만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갖고서 끝까지 견디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순교는 신앙의 목적이 아니므로 박해하는 장소에서 박해를 피할 수만 있으면 피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나의 삶의 매 순간 순간을 내가 주인이 되는 삶이 주님이 주인이 되시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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