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말씀 묵상

희망의 시작 -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사제 순교자 기념일(마태 18, 15-20) - 1686

Author
kchung6767
Date
2019-08-13 10:19
Views
1165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1686

2019년 8월 14일 수요일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사제 순교자 기념일(마태 18, 15-20)

"내가 또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마태 18,19)

오늘은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신부님 기념일 입니다. 오늘 축일을 맞으시는 여러분 모두에게 축하의 인사를 전합니다. 

모세가 느보산에서  가난안 땅을 바라보면서 죽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세가 왜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을까 하고 생각을 해 봅니다. 일반적으로 모세가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여태까지의 모세와 하느님과의 관계를 고려할  때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들이 있습니다.

사랑은 겉으로 보기에는 아프고 섭섭하게 보이더라도  상대에 대한  깊은 사랑 때문에  겉으로 드러나는 고통과 아쉬움을 감당하게도 합니다. 참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지는 아픔을 감수하는 것과 같은 논리일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보기에 모세에게 너무 심하게 하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도 하지만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이것이 참으로 모세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방법이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모세와 여호수아가 함께 가나안 땅으로 들어갔다면,  모세가 이미  여호수아를 자신의 후계자로 임명을 하였지만 사람들은 모세를 찾을 것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서 백성들은  모세파와 여후수아 파로 나뉘어져 서로가 갈등하고 분열이 일어나기도 할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이 연속된다면 모세의 전 삶은 하느님의 사람으로서의 삶이 아닌 분열의 원인으로 그리고 현재까지 우리가 갖고 있는 모세에 대한 존경심도 그에 대한 좋은 인상도 다 사라질 것입니다.

모세를 죽게하셔서 인간은 누구나 내려와야 할 때 미련을 갖지 않고서 내려와야 함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죽는 것이 영원을 사는 것임을 깨우쳐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 만나는 예수님은 용서의 예수님이십니다. 일곱 번의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용서란 쉬운 일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는 쉽게 용서를 받기를 원하면서도  타인의 잘못에 대해서는 용서가 인색한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용서를 강조하십니다.

공동체가 한 마음으로 기도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각양각색의 사람이 모여있는 교회 공동체를 바라봅니다. 하느님을 향한 마음은 동일한데 각자에게 존재하는 하느님의 모습은 다른 모습인가 봅니다.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체험도 너무나 다릅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마음을 모아서 청하라’고 하십니다.  다양한 마음이 공동체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서로가 서로에 대한 섭섭함이나 미움의 감정을 털어내어야 합니다.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이 어려운 일을 하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공동체의 청을 들어주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가 마음을 모아가는 과정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나의 형제가 죄를 지으면 먼저 그 형제와 단둘이 만나서 그 형제가 죄를 짓지 않도록 타이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공개적인 충고는 아무리 애정을 담아서 한다고 하더라도 듣는 입장에 있는 사람에게는 자존심을 건드릴 수 있고 불편한 마음을 갖게 할 것입니다. 따라서 이를 배려하는 마음 또한 사랑의 표현일 것입니다.

18장15절을 보면, ‘너에게 죄를 짓거든’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너에게' 라는 말을 그대로 두면 신자와 신자 사이의 개인적인 관계에서의 잘못에 대한 가르침처럼 됩니다. 그러나 이 ‘너에게’라는 표현이 필사본에 따라서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데 일반적인 학자들의 견해는 18장 15절-18절은 개인 사이의 사적인 잘못에 대한 가르침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와 관련해서 공적인 죄에 대한 가르침이기 때문에 '너에게' 라는 말을 삭제하는 것이 맞다고 합니다. 이러한 견해를 따른다면, 어떤 사람이 나에게 개인적으로 잘못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에 대해서 잘못을 하는 경우를 말한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바로 지금 우리에게 이러한 반성이 필요합니다. 나는 교회 공동체나 다른 신심단체의 활동을 하면서 어떠한 모습으로 활동을 하고 있는 지에 대한 반성이 필요한 것입니다.

단 둘이 만나서 타이르지만 말을 듣지 않으면  죄를 지은 사람이 충고를 듣지 않으면 신명기19장15절의 규정처럼 ’한사람이나두사람'을 더 데리고가서 회개하도록 타이러도록 권고합니다. 원래 이 규정은 재판을 할 때 두 사람 이상의 증인이 필요한 것을 차용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이것은 충고의 효과를 높이기 위함입니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도 듣지 않으면 마지막으로 교회 공동체에 보고하고 교회 공동체의 말도 듣지 않으면 '그를 다른 민족 사람이나 세리처럼' 여기라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다른 민족 사람'이란 하느님을 믿지 않는 이방인을 뜻합니다. 여기서 '세리'는 '공개적인 죄인'을 뜻하는 말로 사용된 것입니다. 따라서 이들을 이방인들이나 세리처럼 간주한다는 것은 바로 공동체에서 떠나게 함을 의미합니다. 이들을 공동체에서 떠나게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잘못에 대한 회개의 거부인 것입니다. 이 말은 이들이 회개하고 다시 돌아온다면 다시 받아들임을 전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어떤 사람이 공동체 안에서 잘못을 하는 경우에 이들이 다시금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도록 인내심을 갖고서 애정어린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마음을 모으는 일’입니다. 이러한 사랑스런 노력이 바로 서로 다른 마음을 하나되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됨을 위한 노력의 결실로 이루어지는 공동체의 기도는 하느님께서 다 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모세를 죽게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묵상해 봅니다. 그리고 공동체 안에서 문제가 생길 때  ‘마음을 모으는 일’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실천할까를 생각해 봅니다. 하느님의 생각과 마음으로  살아가는 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 다시 한번 축일을 맞으시는 여러분 모두에게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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