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강론

희망의 시작 - 연중 제 22 주간 - 참된용기 (루카 14, 1, 7-14)

Author
kchung6767
Date
2019-08-31 10:07
Views
1530
연중 제 22 주간

2019년 9월 1일 일요일

참된 용기(루카 14, 1. 7-14)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루카 14, 11)

참으로 용기가 있다는 것은 소유하기 보다는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이고 스스로 낮아짐을 선택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갖는 참 용기의 원천은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현재 내가 대면하고 있는 고통과 시련 속에서도 그 너머에 있는 하느님의 사랑을 볼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참된 용기를 갖고 살아가는 삶이 어떠한 삶인 가를 구체적으로 알려 주십니다. 

오늘 복음의 전 부분에서, 안식일에 수종병 환자를 고쳐주시면서 안식일에 대한 새로운 가르침을 주셨던 예수님께서 오늘은 당신의 제자로서 살아가기를 원하면 스스로 낮추는 삶을 살아야 함을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겸손하게 살아간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요즈음 같이 사람들이 저마다 스스로 올라가기를 원하는 사회적인 분위기 안에서 스스로 낮아진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인 것입니다.

'겸손' 이라는 말은 라틴어로 ‘후밀리따스’(humilitas)라고 합니다. 이 말은 ‘후무스’(humus), 흙, 즉 땅이라는 말에 어원을 두고 있습니다. 땅은 어떤 것도 배척하지 않고 안아 줍니다. 차별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땅은 만물을 정화시키며 성장하게 합니다. 우리에게 이 말을 적용하면, 참된 겸손은 바로 내가 낮아지고 다른 사람을 높여주는 것을 말합니다.

물을 통해서 참 겸손의 의미를 깨닫습니다. 노자는 물을 최고의 선으로 바라 봅니다. 물은 스스로 올라가려고 하지 않고 기회만 있으면 내려갑니다. 그리고 고집을 부리지 않습니다. 둥근 그릇에 흘러가면 둥근 모양으로 사각의 적수지에 들어가면 사각의 모양을 취합니다. 그러면서 물은 만물을 자라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잔치집에 초대 받아 갔을 때에 윗자리가 아니라 끝자리에 앉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끝자리’가 단순히 공간적인 뜻 만은 아닐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을 따르기 위해서는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마태 16, 24)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자신의 십자가는 바로 자신을 버리는 것입니다. 내 자신을 버려야 하는 것 중의 하나는 바로 스스로 높아지기를 원하고 앞 자리에 앉고 싶고, 자신이 원하는 것만 하고 싶어하는 것 등등일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그 끝자리의 참된 의미는 바로 공간적으로 끝자리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지 않고 하기 싫은 것을 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만 만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싫어하는 사람과도 함께하는 그것, 성당에 가기 싫은데 성당에 있는 것 등등을 말하기도 할 것입니다.

준주 성범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다른 사람보다 나은 줄로 생각지 말라. 두려워하건대 사람의 마음 속에 무엇이 있는지를 아시는 하느님 앞에 네가 남만 못할까 하노라. 네가 무슨 좋은 일을 하였다 하여 교만하지 말라. 네가 무슨 선한 것이 있다면 남들에게는 이보다 더 선한 것이 있을 줄로 생각하여 겸손한 마음을 보존토록 하라. 네가 너를 모든 사람 밑에 둔다고 조금도 해가 없지만 한 사람이라도 너를 높이게 되면 해로울 것이다. 겸손한 사람에게는 항상 평화가 있으나 교만한 자의 마음에는 분노와 질투심이 자주 일어난다”(준주 성범 1권 7,3)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만족을 누리기 쉽고 평화를 누리기도 쉬울 것이다. 네가 칭찬을 듣는다고 더 거룩해지지도 않고 책망을 듣는다고 더 천해지지도 않는다. 너는 그대로 너다. 너는 네 속이 어떠한지를 잘 살핀다면 다른 이가 너를 가지고 무엇이라 하는지 상관치 않을 것이다. 사람은 겉을 보고 가치를 헤아리나 하느님께서는  마음에 깃든 것을 보신다. 사람은 행동을 살피고 하느님께서는 그 뜻을 살피신다. 항상 잘하면서도 자기를 변변치 못한 자로 여기는 것은 겸손한 마음의 자세이다”(준주 성범 2권 6,3).

여러 사정으로 오늘부터 여태까지 따로 축복기도를 드리던 것을 말씀 묵상과 함께 병합해서 드리고자 합니다.  혹시 분리해서 받기를 더 선호하시는 분들이 계셨다면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면서  우리와 우리 가족들 모두가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 안에서 사는 것이 죽는 것이며 죽는 것이 사는 것임을 알려주시는 삶의 지혜를 일상에서 실천하심과 동시에  하느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확신이 있기에 끝자리를 선택함에 주저함이 없는 거룩한 하루를 지내시도록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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