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시작 - 가난의 영성으로 살아가는 삶 (루카 10, 17-24) - 1731

Author
kchung6767
Date
2019-10-04 05:00
Views
377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1731


2019년 10월 5일 토요일


가난의 영성으로 살아가는 삶 (루카 10, 17-24)


"주님, 주님의 이름 때문에 마귀들까지 저희에게 복종합니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 어졌습니다.”(루카 10, 17. 21)


오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제대로 보고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가를 알려 주십니다. 그냥 듣고 보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보고 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스스로 잘난 체 하거나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당시의 율법학자들이나 바라사이들과 사두가이 같은 사람들은 보면서도, 들으면서도 보지도 듣지도 못했기 때문입니다. 욕심이나 탐욕이 자신의 눈을 가리기 때문입니다. 


창세기를 보면, 하느님이 될 수 있다는 사탄의 유혹에 넘어간 아담과 하와는 스스로 하느님 되기 위해서 선악과를 따 먹습니다. 하느님의 종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세상으로 자유하지만 하느님으로부터 해방된 인간은 이제 자신이 추구했던 세상의 노예가 되어 버렸습니다. 삶의 수단이 목적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한계에 갇힌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넘어선 것에 대한 해결의 능력이 없습니다.  스스로 하느님이 되었지만 그 인간이 지금은 자신의 지식과 지혜의 저주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지속적인 세계의 불안은 바로 이것에서 유래함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일흔 두 제자들이 선교사명을 마치고 돌아와서  “주님, 주님의 이름 때문에 마귀들까지 저희에게 복종합니다.” 하고 기뻐하면서 예수님께 보고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마찬가지로 이들의 보고를 듣고서 기뻐하십니다. 기뻐한다는 것은 너무나 좋은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 기쁨이 무엇 때문에 생기는 기쁨인지가 중요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기쁜 삶을 살아가는 것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바라시는 당신의 뜻(테살 전 5, 16-18)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파견하실 때 돈 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가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치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시는 것같은 걱정하는 마음으로 파견하셨습니다. 제자들 역시 최소한 것만을 갖고서 파견 되었기에 참으로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고생들을 많이 했을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무사히 돌아와서 기뻐하면서 자신들이 한 일에 대해서 예수님께 보고를 합니다. 제자들이 어디에 가서  무엇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이들의 표현,   즉 “주님, 주님의 이름 때문에 마귀들까지 저희에게 복종합니다.” 하고 말하는 것을 보면 나름대로 많은 성과를 거두고 돌아왔슴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영들이 너희에게 복종하는 것을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 하고 덧 붙이십니다. 여기서 ‘영’은 악령들을 말합니다. 이 말씀은 바로 악령들이 복종하는 기적을 행했다고 교만에 빠지지 말고 자신의 구원이 더 중요함을 깨달으라고 가르치십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겠습니까? 이유는 바로 인간의 나약함에 있습니다.  언제나 교만에 빠질 수가 있는 약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 누구나 스스로  어떤 큰 일을 하면 기뻐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을하고 나면 빠지게 되는 유혹은 꼭 비교를 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것과 비교를 하는 것입니다. 교만이 끼어듭니다. 이렇게 비교를 하는 순간에 내 삶의 주인은 ‘하느님’이 아니고 이미 ‘내’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 타락의 결과가 지금 이 순간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슴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기쁨을 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 안에서 즐거워하며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성령과 기쁨으로 가득차서 기뻐하셨슴을 보게 됩니다. 이 기쁨은 바로 제자들을 통해서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났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감사를 드립니다. 그 감사는 바로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슬기롭고 지혜롭다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능력에 의존하는 사람들입니다. 자기 스스로 잘 난 사람들이기에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알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어린아이와 같은 철부지들은 자신의 능력으로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하느님께 의존하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가난의 영성입니다.


하느님께 의탁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이 하느님의 능력으로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교만한 자를 낯추시고 겸손한 자를 높이시는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시는 것입니다.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면서 우리와 우리 가족들 모두가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 안에서 오늘 하루도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그분의 가르침을 밤낮으로 되새기며(시편 1, 2)  하느님께 의탁하는 가난의 영성으로 살아가는 거룩한 하루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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