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강론

희망의 시작 - 연중 제 18주간 -하느님의 모상의 회복(요한 6,24-35)

Author
kchung6767
Date
2018-08-03 21:33
Views
1018

연중 제 18주간 

2018년 8월 5일 일요일

하느님의 모상의 회복(요한 6,24-35)

“내가 생명의 빵이다.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요한 6, 27)

믿기위해서 기적을 요구하는 사람들과 믿음을 통해서 기적을 체험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믿기 위해서 기적을 요구하는 사람들은 믿음 생활을 하면서 조금의 위기만와도 더 큰 기적을 요구합니다. 마약에 중독되는 것처럼 기적 중독증에 걸리게 됩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상상외로 많음을 우리 신앙인들 사이에서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이들의 이러한 신앙을 우리는 기복신앙이라고 합니다. 조건적인 신앙입니다. 기적을 찾아서 이곳 저곳을 떠돌아 다니는 사람들입니다. 시편 131편에 나오는 젖을 못뗀아이가 엄마 품에 안겨 있는 것과 같은 모습입니다. 하지만 믿음으로서 기적을 체험하는 사람들은 위에서 언급한 사람들과는 너무나 다른 신앙생활을 합니다. 자기가 딛고 있는 삶의 현장에서 믿음으로 기적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사랑으로 기적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언제나 감사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젖을 뗀 아이가 엄마 품에 안겨 있는 것과 같은 모습입니다.

공관복음서와 요한복음서와의 큰 차이는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이 메시아 이심을 드러내지 않으실려고 하시는 것과 공개적으로 드러내심과의 차이가 있습니다. 이러한 차이가 빵의 기적을 통해서도 드러납니다. 공관복음서에서는 빵의 기적을 굶주리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예수님의 애틋한 마음으로 행하신 기적으로 보도하고 있다면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을 ‘생명의 빵’으로 의도적으로 기적을 통해서 계시하시고있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일을 하려면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묻는 군중들의 질문에서 ‘하느님의 일’이라고 단수로 번역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원성경을 보면 그리스어로는 복수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일들’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맞는 번역입니다.  

‘하느님의 일들’을 할 수는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들을 우리가 어떻게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하느님께서 좋아하시는 일을 하려면 저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라고 질문을 바꾸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은 ‘하느님의 일’이라는 단수로 대답하십니다.  즉 예수님의 대답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란 한가지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 한 가지가 바로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을 우리가 믿는 것”입니다. 

저에게 이렇게 질문을 하게 합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하느님께서 좋아하시는 일인가?” 그리고 “나는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 즉 예수님을 믿고 있는가?”

당연히 예수님을 믿는다고 대답을 합니다. 하지만 ‘믿는다’는 이 말씀에는 예수님을 전적으로 받아들인다는 의미와 그분의 삶을 따라 살겠다는 다짐까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살아가시는 그 모습으로 살아가는 삶, 예수님이 나의 삶의 주인이 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의 삶의 주인이 예수님이신가? 하는 질문에는 여전히 ‘아직은’ 하고 대답하게 됩니다.  

이 말씀의 연장선 상에서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요한 6, 27)”는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입니다. 숨겨진 의미는 바로 당신자신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양식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당신 자신이 우리가 미사를 통해서 모시는 성체임을 말씀하십니다. 이 성체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는 양식인 것입니다.

예수님께 표징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이미 예수님께서 오천명을 먹이시는 기적을 행하셨슴에도 불구하고 또 기적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조상들이 먹었던 만나와 같은 증거를 요구합니다. 모세는 하느님께 청해서 하느님께서 만나를 내려주었지만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이 바로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고  바로 생명을 주는 빵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구약 당시에는 배고픔과 목마름에서의 해방이 구원을 의미했습니다. 따라서 오늘 예수님의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요한 6, 35) 고 하시는 말씀은 당신이 바로 구원자이심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새 인간을 입고서 하느님의 영원한 생명의 나라로 들어간 스테파노는  최초로 순교하신 분이십니다. 은총과 능력이 충만했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어떠한 사람도 그가 전하는 복음안에서 드러나는 지혜와 성령에 대항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스테파노를 고발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옛 인간의 모습이 드러난다면 스테파노의 얼굴에서는 원래의 인간의 모습 즉 하느님의 모상이 드러납니다. 스테파노를 고발하는 사람들에게 동조하는 사람들이 새 인간의 모습을 스테파노의 얼굴에서 발견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한 주간을 시작하면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나의 모습 안에서 새 인간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나를 통해서 새 인간의 얼굴을 발견하는 삶을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그러한 삶의 조건은 바로 그분 안에서 머물고 그분과 함께 살아가야 합니다. 

“나에게 힘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필립 4,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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