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말씀 묵상

희망이 시작 - 마태오 사도 축일에(마태 9,9-13) - 1098

Author
kchung6767
Date
2017-09-20 07:12
Views
1357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1098

2017년 9월 21일 목요일

마태오 사도 축일에(마태 9,9-13)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13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 사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마태 9, 12-13)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초대와 응답의 연속인 삶입니다. 달리 표현하면, 부르심에 대한 응답입니다. 인간사에도 이러한 부름과 응답은  수없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하느님 안에서의 부르심과 응답과  세상 안에서의 부름과 응답의 큰 차이는 사랑과 이해의 차이입니다. 인격적인 부름과 응답이며 도구적인 부름과 응답의 차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나를 따라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당신을 따르기 위해서 우리는 떠나야합니다.  떠남을 위해서 포기해야 하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하느님을 따르기 위해서 포기하는 모든 것들은 우리가 하느님께 바치는 참 제물이 될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 오시는 예수님을 바라 보면서 생각합니다. 내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가장 먼저 포기하거나 내려 놓아야 하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찾아야 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기 위해서 내가 포기해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의탁입니다. 

우상이란 하느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참으로 많은 우상을 만들고 그 우상의 노예로 살아갑니다. 우상은 인간이 만들어서 자신보다 못한 존재 임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자신이 만든 이 우상에게 자신을 의탁합니다. 그 우상이 우리의 눈을 흐리게 합니다. 하느님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만듭니다. 

오늘 마태오 복음사가의 축일입니다. 마태오 복음사가를 주보성인으로 삼고계시는 여러분 모두에게 축하의 인사를 전하고자 합니다. 

마태오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길을 지나가시던 예수님께서 보시고 “나를 따라라.”하시는 한 마디에 예수님을 따랐다고 합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도대체 예수님으로부터 어떠한 매력을 발견했기에 마태오는 자신을 따라라는 예수님의 한 마디에 자신의 기득권 모두를 포기하고 예수님을 따랐을까요?

여기서 마태오라는 사람은 마르코 복음 2장 14절에서 알패오의 아들 레위라고 하기도 하고  루카복음 5, 27절에서는  그냥  레위’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들이 동일인물이고 열 두 사도 중의 한 사람이라고는 하지만 이러한 사실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을 따르라고 하시는 모습을 보면, 처음의 당신의 제자들을 부르실 때도 이 표현을 사용하고  16장 24절을 보면 당신을 따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에 대해서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 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고 말합니다. 자기를 버리는 것이 바로 자신의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여기서 ‘따른다’는 말 속에는 예수님 때문에 자신을 기꺼이 버리겠다는 굳은 결의가 내포되어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마태오는 예수님의 첫 번째 제자들과 같이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예수님을 따랐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에는 세금을 거두어 들이는 일은 ‘징세 청부인’들이  했다고 합니다. 이들은 로마 정부로부터 특정구역을 할당 받아서 세금을 거두어 들이는 권한을 사들인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정부에 내는 세금보다 더 많은 세금을 거두어서 그 차액을 자신들의 소득으로 삼았습니다.

이 징세 청부인은 자기 밑에 세관장을 두고 세관장은 그 밑에 통행세나 관세나 다른 여러 세금들을 담당하는 세리들을 거느렸습니다. 마태오는 세관장 밑에 있던 세리였던 것으로 추정합니다. 당시에는 징세청부인이나 세관장 그리고 하급 세리 모두가 욕심이 많았던 것으로 유명했고 가난한 사람들을 심하게 괴롭혔기 때문에 이들을 도둑이나 사기꾼 취급을 했고 그래서 ‘세리’라는 말은 ‘죄인’이라는 뜻을 갖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누구의 집에서 식사를 하였는지에 대해서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루카복음 5장 29절을 보면, 레위(마태오)가 자기 집에서 예수님을 초대하고 ‘큰 잔치’를 베푸는 것으로 보도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집은 예수님의 집으로도 착각할 수 있지만 마태오의 집으로 생각하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호세 6, 6)의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당신께서 하시는 일이 율법학자나 바리사이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마음대로 하시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 근거한 것임을 말씀하시면서 이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공부하면 당신께서 하시는 일의 깊은 의미를 깨닫게 된다는 것을 알려주십니다.

오늘 복음은 따름과 회개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게 합니다. 마태오의 따름은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있었기에 주님의 초대에 모든 것을 버리고 응답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리사이나 율법학자들은 스스로 의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예수님을 따르기 보다는  예수님을 거부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보시고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하시는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스스로 죄인이라고 인정하는 사람은 구원을 받지만 스스로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구원받지 못함을 알 수가 있습니다.

스스로가 환자임을 아는 사람은 당연히 병을 고치기 위해서 의사를 찾아갈 것입니다. 한 걸은 더 나아가 중병을 앓고 있으면 있을수록 더 많은 병원비를 지불할 준비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중한 병에 걸려 있는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마태오는 자신이 참으로 큰 죄를 짓고 살아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동시에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 분께는 영원한 생명이 있슴을 알기에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따라 나설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면서도 세상적인 것에 대한 집착 때문에 만사에서 하느님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너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는 삶을 살아라.” 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을 찾는 마음이 간절하면 간절할 수록 세상에 숨겨진 하느님이 나와 동행하는 하느님으로 다가오게 될 것입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마태오가 ‘나를 따라라’하고 부르시는 자신의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예수님의 초대에 응답한 것처럼  나 역시 주님의 부르심에 주저하지 않고 응답하는 삶을 살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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