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강론

희망의 시작 - 다시 한번 묵상하는 십자가(루카,9,22-25)

Author
kchung6767
Date
2017-09-16 13:18
Views
1046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미사

2017년 9월 17일 일요일(축일 이동)

다시 한번 묵상하는  십자가(루카,9,22-25)

“38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도, 권세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권능도, 39 저 높은 곳도, 저 깊은 곳도, 그 밖의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로마 8, 38-39)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24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루카 9, 23-24)

 

오늘 축일을 맞는 여러분 모두에게 축하의 인사를 전합니다. 저희 본당 역시 김대건 신부님을 주보성인으로 모시고 있는 저희 본당 역시 주님의 은총과 사랑 안에서 주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공동체로 거듭나기를 기대합니다.

오늘 저에게 다가 오시는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버리고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당신을 따르라.’고 하십니다.  자신의 십자가를 지는 일이 쉬운일 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압니다.  기도는 내가 지는 십자가를 하느님께서 지게 합니다.  나의 삶의 주인이 나가 아닌 하느님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독서 말씀에서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께서 우리의 편이신데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로마 8, 31) 하고 말씀하십니다. 기도는 하느님을 우리의 편으로 만듭니다. 따라서 누가 우리를 대적할 수 있겠습니까?  참으로 큰 위안이 되는 말씀입니다. 

십자가에 달려 계신 예수님을 바라 보면서 생각합니다.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사실이 참으로 마음 속 깊이 다가온 것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달리신 그분의 모습만 보았지 왜? 하고 질문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언젠가부터 말씀이 생명력을 갖고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말씀을 통해서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하기 시작했습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느껴지는 당신의 뜨거운 사랑이 은총의 눈물을 흘리게 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자신을 버려야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나의 십자가를 져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나를 버리는 것과 자신의 십자가를 지는 것은 다 함께가는 말입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체험했던 하느님의 사랑은 나를 포기하고 나의 십자가를 지는 삶을 두렵지 않게 합니다. 내가 지는 십자가가 아닌 당신이 지시는 십자가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면 모든 것은 사랑하는 상대위주로 생각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중심적인 삶에서 사랑하는 사람 중심의 삶으로, 내가 주인이 아닌 사랑하는 사람이 주인이 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내 자신을 버리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십자가로 생각한다면 그 십자가는 지기 쉬운 십자가입니다. 똑 같은 십자가이고 똑 같이 버리는 것인데 어떤 경우에는 쉽게 받아들여지고 한 걸음 나아가 즐겁게 하는 것인데 또 어떤 경우에는 그것이 힘들고 어렵게 받아들여지는 것입니다.

 기도는  두려움과 불안의 긴장의 느낌으로 다가오는 십자가를 사랑의 십자가로 받아 들이게 합니다. 자신을 버려야 하는 것도 어렵지가 않습니다. 기도를 통해서 우리는 자신이져야 하는 그 십자가를 내 혼자서 외롭게 지는 십자가가 아닌 하느님께서 함께 지신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도는 나 혼자만 외롭게 던져진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언제나 나와 함께하신다는 믿음과 확신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나야 한다.”(루카 9, 22)는 말씀에서처럼 부활을 위해서  ‘고난’과 ‘배척’과 ‘죽임’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당연히 거쳐가야 하는 과정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10장 39절의 말씀의 반복이기도 합니다.

 이 말씀은 달리 표현하면 세상적인 것을 추구하면 영적인 자아가 죽고 영적인 자아를 추구하면 세상적인 자아가 죽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영적인 자아를 추구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인데 이 영적인 자아를 추구하기 위해서 세상적인 자아를 버리는 것이 바로 십자가를 지는 삶인 것입니다. 사람의 생명은 이 세상보다도 귀하고 중요함을 깨닫습니다.

 내가 온 세상을 얻는다 해도 나의 목숨을 잃어버린다면 무슨 삶의 의미가 있겠습니까? 참 진리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영원을 살기 위해서 세상을 버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세상적인 것의 포기가 모든 것의 포기가 아닌 필요한 만큼 가지과 나머지는 나누는 지혜인 것입니다.

 가짐과 포기는 떨어진 단어가 아닌 함께가는 단어입니다. 소유와 비움의 천상적인 배합이 바로 참 평화와 행복의 길이며 영원을 사는 길임을 깨닫습니다. 세상보다도 귀한 우리의 생명을 세상때문에 포기하는 어리석음으로 살지 않도록 오늘도 주님의 지혜를 청합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사랑의 십자가를 피하는 어리석음이 아니라 사랑의 십자가를  기쁘게 받아들이는 지헤를 선택하는 하루를 살아가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서 주님의 말씀과 더욱 가까워 지도록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동시에 오늘 축일을 맞는 여러분 모두에게 다시 한번 축하의 인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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