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말씀 묵상

희망의 시작 - 불행의 원인 (루카 11, 47 - 54) - 1122

Author
kchung6767
Date
2017-10-17 20:15
Views
1847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1122

2017년 10월 19일 목요일

불행의 원인 (루카 11, 47 - 54)

“너희는 불행하여라! 바로 너희 조상들이 죽인 예언자들의 무덤을 너희가 만들기 때 문이다.이렇게 너희 조상들은 예언자들을 죽이고 너희는 그들의 무덤을 만들고 있으니, 조상들이 저지른 소행을 너희가 증언하고 또 동조하는 것이다.”(루카 11, 47 - 48)

믿음은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하지만 그 믿음을 하느님 안에서 성장지켜 나가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하지만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하느님께서 주신 믿음의 씨앗을 우리가 노력해서 얻을 수 있다는 착각을 하게 됩니다. 믿음의 출발점은 하느님의 은총이고 그 은총 안에서 성장 발전되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교만은 하느님의 은총으로 주어진 믿음과 이 믿음을 통해서 드러나야 하는 하느님의 영광이 부정되고 자신의 노력으로 얻어지고 발전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참 믿음과 거짓 믿음의 차이는 바로 그 믿음의 중심에 하느님의 존재 유무에 있슴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행복선언과 불행선언을 묵상해 봅니다. 행복선언의 첫 부분은 가난한 사람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라고 말씀하실 때 이 ‘가난’의 의미는 ‘외부의 도움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삶’을 말합니다. 따라서 달리 표현하면 ‘하느님께 전적으로 의탁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하느님이 주인이 되시는 삶을,  하느님께 전적으로 의탁하며 사는 삶을 산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압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교만’은 ‘가난’의 반대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교만’은 자신을 채우는 것을 말합니다. 하느님과 관계없이 자신의 노력으로 믿음을 성장 발전 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드러나는 믿음입니다. 자신이 목적이 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스스로를 내세우는 삶입니다. 자신을 내세우기에 가면이 필요한 삶입니다. 속과 겉이 다릅니다. 이러한 삶을 살아가는 삶들을 두고서 예수님께서는 ‘불행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들이  불행한 이유는 이러한 삶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 조상들은 예언자들을 죽이고 너희는 그들의 무덤을 만들고 있으니' 라는 말은 '너희의 조상들은 예언자들을 죽였고, 너희는 무덤을 만들어서 예언자들의 죽였던 조상들의 행위를 완성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이들의 행위는 예언자들을 죽인 조상들의 행위와 동일하다고 비난을 하십니다.

“아벨의 피부터, 제단과 성소 사이에서 죽어 간 즈카르야의 피”의 의미는 희브리말 성경에서는 처음과 마지막의 살인(창세 4, 8-10; 2역대 24, 20-22)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 둘은 성경의 역사에 나오는 모든 범죄행위를 의미한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세상 창조 이래 쏟아진 모든 예언자의 피에 대한 책임'이라는 말은 세상이 창조된 처음부터 세상의 마지막 때까지 모든 예언자들의 살해에 대한 책임이라는 뜻입니다. 

'피'는 죽음을 의미 합니다. 여기서 '이 세대' 라는 말은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을 두고 하신 말씀일 것입니다. 이러한 예언자들의 살해에 지금의 유대인들 역시 동조하고 있기에 그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세대는 그 때 당시의 유대인들 뿐만 아니라 지금의 우리에게까지 연장해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말은 하느님께서는 지금도 우리의 회개를 기다리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기다림의 기간은 언제까지인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 기다림의  기간 안에 우리가 회개하지 않으면 앞서간 조상들이 저지른 그 죄에  상응하는 책임을 물으시고 처벌하실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그 벌은 회개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이 스스로 책임을 져야하는 벌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던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에 대한 독한 앙심을 품고서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릴까를 궁리하면서 예수님께 많은 질문을 퍼 붓습니다. 앞의 6장 7절에서는 예수님의 행동에서 고발할 구실을 찾으려고 했지만, 여기서는 '예수 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고발할 구실을 찾으려고 하는 것이 다를 뿐입니다.

참으로 집요한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자신의 들보를 보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의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임을 솔직히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불행선언’이 바로 나에게 적용되는 선언인 것입니다.

불행과 행복의 기로에 서서, 오늘 하루도 예수님 안에서 참 행복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 처음 찾아오는 사람들을 밝고 기쁘게 맞는 겸손 함으로 이웃에게 행복을 전하는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이 나를 통해서 주님을 발견하는 하루이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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