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시작 - 연중제 24주 - 구하는 생명과 잃는 생명(마르 8, 27-35)

Author
kchung6767
Date
2018-09-15 11:06
Views
344

연중 제 24주간 미사


2018년 9월 16일 일요일


구하는 생명과 잃는 생명(마르 8, 27-35)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와 복음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마르 8, 34-35)


하느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자신의 일을 하는 사람을 봅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을 위한 일이 하느님을 위한 일이라고 착각 하기도 합니다.  ‘안다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하느님을 위한 일과 자신을 위한 일을 분별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그 능력의 원천은 바로 자기의 목숨을 구하려고 하는가 아니면 하느님과 복음을 위해서 목숨을 내어 놓는 가의 차이일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보다는 세상적인 것들을 먼저 생각하고 고려하는 삶을 살고 있슴을  부끄럽게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본질 보다는 형식을 중요시하고 하느님의 눈 보다는 세상적인 눈을 더욱 의식하는 삶입니다.  이러한 삶을 살고 있기에 오늘 예수님의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는 질문이 가슴 깊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이 질문에서 ‘그러면’이라는 접속사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나를 그렇게 생각한다고 하더라도 너희는 그들과 다르게 생각하겠지 하는 예수님의 기대가 담긴 접속사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예수님의 기대가 저를 통해서 실망으로 바뀌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살아가면서 수 많은 사람을 만납니다. 그 수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어떤 사람은 그냥 좋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그냥 싫은 사람이 있습니다. 원래 사람들은 다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되었습니다. 그 존재 안에 하느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은 인간이 하느님의 모습만 간직하고 살아가게 하지 않습니다. 어둠으로 하느님의 모습을 가리고자 합니다. 이러한 세상의 유혹은 인간에게 하느님의 모습을 사라지게 합니다. 


내 마음 속의 하느님은 내가 만나는 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 하느님을 바라 보게 합니다. 세상적인 눈으로 인간을 차별하지 않게 합니다.  세상적인 잣대로 인간을 판단하지 않고 오로지 하느님의 사랑의 눈으로 인간을 바라보게 합니다.


흔히 우리는 인간의 죄는 미워하되 인간을 미워해서는 안된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의 유혹에 빠져서 덧 쒸워진 어둠은 미워해야 하지만 그 속에 현존하는 하느님은 미워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좋아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증오한다.”고 하는 간디의 말이 생각납니다. 당시에 그가 보기에 그리스도인의 삶이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너무나 달랐기 때문에 그렇게 말을 했을 것입니다. 간디가 가졌던 그리스도인에 대한 시각은 지금 우리가 보아도 너무나 당연한 듯이 받아들여집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슬픈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오늘 말씀은 믿음만 갖고서 실천하지 않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게 하는 심각한 도전입니다.


하느님의 양떼를 돌보아야 하는 사람은 억지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양 떼를 돌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돌보아야 합니다. 세상적인 이익을 위해서 부정한 방법을 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배하는 사람이 아닌 섬김의 모범으로서 리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 속에 자리하고 있는 하느님의 모습이 드러나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길을 가시면서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마르 8,27). 하는 예수님의 질문을 묵상해 봅니다. 


예수님께서 이러한 질문을 하시는 의도가 무엇이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다시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십니다.


스스로 물어봅니다. “너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나와는 먼 질문에서 이제 나에게로 강력하게 다가오는 질문입니다. 예수님의 도전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나에게 질문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너무나 선명합니다. 소름이 끼칠 정도 입니다. 하지만 이 질문에 답하지 않으면 나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매 순간 세상의 유혹이 나의 하느님을 지워갈 때마다 나에게 이러한 질문을 해야 합니다. 너의 정체성은 무엇이냐?


예수님의 이러한 질문이 바로 세상을 살아가면서 세상적인 관점에서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삶의 순서를 왜곡하지 않고 오로지 하느님 만이 나의 삶의 주인이 되시는 삶을 살게하는 큰 힘이 됩니다.


왜 베드로의 대답에 예수님께서 행복하다고 하십니까? 하느님께서 알려주심을 베드로가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믿음 위에 예수님께서는 교회를 세우십니다. 바로 그 위에 기초한 믿음이 아닌 하느님의 말씀에 기초한 믿음인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은 삶이 동반된 믿음인 것입니다.


새로운 한 주간을 시작하면서 ‘당신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대답하는 베드로의 이 대답이 나의 대답이 되었으면 합니다. 동시에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나를 포기해야 하는 일을 기쁘게 받아 들이는 삶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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