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강론

희망의 시작 - 연중 제27주간 - 네편 내편을 극복하는 사랑 (루카 17, 5 -10)

Author
kchung6767
Date
2019-10-04 02:00
Vi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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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시작 - 연중 제27주간 

2019년 10월 6일 일요일

네편 내편을 극복하는 사랑 (루카 17, 5 -10)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하고 말하여라.”(루카 17, 10)

선물을 받는다는 것은 참으로 기분 좋은 일입니다. 좋은 선물은 선물 그 자체보다 선물을 주는 사람의 마음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좋은 선물도 받는 사람이 어떠한 마음으로 받는 가에 따라서 달라질 것입니다. 선물을 주고 받음에 있어서도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사이에 신뢰가 있어야 합니다. 

작금의 우리 사회는 옳고 그름이 아닌 내편 네편의 극단적인 진영의 논리로 나누어져 있는 극단적인 집단적인 불신의 사회가 되어 있슴을 보게 됩니다.  틀려도 자신들의 편이면 무조건 옳다고 합니다. 이러한 극단적인 분열의 모습을 보면서 참으로 가슴이 아픕니다. 

남과 북으로 두 동강이 나 있는 나라, 이제는 국민들 사이에 내편 네편으로 두동강이 나 있는 나라, 이러한 분열을 조장해서  가장 이익을 보는 사람은 누구인가 하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용서는 없고 단죄만 있는 나라가 다시 화해와 사랑으로 하나되는  나라가 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할 지 모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너에게 있어서 하느님은 어떠한 존재인가?’ 하고 질문하십니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하느님께  있어서 나는? 하고 질문해 보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나를 당신의 희망이라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기뻐하고 기도하며 모든 것에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바로 당신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뜻이 당신의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 있어서 나는 바로 당신께서 나를 위해서 당신의 외아들의 생명까지 내어 주셨던 분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나를 위해서 당신의 외아들을 이 땅에 보내셔서 십자가에 달려서 죽게까지 하셨습니다.  그만큼 나는 하느님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고 생명을 내어 놓아도 아깝지 않은 존재입니다. 그런데 나에게 있어서 하느님은 필요할 때만 찾는 존재입니다.

헌금 함에 자신의 생활비를 내어놓는 가난한 과부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그 과부에게 있어서 하느님은 바로 자신의 생명까지도 내어 놓을 수 있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부자들은 비록 큰 액수의 돈을 헌금 함에 내어 놓지만 가난한 과부처럼 그 돈이 자신의 생활비가 아닌 여유 돈입니다. 하느님 보시기에는 돈의 액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하느님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어떠한 일을 하든 정당한 댓가를 받아야 하고 또한 지불해야 하는 의무를 갖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자신의 처지에서 노동한 댓가를 합당하게 받았으면 그만이지 그 이상의 것을 요구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에서 언급하고 있지만 고용주는 자신이 고용하고 있는 노동자에게 정당한 임금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두 당사자가 한 쪽이라도 그 약속을 어긴다면 갈등이 일어 남은 너무나 당연할 것입니다. 너무나 당연한 일이 한 쪽의 이기적인 욕심이나 쌍방의 이기적인 욕심에 의해서 깨어짐으로 인해서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신뢰는 모든 문제의 해결책입니다. 이 신뢰의 기초는 하느님이어야 합니다. 말씀에 기초해야 합니다. 상황에 따라서 변하지 않는 신뢰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외의 어떤한 것도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진인사대천명 [盡人事待天命]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인즉슨,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을 다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는 뜻” 입니다. 종이  최선을 다해서 일을 하고 난 뒤에 자신은 해야 할 일을 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분의 것은 자신의 뜻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인의 뜻에 있는 것입니다. 바로 진인사대천명 [盡人事待天命] 입니다. 주인의 뜻에 자신을 맡기는 삶이 바로 우리의 삶이어야 할 것입니다.

다시 한번 하느님은 나에게 어떠한 존재인가? 하고 질문해 봅니다. 이에 대한 답을 하기 위해서 먼저 하느님의 사랑을 깊이 체험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우리에 대한 사랑 앞에서 나의 하느님에 대한 사랑은 참으로 미미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님 저는 쓸모없는 당신의 종입니다. 이러한 종에게 베풀어 주신 사랑에 참으로 감사합니다.  저는 해야 할 일을 했을 따름입니다.’ 하고 겸손하게 말할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새로운 한 주간을 시작하면서 우리와 우리 가족들 모두가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 안에서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며 자신을 평화의 도구로 써 달라고 청하며 실천하는 거룩한 한 주가  지내시도록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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