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강론

희망의 시작 - 부활 제 4주간 - 성소주일 (요한 10, 22-30)

Author
kchung6767
Date
2019-05-11 17:05
Views
1098

부활 제 4 주간  미사

2019년 5월 12일 일요일

성소주일 (요한 10, 22-30)

“나는 내 양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라옵니다"(요한 10,27) 

오늘은 교회에서 성소주일로 지내고 있습니다.   다양한 성소가 있지만 오늘은 특별히 성직 성소와 수도 성소에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 즉 신학생들과 성직자와 수도자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날입니다.

베르나르도 성인은 당신 방에 「베르나르도야, 너 여기 무엇하러 왔느냐?」라는 글귀를 써놓고, 항상 묵상을 하셨다고 합니다. 부르심에 응답하여 걷기 시작한 「하느님의 길」을, 제대로 잘 걷고 있는지?「하느님의 사람」으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의 모습에 맞갖은 삶을 제대로 살고 있는지?를 늘 염두에 두고 사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나는 착한 목자다.’(11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착한 목자란 ‘양’들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내 놓습니다.  그리고 ‘양’들은 주인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양들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내어 놓을 수 있는 목자는 바로 주님께서 함께하심을 믿고 살아가는 목자들입니다.  

이들이 양들을 돌보는 것은 바로 자신을 위함이 아니고 하느님을 위한 일이기 때문에 두려움도 자신을 위해서 유보시켜놓는 어떠한 것도 없습니다. 양들 역시 주님 안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이기에 목자의 마음음 잘 알수가 있는 것입니다. 

‘목소리를 알아듣는다’는 말의 의미는 양들과 목자들의 관심이 동일함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목자들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알아듣고, 그 가르침을 실천하는 목자들을  말합니다. 바로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는 말씀인 것처럼 양과 목자의 관계도 하나임을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주석성경의 요한복음 10장 15절의 설명을 보면, 성경의 전통에서 사람들끼리 서로 안다는 것에는 사랑도 포함된다고 합니다. 예수님과 그분을 믿는 이들을 한데 묶는 ‘앎’은, 성자와 성부를 한데 묶는 사랑에서 비롯되고 또 그 사랑으로 충만해진다고 합니다.  십자가 위의 죽음이 이 사랑을 드러내는 지고의 표현이라고 합니다(13, 1; 15, 13). 

따라서 ‘나는 그들을 알고’라는 말은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양들인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와  깊은 일치의 관계를 맺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동시에 사랑은 상호적인 것이기에 우리 역시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과 일치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일치하기 위해서는 바로 회개의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이를 통해서 죄를 용서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된다(사도 2, 38) 고 말합니다. 

소크라테스가 억울하게 죽게 되었을 때 ‘악법도 법이다.’라고  한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악법에 의해서 그가 처형되기 위해서 처형장으로 끌려나갈 때에 제자들이 따라가면서. ‘선생님께서 무슨 죄가있어서 이렇게 죽으십니까? 너무나 억울하고 분합니다.”하고 말합니다.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빙긋이 웃으면서 “너희들은 그러면 내가 꼭 죄가 있어서 죽어야겠느냐?”하고 말합니다. 

참으로 깊이 생각하게 하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죄가 있어서 죽는 것이 아니라 억울하게 죽어가는 삶이 우리의 삶이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억울하게 죽는다는 것은 내가 자발적으로 그 죽음을 선택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선을 행하다가 고통을 받는 것(1베드 2, 20)을 말합니다. 

믿음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은 자신의 십자가를 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자발적으로 고난을 선택할 때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허락하시고 영원히 멸망하지 않게하시고 동시에 아무도 당신의 손에서 빼앗아가지 못하게 하십니다.(요한 10, 28).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의 길을 가시면서 이러한 모범을 따르라고 우리에게 모범을 보여주십니다. 그 모범은  바로 베드로 사도의 말씀을 통해서 잘 알 수가 있습니다. 

”그는 죄를 저지르지도 않았고, 그의 입에는 아무런 거짓도 없었다. 그분께서는 모욕을 당하시면서도 모욕으로 갚지 않으시고 고통을 당하시면서도 위협하지 않으시고, 의롭게 심판하시는 분께 당신 자신을 맡기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죄를 당신의 몸에 친히 지시고 십자 나무에 달리시어, 죄에서는 죽은 우리가 의로움을 위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 그분의 상처로 여러분은 병이 나았습니다.”(1베드 2, 22-24)

이 말씀을 들으면서 깨닫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당하시는 모습을 보면, 아무런  죄를 저지르지 않았지만 어떠한 변명도 없이 고난을 당하십니다. 오로지 당신을 의롭게 심판하시는 분께 자신을 맡기십니다. 

오늘의 나는 참으로 부족하고 보잘 것 없는 존재이지만 나의 미래를 보시는 하느님께서는 지금의 나를 판단하시지 않으십니다. 나약한 저희들에게는 불가능한 삶인 것처럼 보이지만 성령께서 이러한 삶을 살아가도록 우리를 이끌어 주신다는 확신을 갖습니다. 동시에 말씀이 우리에게 이러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허락해 주심을 믿습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목자와 양으로서 살아간다고 하는 것은 내가 내 자신을 되돌아 보면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이러한 삶을 살 수 있는 능력을 주신다는 확신을 갖고서 사는 것임을 압니다. 특별히 성소주일을 지내면서 모든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살아 가는 모든 분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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