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시작 - 부활 제2주일 하느님의 자비 주일

Author
kchung6767
Date
2018-04-07 03:32
Views
274

부활 제2주일 하느님의 자비 주일


2018년 4월 8일 일요일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요한 20, 19-31)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요한 20, 29)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불행한 것 중의 하나는 상호 간의 믿음의 상실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를 봅니다. 과거에는 동지였다가 지금은 배신자가 됩니다. 믿음에서 불신으로 변한 결과 입니다. 이 불신의 이유가 누구에게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상호간의 신뢰가 깨어지는 것은 관계의 중심에 하느님이 아닌 자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평화가 너와 함께’ 하고 인사를 건네십니다. 믿음은 평화의 필수 조건입니다. 불신은 긴장과 불안을 야기하지만 믿음은 우리에게 평화를 가져다 주는 것입니다. 


토마스의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어주시는 예수님의 자상함을 보게 됩니다. 다시 한번 예수님께서는 불안과 두려움에 떨고 있던 당신의 제자들에게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시면서 인사를 하십니다. 이 평화는 바로 믿음과 직결되고 이 믿음은 바로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불안과 두려움에 쌓여 있는 제자들에게 평화의 인사를 나누시는 것은 당신의 제자들이 그러한 불안과 두려움에서 벗어나라는 의미에서 그렇게 인사를 나누시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평화는 전쟁이나 갈등 중에 있는 개인들이나 국가의 상태가 아니라 서로 화해한 상태로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정의 만으로 평화를 이해 하기에는 무엇인가 부족함을 느끼게 됩니다. 지금의 세계는 평화 보다는 밧줄 위를 비틀거리며 지나가는 자전거를 타는 것과 같은 불안감을 갖게 됩니다.


이 평화에 대해서 살펴보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의 주의를 진복 팔단의 7번째 행복 선언인 “평화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의 아들이 될것이다”에 두면서 평화에 대해서 살펴 보기로 합니다. 


에페소서 2, 14-16에서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야말로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분은 자신의 몸을 바쳐서 유다인과 이방인이 서로 원수가 되어 갈리게 했던 담을 헐어 버리시고 그들을 화해시켜 하나로 만드시고 율법 조문과 규정을 모두 폐지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희생하여 유다인과 이방인를 하나의 새 민족으로 만들어 평화를 이룩하시고 또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둘을 한 몸으로 만드셔서 하느님과 화해시키시고 원수 되었던 모든 요소를 없이 하셨읍니다” 하고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평화를 위해서 투신하셨는 지를 잘 볼 수가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 자신이 바로 평화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는 평화를 이룩하시는 분이신 것입니다. 이는 달리 말하면 우리의 평화는 그분으로부터 기인한다는 것을 의미함과 동시에 그 분의 삶이 바로 평화를 위한 삶이었다는 것을 말해 주기도 합니다.


평화를 이룩하기 위해서 당신 자신의 몸을 희생제물로 내어 놓으셨던 예수님을 통해서  처음에는 원수였던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화해를 합니다. 화해를 통한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의 일치는 바로 하느님과의 일치로 나타나며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그리스도에 의해서 이루어진 이러한 평화의 실현은 개별적이며 독특한 특징을 갖게 되고 동시에 인간 삶의 본질적인 조건들을 바꾸는 기본적인 사건이기도 합니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예수님께서는 평화를 이룩하시기 위해서 율법에 의한 엄격한 구별에 의해서 원수이었던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을 화해시키시고 하느님과 인간들 사이의 관계도 정상화시키십니다. 우리들에게는 주님께서 우리의 삶의 모범으로 보여주신 그러한 삶을 받아들이고 행하는 일 만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어쨌든 이러한 평화의 실현은 그러한 평화를 위해서 자기 자신을 내어놓았던 하느님의 아들의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그리스도 자신이 평화라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통해서 참 평화를 이 땅에 실현시키기 위해서 우리는 그리스도와 같은 삶을 실천해야 함을 잘 알 수가 있습니다. 서로 반목하는 사람들을 일치시키고 인간들과 하느님과의 정상적인 관계를 맺도록 하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마저도 기꺼이 내어 놓는 그러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곧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정형화된 사고의 틀을 깨는 노력이 바로 부활한 예수님의 모습이고 복잡하게만 보이는  문제의 해답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여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인간의 한계 때문에 불안과 두려움 그리고 어려움에 직면하게 될 때 우리가 참으로 그리스도인의 정신으로 돌아 감으로서 우리는 그러한 불안과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되어 참 평화를 얻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참 평화는 인간의 이해관계의 조화에 의해서 이루어진 불안한 상태의 평화가 아닌 항구적이고 안정된 평화로써 내가 아닌 하느님이 주인이 되는 삶의 결과인 것입니다.


새로운 한주간을  시작하면서 참 평화는 믿음에서 온다는 사실을 명심하면서 평화를 누리는 한 주간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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