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말씀 묵상

희망의 시작 - 행복과 불행의 기로에 서서(루카 11, 47 - 54) - 1741

Author
kchung6767
Date
2019-10-16 04:36
Views
1312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1741
2019년 10월 17일 목요일
행복과 불행의 기로에 서서(루카 11, 47 - 54)

“너희는 불행하여라! 바로 너희 조상들이 죽인 예언자들의 무덤을 너희가 만들기 때 문이다.이렇게 너희 조상들은 예언자들을 죽이고 너희는 그들의 무덤을 만들고 있으니, 조상들이 저지른 소행을 너희가 증언하고 또 동조하는 것이다.”(루카 11, 47 - 48)

언젠가 모 수녀원을 방문했던 적이 있습니다. 낯선 곳이었지만 문간에서 저를 밝고 기쁘게 맞아 주시는 수녀님 덕분에 낯섬의 서먹함이 사라짐을 느꼈던 적이있었습니다. 겸손한 수녀님을 통해서 수녀원을 찾는 손님들이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할 수가 있었습니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아주 가까운데 있슴을 체험합니다. 행복은 공간의 개념이 아니라 나의 삶의 주인이 누구인가에 있슴을 느낍니다.

예수님의 행복선언과 불행선언을 묵상해 봅니다. 행복선언의 첫 부분은 가난한 사람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라고 말씀하실 때 이 ‘가난’의 의미는 ‘외부의 도움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을 말합니다. 따라서 달리 표현하면 ‘하느님께 전적으로 의탁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스스로 하느님께 전적으로 의탁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압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교만’은 ‘가난’의 반대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교만’은 자신을 채우는 사람입니다. 자신이 주인이 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자신이 목적이 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스스로를 내세우는 사람입니다. 자신을 내세우기에 가면이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속과 겉이 다릅니다. 이러한 사람들을 두고서 예수님께서는 ‘불행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들이  불행한 이유는 이러한 삶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 조상들은 예언자들을 죽이고 너희는 그들의 무덤을 만들고 있으니' 라는 말은 '너희의 조상들은 예언자들을 죽였고, 너희는 무덤을 만들어서 예언자들의 죽였던 조상들의 행위를 완성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이들의 행위는 예언자들을 죽인 조상들의 행위와 동일하다고 비난을 하십니다.

“아벨의 피부터, 제단과 성소 사이에서 죽어 간 즈카르야의 피”의 의미는 희브리말 성경에서는 처음과 마지막의 살인(창세 4, 8-10; 2역대 24, 20-22)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 둘은 성경의 역사에 나오는 모든 범죄행위를 의미한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세상 창조 이래 쏟아진 모든 예언자의 피에 대한 책임'이라는 말은 세상이 창조된 처음부터 세상의 마지막 때까지 모든 예언자들의 살해에 대한 책임이라는 뜻입니다. '피'는 죽음을 의미 합니다. 여기서 '이 세대' 라는 말은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을 두고 하신 말씀일 것입니다. 이러한 예언자들의 살해에 지금의 유대인들 역시 동조하고 있기에 그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세대는 그 때 당시의 유대인들 뿐만 아니라 지금의 우리에게까지 연장해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말은 하느님께서는 지금도 우리의 회개를 기다리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기다림의 기간은 언제까지인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 기다림의  기간 안에 우리가 회개하지 않으면 앞서간 조상들이 저지른 그 죄에  상응하는 책임을 물으시고 처벌하실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그 벌은 회개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이 스스로 책임을 져야하는 벌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던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에 대한 독한 앙심을 품고서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릴까를 궁리하면서 예수님께 많은 질문을 퍼 붓습니다. 앞의 6장 7절에서는 예수님의 행동에서 고발할 구실을 찾으려고 했지만, 여기서는 '예수 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고발할 구실을 찾으려고 하는 것이 다를 뿐입니다.
참으로 집요한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자신의 들보를 보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의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임을 솔직히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불행선언’이 바로 나에게 적용되는 선언인 것입니다.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면서 우리와 우리 가족들 모두가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 안에서 불행과 행복의 기로에 서서, 예수님 안에서 참 행복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처음 찾아오는 사람을 밝고 기쁘게 맞아 주시는 수녀님의 겸손함으로 행복을 느꼈듯이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이 나를 통해서 주님을 발견하는 하루 되시도록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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