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말씀 묵상

희망의 시작 - 은혜와 자비에 대해서(요한 6, 22-29) - 1275

Author
kchung6767
Date
2018-04-15 05:57
Views
1240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1275

2018년 4월 16일 월요일

은혜와 자비에 대해서(요한 6, 22-29)

“그의 얼굴은 천사의 얼굴처럼 보였다.”(사도 6, 15)

2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27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요한 6, 26-27)

문득 은혜와 자비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게 되었습니다. 보통 때는 그냥 구별함이 없이 사용하다가 갑자기 의미의 차이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냥 이런 결론을 내려봅니다.

자비란 내가 잘못한 것을 용서해 주는 것이라고 한다면 은혜는 그냥 무상으로 받는 것을 말할 것입니다.  벌금을 탕감 받는 것을 자비하고 한다면 탕감을 받은 것에 덧붙여서 받는 것을 은혜라고 말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예수님께서 오천명을 먹이시는 그러한 기적은 하느님의 은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영원한 생명을 주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고 말씀하십니다. 참 행복의 삶도 바로 예수님의 이러한 말씀과 연관이 있슴을 깨닫게 됩니다. 감사와 행복은 함께 가는 단어입니다. 하느님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삶은 항상 기뻐하고 끊임없이 기도하고 모든 것에 감사하는 삶(테살 전 5, 16-18)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이라고 말합니다. 

"하느님의 일을 하려면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묻는 군중들의 질문에서 ‘하느님의 일’이라고 단수로 번역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원성경을 보면 그리스어로는 복수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일들’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맞는 번역입니다.  

‘하느님의 일들’을 할 수는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들을 우리가 어떻게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하느님께서 좋아하시는 일을 하려면 저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라고 질문을 바꾸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은 ‘하느님의 일’이라는 단수로 대답하십니다.  즉 예수님의 대답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란 한가지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 한 가지가 바로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을 우리가 믿는 것”입니다. 

저에게 이렇게 질문을 하게 합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하느님께서 좋아하시는 일인가?” 그리고 “나는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 즉 예수님을 믿고 있는가?”

당연히 예수님을 믿는다고 대답을 합니다. 하지만 ‘믿는다’는 이 말씀에는 예수님을 전적으로 받아들인다는 의미와 그분의 삶을 따라 살겠다는 다짐까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살아가시는 그 모습으로 살아가는 삶, 예수님이 나의 삶의 주인이 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의 삶의 주인이 예수님이신가? 하는 질문에는 여전히 ‘아직은’ 하고 대답하게 됩니다. 

이 말씀의 연장 선상에서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요한 6, 27)는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입니다. 숨겨진 의미는 바로 당신 자신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양식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당신 자신이 우리가 미사를 통해서 모시는 성체임을 말씀하십니다. 이 성체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는 양식인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이분을 따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평신도로서 최초로 순교하신 분이십니다. 스테파노입니다. 은총과 능력이 충만했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어떠한 사람도 그가 전하는 복음 안에서 드러나는 지혜와 성령에 대항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스테파노를 고발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악함이 드러났다면 스테파노의 얼굴에서는 천사의 모습이 드러납니다. 스테파노를 고발하는 사람들에게 동조하는 사람들이 천사의 모습을 스테파노의 얼굴에서 발견하는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나의 모습 안에서 천사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나를 통해서 천사의 얼굴을 발견하는 삶을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그러한 삶의 조건은 바로 그분 안에서 머물고 그분과 함께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나에게 힘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필립 4, 13).는 말씀을 간직하면서 자비와 은혜를 실천하는 삶을 살고자 다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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