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시작 - 성지주일 강론(마르 14, 1- 15, 47)

Author
kchung6767
Date
2018-03-24 10:46
Views
292

성지주일 강론


2018년 3월 25일 일요일


하느님으로부터 버림 받은 삶(마르 14, 1- 15, 47)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박타니?” 이는 번역하면,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라는 뜻이다(마르 15, 34)



우리 인간은 언제나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는 존재입니다. 이와 반대로 그리스도인은  추세를 역류하는 하느님 중심으로, 상대방 중심으로 생각는 삶을 살아갑니다. 사랑 받는 사람에서 사랑을 주는 사람으로의 변화입니다. 이상형의 배우자를 찾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배우자가 되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살아 오면서 하느님으로부터 버림 받았다는 생각을 안 가져 본 사람은 드물 것입니다.  어디를 둘러 보아도 희망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절망의 상황에서 하느님의 부재를 경험하게 됩니다. 


오늘은 성주간이 시작되는 첫 날입니다. 이 날은 예수님께서 파스카의 신비를 완성하시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그래서 미사 시작 전 야외에서 성지가지를 축복하고 행렬을 하면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모습을 기념하고 그 의미를 새겨봅니다.이 예식은 4세기부터 거행되기 시작하여 10세기 이후에 널리 전파되었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들어가시기 전에 미리 당신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어떻게 준비를 해야 하는 가에 대해서 제자들에게 구체적으로 준비를 시키십니다. 이를 통해서  예수님의 수난이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 하느님의 구원계획과 예수님의 순명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사건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린 나귀를 타고 오십니다. 당시의 나귀는 가난한 사람들의 운송수단으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왕으로 오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참으로 초라한 모습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겉옷과 나무가지를 길에 깔고 성지가지를 흔들면서 ‘호산나(야훼, 구원하소서)’를 외치면서 예수님을 환영합니다.


이렇게 환영하던 군중들이 돌변합니다. 이제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시오’하고 외치는 폭도와 같은 모습으로 돌변합니다. 유다는 예수님을 은전 30닢에 팔아넘기고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 역시  예수님께서 체포되는 그 순간에 모두 도망갔습니다. 목숨을 걸고 배신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수석제자였던 베드로 역시 새벽 닭이 울기 전에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은전 30닢에 팔아넘겼던 유다는 예수님께서 십자가 형을 선고받는 그 순간에 자신의 행위를 후회합니다.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립니다. 베드로는 새벽 닭이 우는 그 순간에 참회의 뜨거운 눈물을 흘립니다.


후회와 회개의 차이가 무엇이겠습니까? ‘후회’는 바로 내가 잘못했구나 하는 것에서 멈추는 것입니다. 하지만  ‘회개’는 삶의 변화를 수반합니다.


우리의 삶이 후회하는 삶에서 멈추어서는 안됩니다. ‘후회에서 멈추었던 유다는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끊어버립니다. 하지만 ‘회개’했던 베드로는 지금의 교회가 있게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후회’가 또 다른 차원의 교만이라면 회개는 또 다른 차원의 겸손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수난을 앞두고 “아빠!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무엇이든 하실 수 있으시니,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원하는 것을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을 하십시오.”(마르 14, 36) 하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에서 뒷부분 즉 “그러나 제가 원하는 것을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을 하십시오.” 하는 말씀을 덧붙이지 않으셨다면 우리와 같은 분이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모든 것을 아버지께 맡기십니다. 이렇게 회개는 우리에서 하느님께로 맡기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자처하면서 살아가면서도 수도 없이 상황에 따라서 그리스도 인이기를 포기했었던 우리가 당시의 군중들과 제자들과 유다와 다를 바가 전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중에는 베드로처럼 회개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할 수가 있습니다. 항상 그리스도인 답게 살아간다는 것은 쉽지가 않습니다.  어렵습니다. 하지만 인간이기 때문이라고 스스로 합리화시켜서는 안됩니다. 후회가 아닌 회개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여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시는 그 순간에 성전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졌다(마태 27, 51)고 합니다. 후회가 회개로 바뀌는 순간입니다. 하늘과 땅이 만나는 순간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통로가 생긴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생겨난 것입니다.


예수님의 외로움과 겸손이 세상을 구원하셨던 것처럼 우리의 겸손과 외로움이 이 세상을 구원할 것입니다.


“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라는 말씀이 우리가 예수님을 버렸다는 말씀으로 들려오는 하루입니다. 이제 우리가 버린 예수님을 우리 손으로 찾아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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