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시작 -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삶의 지침(마르 6, 7-13)

Author
kchung6767
Date
2018-07-14 11:44
Views
321

연중 제 15주간 미사


2018년 7월 15일 일요일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삶의 지침(마르 6, 7-13)


“어디에서나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그 고장을 떠날 때까지 그 집에 머물러라. 11 또한 어느 곳이든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고 너희 말도 듣지 않으면, 그곳을 떠날 때에 그들에게 보이는 증거로 너희 발 밑의 먼지를 털어 버려라.”(마르 6, 10-11)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과 여러곳을 다니시면서 병자들을 치유해 주시고 가르치시기도 하셨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을 부르셔서 이들에게 선교활동에 필요한 권한을 주시고 둘씩 파견을 하십니다. 그러시면서 당신의 제자들이 삶의 현장에서 어떠한 삶의 태도를 갖고서 살아야하는 가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니다. 기본적으로 당신의 제자들은 이미 오랫동안 예수님과 함께 생활을 많은 것을 배웠을 것입니다. 이제는 직접 배움을 실천하도록 파견하시는 것입니다. 


먼저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을 부르십니다. ‘부르신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이들에 대한 확고한 리더쉽을 갖고 계심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들에게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십니다. 마태오복음 10장 1절과 루카복음 9장 1절에서는 악령을 쫓아내는 능력뿐만 아니라 병을 고 치는 능력도 주셨습니다. 그런데 마르코 복음에서는 생략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마르코는 당시에는 병이 죄의 결과라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악령을 쫓아내는 능력에 병을 고치는 능력까지 포함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런 권한과 능력을 제자들에게 주신 것은 당신께서 사람들에게 사랑과 자비를 베푸신 것처럼 제자들도 같은 사랑과 자비를 베풀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두 사람씩 짝으로 파견하십니다. 두 사람씩 함께 파견한다는 것은 당시의 유대 관습을 따른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유는 그들이 선포하는 말씀에 대해서 서로가 증인이 되어주고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동시에 둘씩 파견한다는 것은 ’관계성’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혼자서 사는 삶이 소유의 삶을 의미한다면 두 사람이 함께하는 삶은 사랑과 나눔의 삶인 존재로서의 삶을 살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은 죽고 상대를 배려하는 삶을 살아가야 함을 보여줍니다. 서로 개성이 다른 두 사람이 하나되는 모습을 이웃에게 보여주는 그 삶이 바로 하늘나라에서의 삶의 모습을 단편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이들에게 지팡이 이외에는 아무것도 갖고 가지 말라고 하십니다. 심지어 빵도 여행 보따리도 전대도 돈도 가져가지 말하고 하십니다. 그 이유는 ‘소유의 삶’은 불안과 두려움을 동반하지만 ‘비움의 삶’은 평화를 동반합니다. 어떠한 불안의 방해도 받지 않습니다. ‘비움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자신에게 의존하는 삶이 아닌 하느님께 의존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는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루카 복음에 의하면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는 사람들은 먼저 복음을 선포하기 전에 ‘평화’를 빌어주라고 하십니다. 평화란 무엇입니까? 두 사람이 하나되는 것이 평화입니다. 하느님과 함께하는 사람들의 특징이 평화라면 악과 함께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두려움과 불안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담과 이브는 아무런 두려움이 없는 낙원에서의 삶을 살고 있었지만 사탄의 유혹에 빠진 다음에 당신의 창조주에 대한 두려움에 휩싸입니다. ‘평화’를 빌어준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사명이며 동시에 그리스도인이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 가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어는 곳에서든 어떤 집에 머물게 되면 한 곳에서 떠날 때까지 머물라고 하십니다. 더 좋은 집을 찾아 다니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곳을 떠날 때 ‘신발의 먼지를 털어내는 것’은 이제는 어떠한 미련도 갖지 않는다는 것을 말합니다.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새로운 미래로 나아감을 말합니다. ‘단호함과 결단’입니다. 바로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과거와의 절연을 통해서 새롭게 거듭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위한 기본자세입니다.


복음의 핵심 단어들을 생각해 봅니다. ‘두 사람씩의 파견은 조화와 하나됨’을 의미한다면 이 조화와 하나됨이 바로 ‘평화’의 조건이 될 것입니다. 일시적이고 긴장 속의 고요함이 아닌 영원하고 기쁨과 즐거움 속의 자유함을 의미할 것입니다. 그리고 비움과 과거와 단절입니다. 새롭게 거듭남입니다. 


새로운 한 주간을 시작하면서 그리스도인으로 일상으로 파견 받는 우리의 삶에 대한 예수님의 지침을 명심하고자 합니다.  처음에는 어려울 수 있지만 사랑으로 이러한 한계를 넘어설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집니다.  주님 만을 바라보고 사랑하는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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