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강론

희망의 시작 - 사순제 4주간 - 사랑과 용서가 그리운 시대(요한 3, 14 -21)

Author
kchung6767
Date
2018-03-10 04:18
Views
1034

사순 제 4주간 미사

2018년 3월 11일 일요일

사랑과 용서가 그리운 시대(요한 3, 14 -21)

20 악을 저지르는 자는 누구나 빛을 미워하고 빛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자기가 한 일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21 그러나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간다. 자기가 한 일이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려는 것이다.(요한 3, 20-21)

오늘 예수님께서는 악을 저지르는 사람과 진리를 실천하는 사람의 차이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니다. 그 본질적인 차이는 바로 인간이 되신 예수님을 믿는 것에 근거 함을 알려주십니다.  나는 스스로 자문해 봅니다. 내가 한 행위가 드러날까봐 빛으로 나아가는 것을 두려워하는가 아니면 진리를 실천 함으로 빛으로 나아가는 가를 살펴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심판하러 오신 분이 아니라 이 어둠의 세상에서 우리를 구원하러 오셨다는 것을 알려주십니다.  바오로 사도는 예수님의 이러한 모습을 필리피 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6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7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필리 2, 6-7)하고 말합니다.  

구원하러 오신 분의 모습은 바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하늘에서 오신 분이 아니라 땅에서 오신 분으로 보입니다. 거룩함과 세속의 만남입니다. 속됨의 뿌리를 뽑으시는 것이 아니라 이 속됨을 거룩함으로 덮으시는 분으로 오십니다. 

작금의 세계는 분노와 증오와 미움이 불길처럼 타오르는 사회임은 일년 전이나 지금이나 전혀 변함이 없습니다. 어쩌면 더욱 심각한 상태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기에 인간을 도구로 생각하지 않고 인격적으로 대접하고 대접받는 사회가  더욱 그리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한 시대의 구조적인 문제가 한 사건을 통해서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네 탓이야’하는 모습을 보면서 참으로 부끄럽고 실망스럽습니다. 바로 ‘내 탓이야’하고 진정으로 고백하는 사람은 찾아보기가 힘이듭니다. 

인간이 되신 예수님께서는 죄인이 아니시면서 죄의 용서를 위한 세례를 받으시면서 우리와 하나되고자 하셨던 분이십니다. 그분의 또 다른 삶의 표양은 간음한 여인을 단죄하지 않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8장의 이야기입니다. 이 8장의 이야기에서 간음한 여인을 예수님께 데리고 오는 사람들을 보면서 이들이 바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자화상처럼 느껴집니다.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려는 인간의 사악한 마음이 간음한 여인에 대한 단죄를 통해서 드러납니다. 간음한 여인을 데리고 오는데 그 여인의 상대였던 남자는 없습니다. 이 여인을 데려온 참 이유는 이 여인을 통해서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서 이 여인의 죄를 이용합니다. 사랑은 절대절명의 위기에서 죄인도 예수님도 함께 구원합니다. 

죄없는 사람부터 여인에게 돌을 던지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그렇게 여인을 죽여야 한다고 외치던 사람들이 나이 순으로 그 현장을 떠납니다. 예수님께서도 죄인이 아니시면서 그 여인을 단죄하지 않으십니다. 사랑은 죄인 아니면서도 스스로 죄인이라고 고백합니다. 용서는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내가 죄인이 아니지만 그 죄인을 구하기 위해서 내가 죄인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습은 거대한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가슴 깊이 억제하고 있던 분노와 미움의 감정이 어떠한 순간에 폭발합니다. 스스로 억제하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분노와 미움의 감정, 나를 아프게 했던 상처들, 이러한 모든 나쁜감정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은 무엇이겠습니까? 

인간으로부터 가장 크게 배신을 당한 존재는 하느님 이십니다. 지금도 상처를 받으시고 배신을 당하시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어쩌면 인간이 존재하는 한 상처를 받으실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이 영원히 죄를 짓는다 하더라도 영원히 용서하시는 분이 또한 하느님이십니다. 인간을 너무나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용서하고 그들을 받아들이셔야 했습니다. 지금도 앞으로도 그렇습니다. 인간의 죄를 씻어주셔야 했습니다. 쬐끔씩 용서를 하셔서는 해결할 수 없는 지경에 왔습니다. 파산지경에 이른 인간을 빚으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바로 탕감해 주는 방법 밖에 없었습니다. 엄청난 손해를 볼 수 밖에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이성으로는 상상할 수도 없는 빚을 인간이 상상할 수도 없는 방법으로 즉 당신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시고 그 아들을 십자가 상에서 죽게 하셨습니다.(필리 2, 8)  이렇게 당신의 아들을 죽게하심으로 우리의  빚을 탕감해 주십니다. 아무런 조건이 없습니다. 단지 믿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분이 세상에 아들을 보내신 이유는 심판이 목적이 아니라 아들을 통하여 구원하기 위해서임을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가 믿게하십니다.

사랑과 용서가 그리운 시간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영웅이 되고자 ‘네 탓이야’하고 외쳐대는 저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의 부족함을 고백하며 스스로 ‘내 탓이야’하고 주님 앞에서 눈물흘리는 사람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소리없이 나이 순으로 간음한 여인을 뒤로하고 돌아가는 그 사람들이 존경스럽게 다가 옴이 나를 슬프게 합니다. 

우리를 위해서 당신의 아들을 내어놓으셨던 아버지 하느님의 사랑이 가슴 깊이 다가옵니다. 내가 죄인 임을 깨닫기 시작하니까 그 사랑이 너무나 크고 깊게 다가옵니다. 그래서 세리는 성전 뒤에서 그렇게 하염없이 소리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었나 봅니다. 큰 사랑을 받았기에 큰 감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 큰 사랑을 느꼈기에 큰 사랑을 실천할 수가 있습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면 하느님의 사랑이 보입니다. 어떠한 것도 하느님 앞에서는 아깝지가 않습니다. 사랑에 따짐이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사랑을 실천하기 싫으니까 이성적인 따짐으로 합리화가 필요한 것입니다. 소유에 집착하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그 비싼 향유로 당신의 발을 씻을수 있었고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았던 마리아의 모습이 바로 참으로 자신의 죄를 탕감받은 죄인이 하느님께 드릴수 있는 최선의 감사의 모습일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새로운 한 주간을 시작하면서  하느님으로부터 떨어지지 않고 죄를 용서해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며 용서받은 사람으로서 일상의 삶에서 세상의 상식을 넘는 사랑을 실천하는 한 주간을 살고자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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