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강론

희망의 시작 - 부활 대축일 강론(요한 20, 1-9)

Author
kchung6767
Date
2019-04-20 14:37
Views
1470

부활 대축일 강론

2019년 4월 21일 일요일

부활 신앙으로 살아가는 삶(요한 20, 1-9)

“우리는 압니다. 우리의 옛 인간이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써 죄의 지배를 받는 몸이 소멸하여, 우리가 더 이상 죄의 종노릇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로마 6, 6)

주님의 부활을 축하합니다. 예수님의 부활 대축일을 맞으며 우리는 ‘부활을 축하합니다.” 하고 인사를 합니다. 모든 축하의 인사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부활을 축하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 이유는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서 끝인 줄 알았던 죽음이 이제는 새로운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부활은 육의 삶을 살던 사람이 영의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세상의 노예로 살아가던 사람이 세상으로부터 자유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죽음에서 부활로 나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하느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자신을 버리고 하느님을 받아들이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당연히 고통과 시련을 감당해야 합니다. 

19세기 최고의 시인 롱펠로는, 부인을 둘씩이나 사별하는 불운 속에서도, 아름답고 고귀한 글들을 수없이 남겼다고 합니다. 그의 나이 75세 되던해 어느 날, 한 신문의 기자가 찾아와 “선생은 많은 슬픔과 고통을 겪으며 살아오셨는데, 그 어려움 속에서 어떻게 그리도 주옥같은 글들을 그렇게 많이 쓰실 수가  있으셨습니까?" 하고 물으니, 그는 앞마당에 있는 고목이 되어버린 사과나무를 가리키며 “저 나무가 나의 스승입니다. 죽은 듯 보이는 저 나무에서는, 해마다 새가지가 나와 꽃도 피고 열매도 맺습니다. 죽은 십자가 나무에서 부활의 꽃이 피었듯이, 나의 고통은 나에게 새로운 꽃과 열매를 주었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죽은 십자가나무에서 부활의 꽃이 피듯, 깨어진 알에서 날개 달린 새가 나오듯, 부활은 우리에게 자신을 바치고 죽게 하는 아픔을 요구합니다.     

비참한 처지의 한 노예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착한 새 주인이 그를 자유인으로 풀어주었습니다. 더구나 큰배에 재물을 가득 실어주었고 또 원하는 곳 어디든지 그곳에 정착해 살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그는 감사했고 부푼 꿈을 안고 항해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는 항해 도중에 폭풍우를 만났습니다. 배는 침몰했고 그는 목숨만을 겨우 건질 수 있었습니다. 한 낯선 섬에 간신히 도착한 그는 잠시 주인을 원망했습니다.

주인이 자기에게 「자유」를 주지 않았더라면 이런 고통은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습니다. 그런데 그곳 섬나라 사람들은 이 사람을 보자 곧 그를 자기들의 왕으로 모셨습니다. 그것은 「바다에서 표류해 온 사람을 무조건 1년간 왕으로 섬기고, 그 후에는 아무 것도 없는 항무지 섬으로 쫓아버리라」는 그들의 법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어쨌든 왕이 된 그는 참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결코 어리석지 않았던 그는 자기가 지금 누리는 부귀영화에 집착하여 그것에 푹 빠져 살기보다는, 1년 후의 일을 생각하며 그 준비를 하는 데에 소홀하지를 않았습니다. 그는 시간을 내어 자주 황무지 섬을 찾아가, 그곳에 거처를 만들고 논밭을 일구고 여러 과일나무를 심고 꽃밭을 가꾸었습니다. 또 샘물도 팠습니다. 1년이 지났습니다.

그는 다시금 법에 따라 그 황무지 섬으로 가게 되었으나, 그곳은 이미 모든 것이 다 잘 준비가 된 상태인지라 그곳에서 여생을 행복하게 보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왕으로 살 때, 부귀영화에 미혹 당해 자신의 처지를 망각하는 우를 범하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다 버리고 떠나야 할 그 섬의 물질적 풍요와 명예와 영광에 욕심을 부리지 않았습니다.

이 노예를 자유인으로 풀어준 주인이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그가 왕으로 1년간 산 섬이,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상입니다. 그가 미리 준비한 또 다른 섬 그곳이 바로 천국입니다. 우리는 원죄로 인해 죄의 노예가 되어 죽을 수 밖에 없었던 불행한 처지에서, 예수님의 십자가상 죽음과 부활로 구원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이 우리가 영원히 머무를 곳은 아닙니다. 이 세상은 잠시 거쳐 지나가는 곳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과 함께「죄에 대해 죽고 새 사람으로 부활한」 우리들은 천상 것들을 마음에 품고 살아야 합니다. 이 세상을 성실히 살되 세상 물질과 명예/권력의 노예가 되어 결국 부활의 기쁨을 잃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 사건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부활신앙을 갖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부활 신앙은 부활 사건을 이해하게 하지만 부활 사건에 집착하는 사람은 이 사건을 통해서 신앙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부활을 믿는 그 신앙이 이성에 의지하며 진실을 못 찾고 헤매는 사람에게 진실을 깨닫게 합니다. 주님의 부활이 참 기쁨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면 우리는 부활신앙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부활을 이성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이러한 기쁨이 없습니다.

우리가 왜 주님의 부활을 기뻐하고 축하합니까?  죽음의 공포에서 해방되었기 때문입니다. 죄로부터 해방되었기 때문입니다. 패배자인 것처럼 보였던 분이 참된 승리자가 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승리는 그분 만의 것이 아닌 바로 우리 모두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부활의 기쁨을 여러분 모두와 함께 나눕니다. 죄의 종으로부터 해방된 이날 축하를 드립니다. 이 순간 이러한 기쁨을 함께하지 못하는 여러분들께도 주님의 은총과 사랑이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죄로부터 해방된 이날 구원의 기쁨을 마음껏 만끽하는 하루 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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